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삶, 학문의 진정성 깨우쳐준 대학생활
인간과 삶, 학문의 진정성 깨우쳐준 대학생활
  • 윤승준(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09.05.21 16:55
  • 호수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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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대학생활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인적인 경험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필자는 지금부터 27년 전인 1982년 3월 2일 한남동 노천극장에 서 있었다. 두툼한 외투를 여민 채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입학식 축사와 환영사를 들으며 대학생활에 대한 다짐을 새롭게 했다.

대학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단지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학생활은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웠다. 고등학교 때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 아침 7시면 등교했지만 1교시 강의는 9시 반부터 시작되었고, 시간표는 뚝뚝 떨어져 있어 강의와 강의 사이에 빈 시간이 많았다.

선배들이 대학생활은 이렇게 하라고 일러주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 찾아보고 결정해야 했다. 그러나 대학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깨닫게 해 주었다. 학과 개강총회는 학생 자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학회장과 부학회장의 정족수 확인으로부터 시작된 개강총회는 안건에 대한 상정과 의사결정과정이 자유로우면서도 민주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개강파티를 통해 처음 접한 술자리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그것은 학력고사를 치르던 날 고등학교 3학년 한 해를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느라 화장실 앞에 죽 늘어선 모습을 보고 받았던 충격과 비슷한 것이었다. 대학은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하나씩 둘씩 무너뜨리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디까지는 해도 되고 어디서부터는 해서 안 되는 것인지, 새로운 기준과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압박해 왔다.

선배 혹은 동기들과의 토론과 대화는 내 생각을 흔들고 바꾸는 데 힘을 보탰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들의 치열한 삶은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한편 신입생환영회와 MT, 미팅, 축제, 답사는 대학생활의 낭만과 꿈, 젊음을 만끽하게 해 주었다. 캠퍼스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만남과 낯선 경험은 틀에 박힌 나의 생각을 활짝 열어젖히게 했다.

잿빛으로 자자드는 모닥불 가에서 밤늦도록 우정과 문학을 이야기하던 대성리 새터, 한겨울 느닷없이 찾아간 학과 동기들을 위해 자신의 어릴 적 친구들까지 불러내 농익은 매실주로 정겨운 이야기판을 마련해주던 강릉의 친구,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졸업한 지 10년, 20년이 넘어도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시는 선배님들, 비포장의 산비탈을 몇 시간이고 걸어야 할 때는 물론이고 밤을 새워가며 자료를 조사할 때에도 항상 솔선수범하시던 교수님들의 모습은 강의실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인간과 삶, 학문에 대한 진정성과 진실성을 깨치게 해 주었다.

대학생활을 시작할 무렵, 필자는 은사님께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었다. “대학생이 해야 할 일이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요?” 몇 가지 과제를 주셨다. 그 중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말로만 듣던, 제목만 알고 있는 동서양의 고전을 두루 찾아 읽으라는 것이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는 당시 연구소에 근무하고 계시던 선배교수에게 편지를 띄워 개인적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였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지, 나름대로 노력은 한다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는데 이래도 되는지, 진로와 현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답장은 이랬다. 사람이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 법인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라고. 돌이켜보면 필자의 대학생활은 새로운 세계,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기존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생활을 통하여 질적 변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대학에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생활했던 동기들과 선배, 후배, 그리고 교수님들 덕분이 아닌가 한다.

윤승준(교양학부) 교수
윤승준(교양학부)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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