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6일 서울에서 샤넬 공방 컬렉션이 개최됐다. 2015년 한국에서 열린 샤넬 패션쇼 이후 10년 만이다. 티저 영상엔 ▶전광판이 걸린 빌딩 ▶롯데 타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한강과 대교를 그린 곧은 그림과 함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은행나무·소나무·한옥 그림이 나오며 기대감을 높였다. 작게 자리한 두루미와 해치의 모습까지, 서울의 전통과 현대를 고루 담아냈다.
럭셔리 브랜드는 특히 비서구 국가에서 패션쇼를 개최할 때 그곳의 문화에 관심을 가져온다. 이는 전통적인 유산을 통해 문화적 지위를 확보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본질적인 성격과도 연결된다. 비서구 국가의 오랜 문화 유산에 기대어 마치 브랜드가 역사적인 전통과 동등한 지위를 지닌 것처럼 문화를 알리는 선구자적 역할을 나서서 도맡는 것이다.
다만 이제는 타 국가의 전통을 재료와 도구처럼 사용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10년 전과 달리 진정성과 전유를 구분할 준비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샤넬의 공방 컬렉션은 타 문화와 장인정신을 정교하게 결합해낼 수 있는 역량을 자랑하는 만큼 이번 서울 컬렉션에서 샤넬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 문화를 풀어낼지 기대가 컸다.
그러나 막상 열어본 샤넬 공방 컬렉션에는 서울도 없고 한국도 없었다. 패션쇼가 진행된 장소는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한국 분관인 퐁피두센터 한화였다. 한국 안에 위치한 프랑스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갤러리 벽에 걸린 큼직한 그림을 배경으로 모델들이 걸어 나왔지만 전 세계 어느 미술관과도 다를 바 없는 정경이었다. 컬렉션 착장 또한 샤넬의 다른 패션쇼와 다르지 않았다. 이미 다른 패션쇼 컬렉션에서 발표된 옷을 한국인 모델이 입었다는 차이만 눈에 띌 뿐이었다. 구찌의 경복궁이나 루이비통의 잠수교는 서울의 도시 풍경이나 한국의 문화적 장소를 배경으로 활용했다고 비판이라도 할 수 있었으나, 이번 샤넬의 컬렉션은 서울·한국이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이번 컬렉션은 샤넬과 한화라는 기업 대 기업 간의 만남일 뿐이었다. 이들의 만남은 얼마나 서울이라는 도시를, 한국이라는 국가를 대변할 수 있는가. 티저에서 보여주는 영상은 마치 샤넬이 서울과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는 듯했으나, 실제로 만났던 것은 프랑스 미술관의 분관, 그와 연관된 한화라는 기업, 그리고 한국인 유명인사뿐이다. 우리는 기업과 유명인사가 국가와 도시를 대변할 수 있는 문화적 지위가 있다고 믿는 듯하다. 과연 그 믿음은 정당한가.
김희량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