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인권이야기12. 인권과 사회

‘한국이 싫어서?’ 혹은 ‘좋아서?’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들 단대신문l승인2017.03.28l수정2017.03.28 11:09l142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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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뉴스토마토

서울은 여전히 바쁩니다. 사람들은 빠르게 걷고, 상점의 불빛은 밤새 꺼지지 않고, 공사장 소음은 주말에도 끊이지 않습니다. 필자는 지난 3년간 네덜란드의 조용하고 다소 느린 생활에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서울에 돌아오니 예전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지하철 출입문이 닫힐 때 마치 야구선수가 도루하듯 슬라이딩하는 탑승객이나, 공중화장실에서 큰소리로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서 ‘이제 정말 한국을 떠나고 싶다’란 얘기를 듣자 비로소 ‘서울살이’가 녹록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후배는 몇 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IT 창업을 시도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다시 직장인이 돼 매일 왕복 3시간 거리를 출퇴근하고 있지만 꿈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보다는 유럽이 더 살기 좋을 것이란 기대감에 꿈을 찾아 유럽으로 유학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후배와 헤어져 돌아오는 지하철 안, 갑자기 웃음이 났습니다. 지하철 안내방송 때문입니다. “임산부는 저출산 시대의 애국자. 임산부나 초기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합시다”라는 안내방송에, 머릿속에는 임산부 전용좌석에 앉아있던 한 중년 남성을 연행해 가는 경찰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안내방송까지 있는지 몰랐습니다. ‘저출산’이란 말에, 문득 결혼도 포기하고 유학을 결심한 후배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유학을 가는 후배나, 저출산 문제나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 한 문제입니다. 바로 인권이죠.

저출산 문제는 ‘교육을 받을 권리’,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받을 권리,’ ‘노동권’, 등 다양한 인권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상입니다. 단순히 지하철에 임산부를 배려한 좌석을 만들고, 어린이집을 더 짓는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죠.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고 해도 출산율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인권 신장은 어떤 제도를 만들고 바꾼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법과 제도는 말 그대로 인권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법과 현실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비정규직 제도가 가장 발달한 나라로 꼽힙니다. 특히 결혼과 출산 후 다니던 직장에서 자발적으로 파트타임 전환을 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육아 부담을 덜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트타임 근무를 선호하는 이유는 파트타임이라고 해도 별다른 차별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근로시간에 따라 급여만 차등 적용될 뿐, 임금 정책, 보너스, 휴가, 승진 등에 대해선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네덜란드처럼 비정규직 보호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에 차별이 존재합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6 비정규직 노동통계’에 따르면, 정규직 근로자의 유급휴가 수혜율은 약 74%지만 비정규직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31.4%에 불과했습니다. 비정규직 10명 중 7명은 법으로 보장된 유급휴가를 사용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악용해 고용주가 일방적으로 비정규직 계약을 해지하거나 연장을 거부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아직까지도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학자 왓슨(Watson)은 『법 이식』이란 책을 통해 법과 제도를 단순히 한 나라에 이식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사람의 장기도 이식하기 전 이식할 몸의 체질과 원래 있던 몸의 연관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처럼 법과 제도도 한 나라에 적용하기 위해선 그 나라의 사회적, 문화적 토양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출산, 비정규직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법과 제도만으론 결코 해결될 수 없고, 반드시 이에 부합하는 사회적 토양이 마련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권에 대한 올바른 인식입니다. 무엇보다 각 사회 구성원들이 편견과 선입견 없이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저출산도, 비정규직 문제도 개선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하철에서 ‘인권’ 방송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오규욱 인권칼럼니스트 kyuwook.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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