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진 마켓 포지셔닝의 경계
허물어진 마켓 포지셔닝의 경계
  • 김희량 칼럼니스트
  • 승인 2026.04.07 11:00
  • 호수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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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자라와 존 잘리아노의 만남

 

브랜드 자라 참고 사진. 존 갈리아노와 자라의 협업 컬렉션은 오는 9월 출시될 예정이다. 
브랜드 자라 참고 사진. 존 갈리아노와 자라의 협업 컬렉션은 오는 9월 출시될 예정이다. 

올해 패션계 뉴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디올(Dior)’,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등 명품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왔던 존 갈리아노가 ‘자라(Zara)’와 협업한다는 것이다. 갈리아노는 자라와 2년간의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브랜드 아카이브를 해체·재해석해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일 계획을 전했다. 다양한 패션 브랜드를 오가는 디자이너지만 자라와의 결합은 더없이 생소하다. 우리는 이 소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러한 혼란은 자라의 브랜드 정체성에 기인한다. 자라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필요한 브랜드인가. 브랜드 아카이브라고 할법한 자라만의 상징적인 브랜드 디자인이 있었는가.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자라도 오랜 디자인이 쌓이면서 마치 전통 있는 브랜드처럼 보이는 아카이브가 생겼다. 물론 자라 역시 나름의 차별화 전략이 있고 다른 패스트 패션 브랜드와 충분히 구별된다. 그러나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비즈니스 모델은 유행을 생성하는 것보다 유행에 맞춰 빠르게 옷을 만들고 유통시킨다.


자라는 패션 산업의 구조 속에서 유행을 증폭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상류의 명품 패션 브랜드나 여러 트렌드 리더가 이끄는 유행은 아래로 흘러 자라처럼 대중적인 브랜드를 통해 더 넓게 퍼진다. 자라는 이제 이 역할에서 벗어나 유행을 생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일까. 단순히 고급화 전략이 지금까지 여러 번 지속해 온 콜라보의 연속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일까. 2년간의 긴 시간 동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담당하듯 럭셔리 패션 디자이너가 패스트 패션 브랜드와 결합하는 모습은 몹시 낯설다.


이제 명품의 지위는 예전만큼 견고한 영역으로 신성시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퍼렐 윌리엄스의 행보에서부터 놀라움을 겪은 바 있다. 명품 브랜드의 의류와 대중적인 브랜드의 의류가 외관상 대체로 크게 구별되지 않는 지금, 브랜드가 수익을 확보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강렬한 주목을 이끌어 이슈를 선점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더 낯설고 생소한 결합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명품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유명인이 맡고, 럭셔리 패션 디자이너가 패스트 패션 브랜드를 맡는 등 엇갈린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패션 산업을 구조화해 온 위치 구분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세상은 더 복잡해졌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구분은 흐려지고 있다. 이 파트너십이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희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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