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공약 모방에 청년 외면
기탁금 장벽에 출마 포기
대학가, 참정권 훼손에 분노
이달 3일 실시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젊치인(젊은 정치인)’의 의회 진입 도전은 이번에도 눈물겨웠다. 이번 선거에서 만 39세 이하 청년 정치인은 총 403명이 당선되며 49.7%의 당선율을 기록했다. 숫자상으로는 청년의 정계 진출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젊치인들이 마주한 현실은 차갑다
후보는 늘었지만 외면하는 유권자
과거에 비해 지방정치에 도전하는 청년의 절대적인 수는 늘어났다. 지난 제8회 지방선거(2022년)에서 만 39세 이하 당선자는 416명으로 8년 전(127명)에 비해 3.3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번 제9회 지방선거에서도 전체 후보자 728명 중 만 18~39세 후보자가 818명(10.4%)으로 두 자릿수 비율을 유지했다.
청년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53.2%였던 청년 투표율은 2022년 선거에서 36.9%로 무려 16.3%p 급락하며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치권이 선거철마다 청년 후보를 전면에 내세우며 표심을 자극했음에도 정작 청년들이 투표소를 등지는 ‘청년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괴리의 원인으로는 젊치인들이 청년 세대의 진짜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회옥(정치외교) 명지대 교수는 “청년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월세 부담 완화, 결혼 및 출산 여건 조성 등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생활 밀착형 정책이지만 청년 후보들의 공약은 ‘일자리·창업 지원 확대’ 등 거대 정당의 기성 공약을 짜깁기한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젊치인들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정책을 펼치기 어려운 배경에는 거대 정당의 공천 구조와 기득권 장벽이 존재한다. 지방선거에서 청년 당선자가 대폭 늘어난 것은 기초의원(구·시·군의원)에 집중돼 있다. 지방자치 제도가 전면 실시되어 민선 단체장을 직접 선출하기 시작한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이번 제9회 선거까지 약 30년의 역사 동안, 만 39세 이하의 청년 광역 및 기초단체장 당선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후보자가 본선에서 일정 득표율 이상을 얻으면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지만, 당내 경선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탁금과 심사료 등은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정치권 내부의 청년 비하 정서와 신인에 대한 냉대도 과제다. 지난 5월 경기도 양주시에서는 한 당협위원장이 야당 청년 후보를 향해 “취직이 어려우니 시의원으로 취직하려 한다”고 발언해 청년 비하 논란이 일었다.
임규이(27) 더불어민주당 부평구의회 당선자는 “현장에서 ‘어린 정치인이 복잡한 지역 민원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 섞인 시선을 마주했다”며 “젊치인으로서 낮은 인지도와 편견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정당 지원 부재 청년 정치 사교육
정당의 지원을 받지 못한 청년들이 사비를 들여 민간 정치 교육 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웃지 못할 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실질적인 출마 과정을 돕는 청년 정치 플랫폼 ‘뉴웨이즈(NEWWAYS)’는 유료 프로그램인 ‘부트캠프’와 ‘드래프트’ 시스템을 통해 청년들에게 정당 구조, 선거 전략, 지역 활동 컨설팅 등을 제공하고 있다. 6·3 지방선거에 뉴웨이즈를 통해 출마 준비를 마친 청년 후보만 119명에 달한다. 비영리 단체 ‘청정’이 운영하는 ‘청년정치학교’도 6개월 과정의 이론 및 실습 교육을 통해 정치 지망생들의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출마를 고민하다 포기한 정치 지망생 A(26)씨는 “청년들은 조직력과 자금력에서 기성 정치인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며 “낙선하면 돌아갈 직장도 없고 ‘정치 낭인’이 되기 쉽기 때문에 사비를 써서 사설 학원에 다니며 생존 기술을 배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해외 주요 선진국은 청소년기부터 정당 활동을 시작해 30대 총리직에 오르는 공적 육성 시스템이 안착해 있다. 프랑스의 가브리엘 아탈(34)은 17세에 사회당에 입당해 사상 최연소 총리가 됐다. 핀란드의 산나 마린(34), 오스트리아의 제바스티안 쿠르츠(31), 벨기에의 샤를 미셸(38) 등도 모두 10대부터 청년 정당 조직에서 훈련받은 정치 엘리트들이다. 독일은 10만 명 규모의 청년 조직이 정당 정책 개발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핀란드는 15~16세 청소년이 총리에게 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 질문을 하는 ‘청소년 의회’를 국가 차원에서 가동한다.
이선우(정치외교) 전북대 교수는 “정당이 선거철에만 급조된 인재를 영입해 소모품처럼 쓰기보다 평소 지방정치 교육과 정책 실습 기회를 제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며 “지방정치에 뛰어든 청년들이 중앙당의 목소리만 따라가는 대변인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는 토양을 정당 내부에서부터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숙하다는 선입견 깰 변화 필요
청년 정치가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권한의 실질적인 이양이 필요하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청년 공천 의무 비율 규정(광역의원 20%, 기초의원 30%)이나 국민의힘의 ‘청년 공개 오디션 토론회’ 도입 등은 긍정적인 신호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가동할 당내 생태계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
진활민(정치외교) 전남대 교수는 “현재 만 40세로 과도하게 묶여 있는 대통령 선거 출마 연령 제한을 최소 만 35세 이하로 대폭 낮춰 청년들의 정치 진입 한계선을 확장해야 한다”며 “자금 부족이 청년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청년 후보만 기탁금 부담을 대폭 축소하고 선거 비용 보전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등 실질적인 재정 지원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한 규칙 안에서 평가받길 원하는 청년들의 요구도 강해지고 있다. 박인성(28) 국민의힘 용인시 비례대표 의원 당선자는 “청년이라는 이유로 과도한 혜택이나 유리한 출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공정한 공천 구조 속에서 실력과 역량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당과 청년 정치인이 상생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6.3 지방선거 당일 일부 투표소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이로 인한 선관위 수뇌부의 동반 사퇴 파문 속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는 가장 뜨거웠다. 여야 정치권이 사태의 원인을 두고 네 탓 공방과 정략적 셈법에 골몰하는 사이, 서울 주요 대학을 포함해 우리 대학에서도 참정권 훼손을 규탄하는 총학생회의 시국 성명이 잇따랐다. 양 캠퍼스 총학생회는 ‘구국(救國)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친다’는 성명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의 핵심인 선거권이 효율과 계산이라는 미명 아래 행정 추산의 영역으로 치부됐다”며 훼손된 헌법적 가치와 공정성을 바로잡기 위한 근본적인 쇄신을 촉구했다.
대학생 이유빈(21)씨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자 공정의 원리인 선거 관리가 붕괴했을 때, 이를 매섭게 지적하고 참정권 수호를 외친 것은 다름 아닌 대학생과 2030 청년들이었다”며 “정치권은 청년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거나 미숙하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기성 정치인들이 포착하지 못하는 청년 세대의 정의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성세대와 동료 청년 유권자들의 인식 변화도 필수적이다. 대학생 양나빈(22)씨는 “여전히 청년 후보를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한 존재로 바라보는 선입견이 있다”며 “기성 정치인이 포착하지 못하는 청년 세대의 고유한 시각과 혁신성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민채·박성준·이원용 기자 dkdds@dankoo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