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장례식에 참가한 남자 ⑩ 티모시 덱스터
자기 장례식에 참가한 남자 ⑩ 티모시 덱스터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8.09.12 19:36
  • 호수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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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의 두근두근 세계사

몹시 가난하게 태어나 교육도 받지 못한 티모시 덱스터 경의 엄청난 운은 21살에 부유한 과부를 만나 결혼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미국의 대륙회의에서는 대륙 달러라는 최초의 종이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화폐였기 때문에 화폐의 가치는 오르락내리락했고 점차 돈의 가치는 코 푸는 휴지 수준으로 추락해버렸습니다. 정부를 돕기 위해 많은 부자들은 새 화폐를 사들였고, 부유층에 속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던 티모시는 그들을 따라 하며 전 재산을 털어 화폐를 대량으로 사들였습니다. 아주 무모한 짓이었죠. 하지만 1790년 신정부가 수립되어 대륙 회의가 해체된 후, 국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돈에 쓰여 있는 가치에 따라 제대로 보상하기로 하면서 티모시 덱스터는 하룻밤 사이에 어마어마한 갑부가 됐습니다.

▲ 티모시 덱스터
▲ 티모시 덱스터


졸부가 된 티모시가 꼴 보기 싫어 그가 망하길 바란 부자 이웃들은 온갖 나쁜 사업 아이디어들을 제안했지만 놀랍게도 티모시의 엄청난 운 덕분에 사업은 성공만을 거듭했습니다. 숯을 넣어 발을 데우는 용도로 쓰던 워밍 팬을 서인도제도로 보내자 설탕 국자로 탈바꿈돼 모두 팔려나갔고, 길고양이를 모아서 카리브해에 팔았는데 때마침 쥐가 골칫거리라 쥐 퇴치용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도 했습니다. 서인도에 털장갑을 팔았더니 시베리아로 수출되고 폴리네시아에 장갑을 팔았더니 마침 중국으로 건너가야 했던 상인들이 모두 사들인 덕분에 수익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석탄 생산지인) ‘뉴캐슬에 석탄 팔기’라는 속담을 듣고는 뉴캐슬에 정말로 석탄을 팔러 보내는 황당한 짓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광부들은 파업 중이었고 석탄은 프리미엄 가격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운이 기가 막힐 정도죠?

이제 명예가 고팠던 그는 귀족이 되고 싶은 마음에 대저택을 구매한 뒤 갑자기 자신을 덱스터 ‘경'이라고 부르라 했습니다. 이후 왕처럼 개인 시인을 고용하기도 하고 귀족들을 흉내 내어 그림을 잔뜩 사들이는가 하면, 서재 한가득 읽지도 않을 고급스러운 책들을 채워 넣기도 했습니다. 정원에 가득 세울 용도로 미국 역사 속 위인들의 목상을 주문 제작해 세운 뒤 자신의 목상을 가장 크게 만들어 중앙에 세워두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자신의 목상 밑에는 ‘나는 동방의 첫째요, 서방의 첫째이며 서쪽 최고의 철학자이니라.'라고 적어뒀습니다.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 목상이 가득 세워져 있는 그의 집
▲ 목상이 가득 세워져 있는 그의 집


티모시 덱스터가 한 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자기 장례식을 구경한 것입니다. 자기가 죽으면 과연 몇이나 올지, 누가 진심으로 울지 궁금했던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설득해 주변에 자신의 사망 소식을 알렸습니다. 비록 가짜 성직자를 세우긴 했지만, 성가대가 장송곡을 불렀고 최고급 관이 묻히는 동안 참석한 수많은 사람은 엄숙하게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사람들은 최고급 와인과 음식을 대접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티모시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일단 마을이 애도의 종을 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아내가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아내에게 왜 울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며 아내를 폭행하는 소리가 모여 있던 손님들에게 고스란히 들리면서 그제야 모두가 무슨 일인지 알게 됐다고 합니다.

얼마 후, 1806년에 티모시 덱스터는 5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기 전에야 죄책감을 느꼈는지 유산은 자식들과 아내에게 골고루 나눠 줬고, 남은 부분은 친구와 동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이후 덱스터의 집은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다가 1988년, 페인트를 횃불로 벗겨내려던 업자들에 의해 집이 전부 타버리기도 했 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설계도가 남아있었던 덕에 재건축해 현재는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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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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