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글을 대신 쓰는 시대다. AI는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 있는 문장을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AI 시대에도 대체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기자의 발걸음이라 말할 수 있겠다. 수습기자 시절, 선배들은 입버릇처럼 “발로 뛰는 기자가 돼라”고 조언했다. 당시에는 닳고 닳은 잔소리처럼 들렸던 그 말이 매주 마감을 겪으며 비로소 내 언어가 됐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시야의 경계를 매번 무너뜨렸다. ‘천원의 아침밥’ 취재를 위해 이른 아침 우리 대학 학식당으로 향했을 때, 기자가 마주한 것은 1000원 남짓의 식기 너머로 분주히 움직이는 교직원들의 손길과 생활비를 아끼려 졸린 눈을 비비며 줄을 선 학생들이었다. 외에도 도서관 학술정보지원팀, 학생팀, 기숙사 행정팀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학의 일상이 당연하게 굴러가는 것은 누군가의 지난한 행정적 관리가 뒤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발걸음은 학교 울타리 밖으로도 이어졌다. 1536호 이주민센터 현장르포를 위해 만난 미얀마 이주민들의 목소리는 모니터 앞에서 ‘선진국 대한민국’을 당연하게 믿었던 내 좁은 세계를 흔들었다. 수개월간의 무급 노동을 견디거나 이미 받은 임금을 도로 뱉어내야 하는 그들의 현실은 책상머리 기획 회의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날것의 진실이었다. 그동안 믿어왔던 상식이 깨질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 ‘불편한 부채감’이 남았다. 마주하기 두려운 현실이었지만, 기자는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기록해야 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누군가를 규정하는 일은 쉽다.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 집단이나 지역을 단순화해 말하는 경우를 자주 봤지만, 취재 과정에서 마주한 것은 기존의 인식과 실제 경험 사이의 간극이었다.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그런 단일한 이미지로 설명되지 않았다. 발로 뛰며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은 기존의 판단을 여러 차례 수정하게 했다.
기자로 일하며 ‘가까이서 보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불편한 내용을 다뤄야 했고, 기존 생각을 유지한 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취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움직이는 동료 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각자의 취재가 서로의 빈틈을 보완하면서 하나의 기사로 이어졌다.
단대신문은 뜨거운 배움의 일터다. 조판장에서 늦은 밤까지 글자 크기와 자간을 조정하는 기자들의 피땀 어린 시간이 모여 단 한 면의 신문이 완성된다. 발로 뛰어 얻은 원고를 들고 신문사로 돌아오는 길, 이제 기자는 ‘전부 다 안다’는 오만 대신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설렘을 품는다. 발로 뛰어온 원고가 동료들의 교열과 조판 과정을 거쳐 마침내 지면으로 인쇄될 때, 이 신문은 우리가 함께 만든 기록이 된다.
김혜인 기자 kimhyein@dankoo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