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득보다 실에 민감할까?
인간은 왜 득보다 실에 민감할까?
  • 유헌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26.09.01 10:30
  • 호수 1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억울한 행복

 

같은 무게의 이익과 손실을 저울에 올려놓더라도, 사람들은 손실을 더 무겁게 느낀다. 행복보다 불행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같은 무게의 이익과 손실을 저울에 올려놓더라도, 사람들은 손실을 더 무겁게 느낀다. 행복보다 불행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행복한 가정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한데, 불행한 가정은 제 나름대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다. 왜 그런 걸까. 왜 행복한 이유는 비슷한데, 불행한 이유는 다양할까. 행복하게 만드는 원인은 적고,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은 많기 때문일까?

 

이런 실험을 했다. A)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100만 원을 받고 뒷면이 나오면 돈을 전혀 받지 못한다. B) 동전 던지기를 하지 않으면 40만 원을 받는다. A와 B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 소개된 내용이다. 참가자의 90% 이상이 B를 택했다. 그는 이를 비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한다. 확률적으로 100만 원의 2분의 1은 B의 40만 원보다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가자들은 왜 확률적인 50만 원보다 확실한 40만 원 쪽을 택했을까? ‘100만 원’의 이익보다 ‘0원’이라는 손실이 더 커 보였기 때문이다.

 

절댓값이 같은 액수라도 손실은 이익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조금’ 보태지는 것이지만, ‘-’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많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카너먼에 따르면, 손실은 획득보다 가중치가 두 배다. 이러한 손실 회피의 심리는 인간의 자기보존 본능과 관련해 인간관계 전반에서 나타난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의 즐거운 일에 상대가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건 용서할 수 있으나, 내가 당한 불쾌한 일에 무관심한 건 용서하지 못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에 민감하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은 크게 보고 ‘행복’은 작게 보는 경향이 있다. 행복보다 불행이 더 많은 이유는 행복한 일보다 불행한 일이 더 많아서가 아니라 행복과 비교해 불행에 훨씬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불행이 초래하는 손실 못지않게 행복이 가져오는 이익에도 민감할 필요가 있다. 행복도 불행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고 의식해야’ 비로소 ‘행복’이 된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자신의 존재를 계속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근본적인 노력 또는 역량’을 ‘코나투스’라고 부른다. 코나투스가 증가하거나 권장될 때 ‘기쁨’을 느끼고, 감소하거나 제약될 때 ‘슬픔’을 느낀다고 한다. 인간은 이성적인 지성을 통해 슬픔은 줄이고 기쁨은 늘리도록 애써야 한다. 불행감은 줄이고 행복감은 늘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 쪽에 지나치게 몰두해 행복 쪽에 마땅한 몫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행복은 억울하다.

 

 

유헌식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로 152번지
  • Tel : 031-8005-2423~4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단대로 119
  • Tel : 041-550-1655
  • 발행인 : 안순철
  • 센터장 : 김지원
  • 간사 : 신성민
  • 편집장 : 김민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순철
  • 단대신문 : 펼쳐라, 단국이 보인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6 단대신문 : 펼쳐라, 단국이 보인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picviolet0216@dankook.ac.kr
엔디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