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단대신문 무단횡단 근절캠페인
[르포] 단대신문 무단횡단 근절캠페인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1.03.15 20:03
  • 호수 12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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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적 질서 새싹 틔우기’

[르포] 단대신문 무단횡단 근절캠페인

            ‘자생적 질서 새싹 틔우기’


당신의 ‘大學’, 시작과 끝은 무단횡단이네요?

약이 없던 무단횡단, 승차장 변경으로 임시처방
도로 위에 움튼 질서의 새싹, 짓밟히지 않기를

 

▲ 있으나마나한 횡단보도 앞에 아주머니 홀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 무법천지 승차장
“진짜요?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무단횡단 근절 캠페인을 벌일 거라는 기자의 말에 이용민(24, 가명)씨는 민망하게도 90도로 고개 숙였다. 이씨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죽전역 셔틀 승차장 근처에서 수신호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학생들이 떼로 무단횡단 하고나면 차들이 뒤쪽까지 꽉 막혀요. 정말 단국대에 전화해서 항의하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이제 단국대 셔틀 들어오는 것만 봐도 짜증부터 날 지경이라니까요. 학생들은 창피한줄 알아야 됩니다.”

 


▲ ‘단국대 학생들에게만 보입니다.’ 학생들만 보이는 횡단보도가 따로 있는 듯 하다.

건너편에 학생들이 무단횡단 하는 걸 지켜보는 주민 김옥림(64·수지구 상현동)씨가 보였다. 다가가서 어떻게 보이냐고 물었다가 호되게 혼났다. 김씨는 신호등이 점멸돼 있어 안 그래도 위험한 지역인데 학생들이 ‘겁대가리’가 너무 없다고 혀를 찼다. 이곳을 오가며 학생들이 차에 치일 뻔한 아슬아슬한 광경을 수없이 봤다는 것이다.

그때 한 남학생이 무단횡단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쫓아가서 말을 걸었다. 할 말 없다고 손사래 치던 그는 “그냥 남들 다 하니까 나도 (무단횡단) 하게 된다”고 말하곤 황급히 셔틀에 올랐다. 또 다른 학생은 덤덤했다. “신호등에 불도 들어오지 않으니, 무단횡단 하나 횡단보도로 건너나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고 했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현재 용인경찰서에서 교통량이 적은 지역이라 판단해 점멸해둔 상태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학생들은 신호등이 고장 난 것으로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만약 사고가 나면 점멸등 상태여도 횡단보도로 건널 경우에만 운전자 과실이 인정된다.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가 나면 전적으로 보행자 책임이다.

교통량에 따라 신호등이 들어왔다 꺼졌다를 반복한 탓인지 이곳에선 차들 역시 신호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차들은 노인이 지나가는데도 아랑곳 않고 페달을 밟았다. 신호위반 차량과 무단횡단 학생들이 도로 위에서 엉키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빵빵거리는 차들 사이로 태연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건너는 학생들 뒤로 수신호 아르바이트 이씨의 찡그린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괴상한 장면을 우리는 지금껏 당연하게 느껴온 것이다.

 

  ■ 무법천지에 ‘질서의 씨앗’ 심기
본격적 캠페인을 시작한 지난 3일. 하필이면 이날부터 갑자기 추워졌다. 단대신문 기자들이 찬바람을 등지고 ‘무단횡단 NO 횡단보도 YES’라고 쓴 피켓을 들고 승차장에 섰다. 둘러맨 어깨띠가 바람을 못 이기고 끊어졌다. 끊어진 어깨띠를 묶어 고쳐 매는데 학생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창피하다. 그때 한 무리의 학생들이 오는 게 보였다. 얼른 피켓을 들었다. 한 학생이 힐끗 쳐다보더니 아랑곳 않고 기자 옆으로 무단횡단을 했다. 다른 학생들도 눈치 보며 뒤따라 지나갔다. 이렇게 나와 있는데도 무단횡단을 하다니! 황당하다. 배신감마저 들었다. 또 다른 무리가 온다. 이번엔 좀 더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눈이 마주친 학생이 횡단보도로 갔다. 다른 학생들도 뒤 따라 횡단보도로 건넜다. 씩 웃음이 났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 김상천 기자가 무단횡단이 많은 자리에서 피켓운동을 하고있다.

