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보국의 일념으로 단국대학 부흥
남북 체육 교류·한반도 평화 이끌어
인문학 뼈대 한한대사전 완간 집념
억강부약 철학으로 봉사 나눔 전해
“단국대는 이제 뿌리 깊은 나무가 되었다. 아마도 어지간한 바람이 불어도 과거처럼 뿌리째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죽전캠 베어토피아 중재문고(中齋文庫)에 새겨진 중재의 독백이다. 고(故) 중재(中齋) 장충식 명예 이사장은 1980년 5월 민주화 운동의 불길 속에서 옥고를 치르던 단대생을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다시 배움의 품으로 불러들였다. 1959년 우리 대학에 입교한 뒤 67년 동안 그는 대학을 지키는 데만 머물지 않았다. 한반도기를 그려 남북의 장벽을 허물었고, 수십억 걸음을 걸어 세계 최대의 한자 사전을 완성했다. 지난 5월 20일, 향년 93세로 눈을 감은 그의 삶은 그 자체로 단국의 역사이자 거대한 서사였다.
탈 수도권, 단국이 먼저 걸어간 위대한 여정
그의 삶을 관통한 단 하나의 열쇳말은 ‘교육보국(敎育報國)’이었다. 나라를 구할 길은 오직 교육뿐이라는 신념이었다.
출발은 숙명 같았다. 그는 설립자 범정 장형 선생의 셋째 아들이다. 부친은 늘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를 지켜야 한다.” 아들은 그 약속을 평생의 십자가로 짊어졌다. 중재는 1959년 우리대학에 처음으로 부임했다. 서른넷에 학장으로 취임해 종합대학 승격을 이끌었고, 서른다섯에 초대 총장이 됐다. 대학 역사상 최연소 총장 취임이었다. 단국의 거대한 역사가 그의 젊은 어깨 위에서 시작됐다.
이후 26년간 총장으로 재직하며 단국 기틀을 다졌다. 그의 시선은 영토의 한계를 넘어섰다. 1978년, 허허벌판이던 천안에 우리나라 최초의 제2캠퍼스를 세우며 대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병원을 짓고 의료 혜택을 나눴다. 서울 한복판에 있던 대학을 죽전으로 이전하는 탈 수도권의 대역사도 그의 손끝에서 지휘됐다. 수많은 반대와 난관이 바람처럼 불어왔지만, 그의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반도기 펼치고 한자 써내린 집념의 기록
그의 무대는 캠퍼스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체육은 그에게 남과 북을 잇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였다.
1981년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시작해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진짜 기적은 분단의 상흔이 깊은 판문점에서 일어났다. 1989년 남북체육회담 수석대표로 나선 그는 북측 대표와 마주 앉았다. 이념의 총칼 대신 탁구채를 쥐여주기 위해서였다.
질긴 협상 끝에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단일팀 합의를 끌어냈다. 그때 태어난 것이 흰 바탕에 푸른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였다. 국가 대신 울려 퍼진 단일팀가는 ‘아리랑’이었다.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KOREA’라는 이름 아래 남북 선수들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 눈물 뒤에는 중재의 집념이 있었다. 2000년에는 남북이산가족상봉단 단장으로 분단의 강을 건너며 민족의 젖은 눈물을 닦아줬다.
그는 인문학을 지키는 파수꾼이기도 했다. 1970년 동양학연구원을 설립하며 시작한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 편찬 사업은 그의 평생을 건 모험이었다.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무모한 도전이라 손가락질했다. 그는 고집스럽게 사재를 털고 학자들을 모았다. 이후 38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8년, 표제 한자 5만5000자, 어휘 42만 개를 담은 세계 최대 규모의 사전이 세상에 나왔다. 한자 문화유산의 뼈대를 세운 독보적인 유산이었다. 2012년 교수신문이 이를 ‘대학의 최고 역작’으로 선정했다. 사람들은 비로소 그가 지켜낸 인문학의 가치에 고개를 숙였다. 붓끝으로 쌓아 올린 장대한 만리장성이었다.
범은재단과 36년간 꺼지지 않은 봉사 불씨
그의 좌우명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억강부약(抑强扶弱).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총장실의 문은 늘 열려 있었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먼저 보듬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로서 고통이 있는 곳에 먼저 발을 디뎠고,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나눔은 삶의 가장 고귀한 가치입니다.” 중재가 입버릇처럼 하던 이 말은 그가 설립한 범은(梵恩)장학재단의 뿌리가 됐다. 올해로 출범 36년을 맞이한 재단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장학사업이야말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줄 수 있는 가장 값진 봉사활동이라는 확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굳건한 신념을 양분 삼아, 범은장학재단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청년의 앞길을 밝히며 고인의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가고 있다.
강영인·강민 기자, 권승현 수습기자 dkdds@dankoo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