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울 때 가장 빛난다
나다울 때 가장 빛난다
  • 유경진 기자
  • 승인 2020.06.18 02:55
  • 호수 14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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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임현주(36) 씨

 

Prologue
아나운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만약 신비주의와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면 구시대적 발상일 것이다. 이제는 아나운서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각종 방송, 유튜브, SNS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며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여성 아나운서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다. 그중 정형화된 여성 아나운서의 모습을 깨고 안경과 넥타이를 착용하며 방송을 진행한 사람이 있다. 바로 임현주(36) 아나운서다. 우리의 관습적인 생각을 탈피한 그를 4월의 어느 날, 상암동 MBC에서 만나봤다


▶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MBC 아나운서 임현주다. 현재 ‘생방송 오늘 아침’을 진행하고 있으며, 자사 비평 프로그램인 ‘탐나는 TV’ 진행자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아나운서국에서 제작하는 ‘우리말 나들이’의 PD를 2년째 맡고 있다.

▶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으로 했다. 아나운서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대학 시절 동안 아나운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꿈도 뚜렷하게 없어 늘 방황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졸업반이 되기 직전 어학연수 목적으로 간 미국에서 인턴을 하며 자유로운 일상을 보냈다. 그 결과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나운서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어릴 때 ‘발표 잘한다’, ‘말 잘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잦았고 내가 이야기할 때 항상 주목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간 후 본격적으로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했다.

▶ 평소 여성 아나운서에게 쉽게 볼 수 없었던 안경을 쓰거나 노(NO)브래지어로 방송을 진행했는데 그 배경을 설명해 달라.
뉴스를 진행 중에 문득 ‘나는 왜 안경을 끼면 안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한 의문을 흘려보내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안경에 관해 물었더니 “끼면 되지, 그러고 보니 여성 앵커가 안경 쓴 모습을 본 적이 없네”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 반응을 접하며 내가 안경을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느껴 쓰기 시작했다. ‘노 브래지어 챌린지’의 경우는 ‘시리즈M’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 여성 3명, 남성 3명과 함께 참여하게 됐다. 브래지어에 대한 실험을 주제로 남성들이 직접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여성들은 노 브래지어로 하루를 생활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

▶ 그러한 시도를 시작하고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일단 나부터 굉장히 자유로워졌다. 직업이나 일상에서 나의 변화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자 직장의 일에 대해 훨씬 능동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관행들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사람들의 사회적 감수성이 점점 발달하고 있다. 이는 좋은 변화라고 생각하며 여성들이 느끼는 불편함이나 압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여성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 사회적 기준에 역할이나 외모를 맞춘다면 변화하기 쉽지 않다.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이든 내가 선택할 수 있음을 먼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 소신 있게 행동하는 모습이 멋진 것 같다. 주변 시선들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는 이유는 내가 느끼는 의문에서 출발했으며 엄청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옳고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라 단지 선택의 다양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흔들릴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만약 생각이 다르면 그것에 대해 같이 의견을 나누면 된다.

 

▶ 남들이 시도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하기를 어려워하는 20대들이 많다. 그러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선뜻 도전하지 못하고 남들이 가는 길을 선택하게 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자기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고등학교까지 똑같은 교복을 입고 엄격한 규칙 속에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선택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삶은 본인이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자각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스스로 선택했으면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집단에 속해 안정감을 느끼고자 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지나고 보면 의미가 크지 않아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 낚시와 여행 등 다양한 취미를 가진 것 같은데 자신만의 특별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면.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기보단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으로 글을 쓴다. 우리는 모두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 하나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기에 평소 주변인들에게도 글이나 메모를 많이 하라고 조언한다. 그걸 풀어내지 않고 안고만 있으면 병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완성된 글이 아니라 단지 내 마음 상태를 적어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후련해진다.

▶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캠페인에서 한국 대표로 인터뷰했다. 당시 소감은 어떠했나.
나를 포함해 총 4분이 선정됐는데 굉장히 영광스러웠고 감사했다. 나의 역할이 사회 변화나 의미 있는 일들에 목소리를 더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거나 영향력을 선사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흔히 ○○혐오라고 하는 혐오 표현들이 만연해 있다. 혐오에 대해 이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사회적인 갈등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시기다. 어떤 이슈에 대해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으나 문제는 편을 나눠 범주화하는 것이다. 한쪽 편이면 무조건 한쪽 편에 대해 생각하는 편향된 시각은 사회의 유연한 토의를 힘들게 만든다. 따라서 스스로 자리를 정해 국한하지 않고 개개인의 다양성과 본인 안에서도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본인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냥 임현주다. 임현주라는 단어 자체만으로 나라는 사람을 나타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임현주는 ‘임현주답네’, ‘임현주스러운’을 계속해서 꿈꾸며 좋아하는 사람이다.

▶ 사람 임현주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나는 몇 년 후나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는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기 위한 단기적인 목표만을 설정한다. 올해 안에 이루고 싶은 것은 책 작업이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은.
‘나다움’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 끝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여러분이 가진 가능성과 자신을 믿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바라봐주는 것 같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기보다 나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무엇보다 남들의 판단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을 믿고 끝까지 나아갔으면 한다.

Epilogue
기자가 만나본 임현주 아나운서는 자신을 사랑하고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나다운 것을 좋아한다는 그는 뚜렷한 신념과 함께 선택의 다양성을 존중했다.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본인의 선택, 나다움은 사회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인터뷰가 끝나고 집에 가면서 기자는 나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인터뷰를 회상하면서 오랜 고민을 하지 않고 생각해낸 결론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였다.

유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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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jin08@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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