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인 캔버스 8.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캠퍼스 인 캔버스 8.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 단대신문
  • 승인 2017.09.06 14:44
  • 호수 14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위대한 정신세계의 웅장한 회화적 찬미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경탄할 만한 예술적 위업으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고 있을 때,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작은 도시 우르비노에서 태어난 라파엘로는 젊은 작가로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깊은 영향 하에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화풍을 쌓아가고 있었다.

▲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1511, 700x500cm, 프레스화

라파엘로(Raffaello 1483.4.6.~1520.4.6)는 페루지노에게서 그림을 배운 사람이다. 페루지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푸마토 기법을 배워서 자신의 감미롭고 우아한 화풍에 즐겨 적용했던 화가다. 라파엘로는 페루지노의 화풍을 익힌 후, 그 위에 피렌체의 두 위대한 천재 화가의 화풍을 배웠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만능 천재도 아니었고, 미켈란젤로와 같은 힘을 지닌 천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러 천재의 장점을 흡수해서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라파엘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에 의해 바티칸 궁의 교황 서명실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 <아테네 학당>은 기념할 만한 걸작이다.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그리기 시작할 때 그린 벽화인데, 르네상스의 고대 그리스 사상에 대한 동경과 관심이 잘 살아나 있다. 반원으로 구획 지어진 이 거대한 벽화는 화면 아래의 가로 길이가 7m 70cm이다. 이 큰 화면에 라파엘로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놓았다.

그림에서 계단 위 화면의 중앙에 있는 두 인물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플라톤은 붉은 옷을 걸치고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이 모습은 이데아의 세계를 지향하는 플라톤의 이상주의적 철학사상을 상징한다. 그 옆에 서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을 땅으로 향하게 하고 팔을 앞으로 뻗고 있다. 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이 모습은 플라톤에 비해 자연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상을 지녔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상징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화면의 중앙에 그려놓음으로써, 이 두 철학자가 고대 그리스 사상계의 중심인물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가까이에 한 무리의 사람들과 문답식의 토론을 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옆모습이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스승으로 플라톤의 사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철학자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너무나 존경하여 모든 저서에 소크라테스를 중심인물로 하여 대화를 전개했다. 소크라테스를 그림의 중심이 아니라 플라톤 근처 좀 떨어진 위치에 그려놓은 점이 의외이긴 하나, 그 당시에 불었던 플라톤 연구 열풍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머리는 아치형 건축물에 감싸여 있는데, 이것이 이들의 후광 역할을 하고 있다. 화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발 밑 계단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는 사람이 디오게네스다. 상체를 숙인 채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고 있는 사람이 유클리드이고, 그 뒤에 지구본을 들고 있는 프톨레마이오스가 보인다.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라파엘로는 화면의 중심인물인 플라톤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습으로 그려놓아, 그가 얼마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존경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도 화면은 결코 혼란스럽거나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고 전체가 빈틈없는 구성미에 의해 통일되어 있다. 화면 위쪽에 그려진 로마 식 아치형의 당당한 건물은 원근법적 원리에 의해 중심에 대칭적으로 그려져, 화면 아래쪽에 배치된 인물들과 상호 조응하면서 보는 이의 시선을 중앙에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집중시키고 있다. 원근법을 고려한 이러한 집중력이 5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통일시키는 구성적 힘이 되고 있다. <아테네 학당>을 그리면서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주의 깊게 연구했음이 틀림없다. 배경의 건축적 구조에 의한 주제의 강조, 많은 등장인물들을 몇 개의 집단으로 묶어 배치하는 방법, 원근법적 구성에 의한 긴밀한 통일감 등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빌려온 방법이다.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경탄할 만한 예술적 위업으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고 있을 때,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작은 도시 우르비노에서 태어난 라파엘로는 젊은 작가로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깊은 영향 하에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화풍을 쌓아가고 있었다.

라파엘로(Raffaello 1483.4.6.~1520.4.6)는 페루지노에게서 그림을 배운 사람이다. 페루지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푸마토 기법을 배워서 자신의 감미롭고 우아한 화풍에 즐겨 적용했던 화가다. 라파엘로는 페루지노의 화풍을 익힌 후, 그 위에 피렌체의 두 위대한 천재 화가의 화풍을 배웠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만능 천재도 아니었고, 미켈란젤로와 같은 힘을 지닌 천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러 천재의 장점을 흡수해서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라파엘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에 의해 바티칸 궁의 교황 서명실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 <아테네 학당>은 기념할 만한 걸작이다.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그리기 시작할 때 그린 벽화인데, 르네상스의 고대 그리스 사상에 대한 동경과 관심이 잘 살아나 있다. 반원으로 구획 지어진 이 거대한 벽화는 화면 아래의 가로 길이가 7m 70cm이다. 이 큰 화면에 라파엘로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놓았다.

그림에서 계단 위 화면의 중앙에 있는 두 인물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플라톤은 붉은 옷을 걸치고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이 모습은 이데아의 세계를 지향하는 플라톤의 이상주의적 철학사상을 상징한다. 그 옆에 서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을 땅으로 향하게 하고 팔을 앞으로 뻗고 있다. 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이 모습은 플라톤에 비해 자연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상을 지녔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상징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화면의 중앙에 그려놓음으로써, 이 두 철학자가 고대 그리스 사상계의 중심인물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가까이에 한 무리의 사람들과 문답식의 토론을 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옆모습이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스승으로 플라톤의 사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철학자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너무나 존경하여 모든 저서에 소크라테스를 중심인물로 하여 대화를 전개했다. 소크라테스를 그림의 중심이 아니라 플라톤 근처 좀 떨어진 위치에 그려놓은 점이 의외이긴 하나, 그 당시에 불었던 플라톤 연구 열풍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머리는 아치형 건축물에 감싸여 있는데, 이것이 이들의 후광 역할을 하고 있다. 화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발 밑 계단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는 사람이 디오게네스다. 상체를 숙인 채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고 있는 사람이 유클리드이고, 그 뒤에 지구본을 들고 있는 프톨레마이오스가 보인다.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라파엘로는 화면의 중심인물인 플라톤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습으로 그려놓아, 그가 얼마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존경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도 화면은 결코 혼란스럽거나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고 전체가 빈틈없는 구성미에 의해 통일되어 있다. 화면 위쪽에 그려진 로마 식 아치형의 당당한 건물은 원근법적 원리에 의해 중심에 대칭적으로 그려져, 화면 아래쪽에 배치된 인물들과 상호 조응하면서 보는 이의 시선을 중앙에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집중시키고 있다. 원근법을 고려한 이러한 집중력이 5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통일시키는 구성적 힘이 되고 있다. <아테네 학당>을 그리면서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주의 깊게 연구했음이 틀림없다. 배경의 건축적 구조에 의한 주제의 강조, 많은 등장인물들을 몇 개의 집단으로 묶어 배치하는 방법, 원근법적 구성에 의한 긴밀한 통일감 등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빌려온 방법이다.

 

임두빈(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미술 평론가

단대신문
단대신문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