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지막 길… “배웅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당신의 마지막 길… “배웅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 배수지·구민채·이정연 기자
  • 승인 2026.03.24 09:00
  • 호수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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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사망자 2만3643명
5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해

아무도 울어주지 않는 장례
저소득층, 시신포기 비극도

생전 존엄한 죽음 준비 위해
공적·민간 서비스 확대 필요

 

지난 2월 9일, 서울시 공영장례 빈소 ‘그리다’에서 고인의 이름만 적힌 지방 앞에 두 고인의 모습이 놓여 있다. 이곳은 연고가 없는 고인의 마지막을 사회적 배웅으로 채우며 존엄을 지키는 공간이다. 이날 자원봉사자와 장례서비스 전문기업 ‘해피엔딩’ 관계자들은 정성을 다해 재단을 살피며 예를 갖추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조용히 배웅했다. 사진=구민채 기자
지난 2월 9일, 서울시 공영장례 빈소 ‘그리다’에서 고인의 이름만 적힌 지방 앞에 두 고인의 모습이 놓여 있다. 이곳은 연고가 없는 고인의 마지막을 사회적 배웅으로 채우며 존엄을 지키는 공간이다. 이날 자원봉사자와 장례서비스 전문기업 ‘해피엔딩’ 관계자들은 정성을 다해 재단을 살피며 예를 갖추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조용히 배웅했다. 사진=구민채 기자

Prologue

“우리는 누구나 무연고 장례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죽음은 공동체가 같이 애도하고 누구도 소외돼선 안 됩니다.” 지난 2월 15일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자원봉사자 A씨는 상주 없는 빈소를 지키며 이렇게 말했다. 복도 너머 빈소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의 안부 인사와 북적이는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곳 ‘그리다’ 빈소에는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이 감돌았다.

 

본지, 무연고 공영 장례 취재기

공영 장례는 가족해체·빈곤 등 장례를 치를 수 없는 무연고자 및 저소득 시민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원하는 제도다. 과거에는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향하는 무빈소 직장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2007년 신안군을 시작으로 고인의 존엄을 지키는 공영 장례가 도입됐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비영리단체 ‘나눔과 나눔’과 함께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들은 서울시립승화원 2층에 마련된 그리다 빈소에서 자원봉사자와 장례 업체 관계자들의 배웅 속에서 마지막 길을 오른다. 이곳에서는 고인의 이름을 부르고 묵념과 헌화를 진행하는 등 최소한의 장례 의식을 갖춰 생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돕는다. 고인의 연고자나 지인이 확인되면 연락을 취해 추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무빈소에서 공영 장례로

고인을 위한 종교 예식 연계 지원도 운영 중이다. 2018년 ‘서울시 공영 장례 조례’가 제정된 후 서울시 예산으로 장례의전 용역업체를 입찰하여 장례식을 지원하고 있다. 2020년 1월 1일부터 장례 서비스 전문 기업 ‘해피엔딩’이 공영 장례를 진행 중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공동체의 해체와 개인화가 가속화된다. 이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에 노출돼 있다. 사회적 고립 위기에도 직면해 있다. 2024년 1인 가구는 804만5000(36.1%) 가구를 넘어섰다. 65세 이상 인구는 1000만 명을 돌파하며 본격적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보건복지부의 `2024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독사는 사회의 허리인 50대(30.5%)와 60대(32.4%)에서 집중됐다. 나눔과나눔의 집계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최근 5년 사이 2배 이상 급증해 2만3000명을 넘어섰다.

 

2022년까지 고독사는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되는 죽음’으로 정의했다. 2023년에는 ‘홀로 사는 사람’이 ‘사회적 고립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으로 바뀌었고 2024년 6월부터는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되는 죽음’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현행 기준으로 치매 부모와 함께 살던 50대 미혼 자녀가 자택에서 질병 등의 이유로 사망한 때도 고독사로 분류된다.

 

고독사는 사망 이후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 없는 무연고 사망 등 또 다른 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 나눔과 나눔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총 무연고 사망자는 1만751명으로 연평균 2000여 명에 달했다. 2021년부터 2025년 5월까지는 2만3643명으로 불과 5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오전 9시 30분 나눔과나눔 박진옥(53) 상임이사의 안내로 장례가 시작됐다. 이날의 고인은 유재원(61·가명) 씨와 하준호(77·가명)씨다. 영정 사진도 없이 이름만 적힌 지방 앞에 자원봉사자와 장례 관계자 등 5명이 섰다.

 

“고인의 삶을 생각하며 묵념하겠습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곧바로 고인 예식이 이어졌다. 대리 상주가 향을 피우자 뿌연 연기가 빈소를 채웠다. 밥그릇을 열고 밥에 수저를 꽂아 고인의 식사를 돕는 계반삽시가 진행됐다. 박 상임이사와 대리 상주는 고인께 술을 올렸다.