그러나 다음번에도, 그 다음번에도 학생들은 기자를 무시하고 태연히 무단횡단을 했다. 빨간 점퍼 입은 남학생은 묘기 부리듯 펜스를 뛰어넘기까지 했다. 이를 악 물었다. ‘몇날 며칠을 시위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자. 버티면 이긴다.’ 그때 한 여학생이 “피켓 든 게 민망하겠어요”하고 말하며 횡단보도로 간다. 고마워서 가슴이 다 떨렸다.

두 시간 가량 그러고 서있자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오전에 붙여놓은 대자보 지금쯤 다들 봤겠지?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아 좀 그냥 횡단보도로 가주면 안 되나? 그나저나 으…너무 춥다.”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2인 1조로 둘이서 같이 나가기로 했다. 단대신문 기자들이 며칠 간 혼자 고생한 덕인지 이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횡단보도를 이용했다. 그래도 쑥스럽긴 마찬가지. 피켓 들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횡단보도 이용해주세요”하고 소리치는데 어색하고 창피해서 죽을 맛이었다. 학생들 시선이 괜히 우리를 짜증스러워 하는 것만 같았다. 늦은 듯 뛰어오던 여학생은 우릴 보더니 “나 무단횡단 해야 되는데”하고 멋쩍게 웃으며 횡단보도로 쏜살같이 뛰었다. 결국 그 여학생은 셔틀을 놓쳐 다음 차를 기다려야 했다. 미안해서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 이 대자보를 보고 학생들이 횡단보도를 이용해줬으면….

 


셔틀이 막 출발 하려는 때, 저 차를 놓치면 수업에 지각할 상황이고 마침 지나가는 차도 없다면 무단횡단도 이해가 된다.  우리는 그러나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는 그런 안전불감증, 수치심불감증을 유발하는 만성적 무단횡단에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다.

 

  ■ 새싹에 물주는 사람들
피켓 들고 추위에 덜덜 떨고 있은 지 한 시간쯤 됐을 때였다. 신세계백화점 출차장정산소 문이 열리더니 정산파트에서 근무하는 유봉옥(62)씨가 손짓했다. 콧물 흘리는 우릴 보고 잠깐 들어와 몸 좀 녹이라고 했다. 따뜻한 곡물차를 타주며 유씨는 “단국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거냐”고 물어왔다. 단대신문 기자들이라고 말하니 잘한다는 응원과 함께 “평소 (승차장 앞 도로가) 복잡하고 위험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며 “이렇게 학생들이 스스로 고쳐보려는 노력이 정말 보기 좋다”고 말했다. “횡단보도 쪽으로 가는 길바닥에 발자국 프린트를 붙여놓는 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도 건의해줬다.

기운 차린 우리는 다시 자리 잡고 피켓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우릴 무시하고 또 무단횡단 하는 한 무리의 학생들. 속상해하려는데, 그때였다. 셔틀기사 아저씨가 ‘빵빵’ 경적을 울리며 창문 밖으로 “횡단보도로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아저씨의 불의의 일침에 당황한 학생들은 민망한 듯 부랴부랴 횡단보도로 뛰었다. 속이 다 후련했다.

▲ 버스 안에서 무단횡단 하는 학생들을 쳐다보는 할아버지 시선이 민망하다. 학생들의 안전불감증, 수치심 불감증이 드러난 장면이다.

박종옥(50) 기사 아저씨는 “같은 학교 학생이 추운 날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데도 무시하고 무단횡단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느냐” “저기 있는 학생들은 뭐가 되냐”며 학생들을 야단쳤다. 아저씨는 “평소 학생들이 무단횡단을 못하도록 차를 바짝바짝 대지만, 그래도 그 좁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며 “무단 횡단 하는 지역이 큰 차도 많이 다니고, 초보운전자들이 유턴하면서 사고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고 염려했다.

