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 온 술과 한 끼, 오늘은 순대국에 와인으로!
들고 온 술과 한 끼, 오늘은 순대국에 와인으로!
  • 이다경 기자
  • 승인 2023.05.09 15:33
  • 호수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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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콜키지 프리

어느새 식당에서 판매하는 소주가 5,000원인 시대가 왔다. 그칠 줄 모르는 물가 상승에 소주 값이 곧 7,000원, 8,000원까지 도달할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편의점에서는 2,000원이 조금 넘는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주류를 거의 두 배 가격으로 올려 받는 현실이 한편으론 못마땅하기도 하다.


이렇다보니 ‘콜키지 프리(Corkage Free)’ 문화가 유행이다. 콜키지 프리는 식당에서 지정한 개수만큼 외부 주류를 무료로 반입해 마실 수 있는 문화다. 예를 들어 ‘한 병의 주류가 콜키지 프리’라면, 원하는 주류 한 병을 무료로 반입해 마실 수 있다. 기자는 물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청년들에게 이것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와닿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던 중 순대국밥집에서도 와인 콜키지 프리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청와옥’으로 향했다. 와인은 전날 편의점에서 구매한 것으로, 가장 저렴한 만원 이하의 금액대로 선택했다. 

 

▲ 콜키지 프리 안내가 적혀있는 청와옥의 메뉴판이다.
▲ 콜키지 프리 안내가 적혀있는 청와옥의 메뉴판이다.

 

평일 낮 1시였음에도 30분 정도 대기를 한 뒤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테이블마다 놓인 메뉴판 가장 상단에는 ‘1팀당 1병에 한하여 와인 콜키지 프리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업원에게 “와인 콜키지 프리 맞죠?”라고 물으니 한 팀당 한 병이 가능하다는 종업원의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기자는 안심하며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온 와인병을 꺼내며 순대국밥을 주문했다. 와인잔과 따개를 부탁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병따개와 와인잔은 음식보다 먼저 제공됐고, 별다른 추가금은 없었다. 따개는 지렛대를 고정하고 손잡이를 당겨 빼내는 2단 방식이었다. 코르크를 따는 일에 익숙하지 않으면 애를 먹을 수 있으니 미리 사용법을 익히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 순대국밥과 레드와인, 반찬이 차려진 식탁의 모습이다.와인잔과 따개는 무료로 제공된다.
▲ 순대국밥과 레드와인, 반찬이 차려진 식탁의 모습이다.와인잔과 따개는 무료로 제공된다.

 

음식은 금세 차려졌다. 몇 가지 반찬과 헛개수 물, 와인잔과 와인병, 순대국밥을 한 데 놓고 보자니, 실로 기묘했다. 스테이크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에는 순대국밥이 있었고, 나이프와 포크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에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있었다. 쉽게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잔에 가득 찬 레드와인의 붉은빛과 순대국밥의 붉은 국물은 전혀 다른 색감이었다. 기자는 조금 두려운 마음으로 뜨거운 순대국밥을 한입에 넣어 삼키고, 곧장 레드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


맛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예상보다 두 음식의 합은 겉돌지 않았다. 싼값에 무난하게 선택한 저가 와인이었지만, 너무 쓰지 않고, 너무 달지 않은 맛이 조화로웠다. 입안이 너무 뜨거울 때 와인을 마셔주니 얼얼함과 뜨거움이 산뜻하게 내려갔다. 조금 더 단맛이 적은 와인이라면 국밥과 더 잘 어우러질 것 같았다. 어디에서도 두 번 다시 느껴보기 어려운 신기하고 이질적인 경험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계산서에 찍힌 만원을 바라보니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술을 마시고도 국밥값만 결제하면 된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원하는 술을 원하는 만큼 먹고, 다시 가져갈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득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커졌다. 기자는 남은 와인을 다음에 또 가져와 다시 한번 즐길까도 생각했다. 팍팍하고 막막한 세상에 발맞춰 가는, 함께 즐기는 새로운 문화가 긍정적으로 다가온 하루였다.

이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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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krud9874@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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