 

큰절을 올리는 재배가 끝나자 박 상임이사는 축문을 낭독했다. “외롭고 힘들었을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영원히 가시는 길이 아쉬워 술 한 잔 올려드렸습니다” 참석자들은 낭독이 끝난 뒤 다시 한번 재배를 올렸다. 이후 조사 낭독과 헌화를 위해 국그릇을 물리고, 밥에는 숭늉을 부어 말았다.

 

마지막으로 기자의 조사 낭독이 진행됐다. 조사는 연고 없이 떠나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건네는 따뜻한 배웅이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기자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비록 낯선 이의 배웅이지만, 기자는 그 진심이 고인에게 전해지길 바랐다.

 

빈소를 뒤로하고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따라 화장장으로 향했다. 유가족을 대신할 자원봉사자 B씨는 고인의 위패를 들고 운구 행렬을 시작했다. 봉사자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화로 앞이었다.

 

무연고 사망자의 재단 앞, 대리 상주가 고인의 밥그릇에 수저를 꽂고 술을 올리는 계반삽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정연 기자
무연고 사망자의 재단 앞, 대리 상주가 고인의 밥그릇에 수저를 꽂고 술을 올리는 계반삽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정연 기자

무연고 죽음의 애도 현장

자원봉사자와 장례 관계자들은 그 위패를 소중히 받쳐 들고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대기 공간에서 묵묵히 기다림의 시간을 견뎠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화장이 완료됐다. 관망실의 유리창을 가리고 있던 흰 막이 천천히 올라가자 곧이어 유골을 가루로 만드는 분골 과정이 이어졌다. 분골실 역시 유리창으로 가로막혀 작업자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분골기의 생생한 소리는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오전 11시 30분 화장이 끝나고 분골함이 나왔다. 유택 동산으로 향하는 길, 분골함을 품에 안은 자원봉사자 A씨는 “분골함이 생각보다 너무 따뜻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박 상임이사는 “분골함의 온기를 느낄 때마다 이 일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체감하곤 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지방을 태우고 투입구 덮개를 열어 뼛가루를 내려보냈다. 재가 되어 흩어지는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보며 봉사자 A씨는 “비록 연고는 없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이 이름을 깊이 새기려 한다”며 “공영 장례가 더 널리 알려져 죽음이 고립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정선(장례산업) 을지대 교수는 “공영장례는 행정 절차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이는 죽음의 존엄성을 지키는 보편적 복지로 사회적 안전망으로서도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공영장례는 혈연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관을 넘어서 고립된 이웃의 마지막을 함께 책임지는 ‘사회적 가족’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영 장례의 현실적인 한계는 여전하다. 공공 장례가 가장 체계적이라는 서울시는 자체 예산을 많이 투입해 1인당 총액 234만 원을 지원하지만 경기도는 160만 원, 대구와 세종은 70만 원 수준에 그친다. 경기도를 비롯한 광역 지자체는 자체 예산으로 공공 장례를 운영한다. 그 외 인구가 적은 지방은 전용 빈소를 운영할 장례식장과의 협약이 안 돼 있는 경우가 많다. 지역별 예산 규모에 따라 고인이 받는 마지막 예우의 질이 결정되는 셈이다.

 

사진=배수지 기자
기자를 포함한 자원봉사자와 관계자들이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을 정성스레 안치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사진=배수지 기자

‘시신 포기’의 역설

고인의 존엄성 문제도 거론된다. 효율성을 이유로 합동 장례가 빈번하게 치러지면서 최소한의 예를 갖출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교수는 “지역별 재정 자립도에 따른 격차를 해소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장례를 고인의 존엄을 지키는 보편적 복지의 영역으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뼈아픈 지점은 저소득층의 시신 포기 문제다. 제도상 무연고 사망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의 경우, 가난한 유족은 높은 장례비를 감당하지 못해 가족의 시신을 포기해야만 공영 장례라는 이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가족관계를 부정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후 대응이 아닌 생전부터 자신의 장례를 준비할 수 있는 능동적인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 차원의 사전 장례 등록제를 도입하고 공적 지원과 민간 서비스를 긴밀히 결합한다면 누구나 경제적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최소한의 존엄을 보장받는 장례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Epilogue

빈소는 다시 비워졌다. 누군가의 죽음을 지나치지 않는 마음. 이것은 따뜻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당신을 배웅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기자가 고인을 대신해 조사를 낭독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사회적 고립이 일상이 된 시대. 공영 장례는 우리 사회가 단절된 개인에게 건네는 마지막 악수다.

 

 

배수지·구민채·이정연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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