이런 도움과 응원의 손길은 캠페인 내내 이어졌다. 오가는 주민들은 “단국대 학생이냐”고 물어보곤 “좋은일 한다” “수고하라”며 웃어줬다. 흐뭇하게 우릴 지켜보던 노부부의 시선은 그 자체로도 큰 힘이 됐다. 9일에는 택시 한 대가 멈춰서더니 기사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여기를 숱하게 지나가며 올 때마다 짜증이 났었어요. 운전하면서 어찌나 답답하던지…. 단국대 학생들 탈 때마다 무단횡단 좀 하지 말라고 매번 얘기하곤 했어요. 바람도 심한데 정말 고생이 많네. 아유, 제가 다 고맙습니다.” 90도로 인사까지 하는 아저씨 앞에서 우리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고쳐지든 안 고쳐지든 이렇게 나와 준다는 사실만으로 고맙다”는 아저씨 말에 이 캠페인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느꼈다.

학생들의 호응도 점차 늘었다. 이제는 피켓 운동이 없을 때도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횡단보도를 이용한 이재민(경영·4)씨는 “단대신문에서 캠페인 하는 걸 보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캠페인을 계기로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 자신은 변했다”고 말했다. 김현찬(화학공·3)씨도 “횡단보도로 건너는 게 당연한 건데 잊고 지냈었다”며 “캠페인을 보고 횡단보도로 건너기로 다시 마음먹게 됐다”고 했다. 이외에도 많은 학생들이 온·오프라인에서 단대신문에 손을 얹어줬다.

 

  ■ 첫 열매를 맺다
10일, 만원 셔틀에서 예상 못한 방송이 흘러나왔다. “학생들 무단횡단이 심해서 학교 내외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용인시에서 전화오고 총장님께서도 오셔서 보고 가셨어요. 대학생정도 됐으면 알아서 질서 좀 지킵시다….” 이경원(52) 기사 아저씨가 캠페인 하는 기자들을 보고 자발적으로 차량 내에 방송한 내용이다. 아저씨는 “무단횡단 하지 말라고 횡단보도 근처에 내려줬더니, 이번엔 차 앞쪽으로 무단횡단 하더라”며 허탈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 캠페인 열흘만에 셔틀 승차장이 바뀌었다. 더 편해지고 안전해졌다.

신문사에 갔더니 좋은 소식이 또 들렸다. 학생과 교직원들이 오늘 오전에 우리가 협조운동 벌이던 곳에 나가 똑같이 지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우성 학생과장은 “승차장 무단횡단은 평소에도 민원이 많아 신경쓰던 차였다”며 “우리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오늘부터 오전 8시에서 10시 반까지 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11일. 마침내 홈페이지에 승차장 위치가 변경됐음을 알리는 공지가 약도와 함께 올라왔다. 신세계백화점 측에서 사유지를 셔틀 승차장으로 활용하게끔 허락해준 것이다. 정 과장은 “택시 승강장 쪽으로 승차장을 옮기려 했었지만 버스가 높아 조형물에 걸리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며 “대신 무단횡단이 심한 오전 11시 이전에는 기존 승차장 건너편 신세계백화점 사유지를 쓸 수 있도록 허락 받았다”고 전했다. 또 이제 11시 이후 학교에서 죽전역 방향의 셔틀은 커브하지 않고 횡단보도 앞에서 하차하도록 해 무단횡단을 방지하겠다는게 정 과장의 설명이다. “이후에도 개선사항이 생기면 바로 손보겠다”고도 했다.

“단대신문 캠페인이 개선의 계기가 됐다”는 정 과장의 말에 그동안 캠페인을 도와준 많은 사람들 얼굴이 하나 둘 스쳐지나갔다. 

정리: 김상천 기자
취재: 죽전 취재팀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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