“이야기하듯 암기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10년 모델 넘어 직접 뛰어든 공인중개사
“부동산 계약에 쓰이는 언어 배우고 싶어”
30년 전 20대 서경석에게 건네는 위로
“그 치열했던 밤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그렇게 깊은 뜻이?” 1990년대 TV를 채운 이 유행어는 코미디언 서경석(54)을 떠올리게 한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대중에게 그는 “공무원 시험 합격은 에듀윌”을 노래하던 모델이자 전자 칠판 앞에서 한국사 기출문제를 해설하는 강사로 기억되고 있다.
서경석이 걸어온 길은 배움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육군사관학교 수석 합격과 서울대 입학을 시작으로 1993년 MBC 개그콘테스트 금상을 수상하며 코미디계 정상에 올랐다. 이후에도 공인중개사, 한국어교원자격증 2급,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만점 등 발자취를 남기며 새로운 이력을 쌓아왔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그 과정에 늘 시험이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익힌 암기법과 학습 노하우를 여러 매체를 통해 공유하며 지식을 나누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서경석에게 공부는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한국사 스토리텔러’로서 “우리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는 그를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근황이 궁금해요.
“광고 촬영, 타 유튜브 채널 출연 등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사 관련 서적을 두 권 집필하고 있어요. 올해 안에 출간할 계획입니다.”
이전에도 한국사 수험서를 출간하셨죠.
“처음에는 책을 낼 생각이 없었어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도전하는 이들을 위해 개인 유튜브 채널에 한국사 강의를 올렸는데요. 이를 본 출판사의 제안이 계기가 됐죠. 작년에 어린이를 위한 일력, 수험생을 위한 개념서, 기출문제집까지 한국사 시리즈를 완성했습니다.”
꾸준히 한국사 강의를 업로드하는 이유는요.
“어릴 때부터 한국사를 좋아해 ‘한국사 이야기꾼’으로서의 삶을 꿈꿨어요. 다소 억지스럽더라도 스토리를 구성해 암기를 이어나가는 방식을 좋아하는데요. 이렇게 개발한 한국사 암기법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한국사 강의를 개인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는요.
“그동안 감독님과 작가님이 차려주신 무대에서 연기자와 진행자로서 ‘숟가락’을 얹어왔어요. 이제는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출발점이 유튜브였습니다. 특별한 재능을 내세우기보다 하고 싶은 것을 기록하자는 방향으로 시작했죠. 채널의 정체성도 자유로운 편입니다. 요즘은 제 유튜브가 한국사 강의로 도배돼 있죠. 한때는 골프, 축구, 공인중개사 공부 과정을 담기도 했습니다.”
공인중개사 말고도 여러 시험에 도전하셨는데요.
“시험 자체에 집착하는 건 아닙니다. 목표를 이루고 도전하고자 하는 길을 걷기 위해서 시험이 필요하니 보는 겁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4번째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는데, 복지관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공부하며 준비했습니다. 한국어교원자격증 2급은 한류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계기로 시작했어요. 해당 방송에 한국어·한국문화 강사로 참여했는데요. 당시 관계자의 권유로 시험에 도전해 취득했습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역시 자발적인 선택이었죠. 10년간 모델로 활동했던 인터넷 강의 회사 ‘에듀윌’의 주력 과목이었지만 시험 내용은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그러다 해당 시험이 실생활과 밀접하다는 점을 알게 됐어요. 부동산 계약 과정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시험 범위에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껴 취득하게 됐습니다.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셨나요.
“지인들의 배려가 컸어요. 특히 가족들에게 미안했죠. 주말에 외식하자는 딸의 부탁, 오랜만에 소주 한잔하자는 보고 싶은 친구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어요. 심지어 공인중개사 시험을 한 달 앞두고서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떨어졌다면 다시는 도전하지 않았을 거예요.”
학창 시절의 서경석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아버지 사업이 몰락했어요. 남의 집에 얹혀살던 기억도, 대전역에서 신문을 팔던 기억도 생생해요. 하지만 공부 말고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은 후 ‘공부 기계’, ‘시험 보는 로봇’이 됐죠. 시험을 잘 보려면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후 나라의 지원을 받기 위해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고, 수석 합격했죠. 그러나 평생 할 자신이 없었어요. 재수를 거쳐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서경석은 대학 시절 진로에 대한 고민 중 우연히 지원한 MBC 코미디언 공채에 합격하며 방송계에 입문했다. 1993년 데뷔 이후 이윤석과의 콤비로 인기를 얻으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데뷔 초에 기억 남는 일화가 있나요.
“그때도 참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연극영화과·신문방송학과·공연예술학과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밤을 새워 대본을 썼던 기억이 있어요. 감독님들께 수없이 퇴짜를 맞으며 계속 고쳐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성장 중입니다.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는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김영희 감독님께서 친분이 전혀 없었던 코미디언 이윤석(54)과 콤비로 코너에 내보냈을 때였어요. 저희 둘의 케미 반응이 좋아서 둘만 단독 코너를 맡게 됐는데 대박이 났죠.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그렇게 깊은 뜻이?”가 이때 탄생했어요. 당시 길을 걸으면 중고등학생들이 “형 때문에 살아요”, “부모님도 형 코너 보는 건 뭐라고 안 해요”라며 달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20대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열심히 노력한 걸 누구보다 잘 알지. 때로는 삶이 버겁고 지쳤던 그 밤이 몇 밤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야. 돌이켜 보니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때 그 치열함이 쉽게 안주하지 않는 50대의 나를 이끄는 힘이 된 것 같아. 그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이어갈게. 애썼다.”
개그맨의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서경석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 사업가나 1타 강사가 됐을 거 같아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참 좋아하거든요. 대학 시절에도 과외를 쉬지 않았죠. 하지만 20대로 돌아가도 다시 코미디언을 선택할 겁니다.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니까요.”
서경석은 인생의 목표 중 하나로 ‘실버타운에서도 유튜브를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 인간에게 가장 나약한 모습은 정체돼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는 천성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끊임없이 그 상황에 맞는 무언가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 제 꿈입니다.”
서경석은 “실패는 도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이라 표현했다. 도전에 나서지 않으면 성공은 물론 실패조차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런 시도 없이 머무는 태도는 결국 배움의 기회를 제한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경험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는 도전 자체가 성장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다.
강영인 기자 yeongi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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