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의 행위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49조(금지행위)에 위반되어 적발 시 과태료 부과됩니다.”
그것은 내가 반려견 보리와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마주하는 경고였다. 둥근 덩이 뿌리 형태로 땅속에 묻힌 구근식물은 무언가 될 가능성을 품은 채 자신만의 비밀을 꽁꽁 쥐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한밤중 공원에 잠입해 땅을 헤집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했다. 조급하게 움직이는 손, 의중을 들키지 않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이의 눈동자는 언제나 매력적인 법이니.
그러나 얼마 전 시커먼 구근의 자리를 연녹색 이파리가 대신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빼곡하게 자라난 새싹을 바라보자 새삼스레 봄이 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온화해진 날씨에 응답하듯 파릇파릇 돋아난 이파리는 무시무시한 경고에 대한 동네 주민들의 공손한 답장이었다.
나하늘의 ‘회신지연’에서 시적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나를 찾으면/ 아프다고 말해 주세요/ 지금 서울에 없다고/ 죽었다고”. 지각하지 못하면 존재는 곧 부재로 취급된다. 이 시에서 부재는 자기 의지에 가깝다. ‘지금, 여기 없음’의 모습으로 보이기를 요청한다. 그러니 누군가의 연락을 “도저히 열어 볼 수 없었다고/ 그게/ 내가 살아 있다는 뜻이라고” 말하는 행위는 오히려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넘어간다.
아직 마주하지 않은 언어는 어떤 형태가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고, 열어보지 않고 유예 상태로 두는 일은 그 안에 든 것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그건 ‘봄’의 모습과도 닮았다.
겨우 몇 도의 기온 상승이 이루어낸 결과가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땅속에서 꿈틀거리던 것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누구도 구근을 캐가지 않았고 벌어지지 않은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 사이에서 나는 글을 쓴다. 이것은 내가 공원의 질서에 회신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반려견 보리가 킁킁 냄새를 맡는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나는 영영 볼 수 없는 것을 감각하는 친구는 나의 가장 가까이에 있다. 존재하지만 필사적으로 기척을 숨기려고 노력하는 것들을 떠올려 본다.
문은강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