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의 옛길⑭ 성종 대왕 용인 왕림마을에 사냥 오시다
용인의 옛길⑭ 성종 대왕 용인 왕림마을에 사냥 오시다
  • 이건식(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11.03.23 12:12
  • 호수 12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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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동림리의 왕림마을

⑭ 성종 대왕 용인 왕림마을에 사냥 오시다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동림리의 왕림마을


성종 대왕이 1475년(성종 6) 9월 30일에 용인의 왕림(王林) 사장(射場)에 사냥을 오셨다고 『성종실록』은 전하고 있다. 그리고 낙생역[지금의 성남시 판교 근처]의 유숙지에서 해가 뜰 때에 출발하여, 사냥터인 용인 왕림 사장에 거동하셔서 선장산(仙場山)과 효일산(曉日山)의 짐승을 몰이한 다음, 호랑이 1마리, 노루, 사슴 등 여러 짐승 36마리를 사냥하시고, 해질 무렵에 낙생역의 유숙지에 돌아 오셨다고 전하고 있다.
조선 시대 국왕의 사냥은 군사의 훈련을 겸해서 백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짐승을 포획하기 위해서 거행되었다. 이 날 성종 대왕이 용인 왕림 사장에 사냥했던 것도 군사의 훈련을 겸해서 백성을 짐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성의 생명을 해치는 호랑이 1마리를 포획하였으니 성종 대왕의 이 날 사냥은 성공적이었다.
성종 대왕이 행차하셨던 왕림 사장은 현재의 처인구 모현면 동림리의 왕림 마을 근처로 추정된다. 이 추정에 기초하면, 성종 대왕이 용인 왕림 사장에서 사냥했던 이야기를 전하는 『성종실록』의 기사는 한편으로는 낙생역에서 죽전을 경유하지 않고 용인의 왕림 사장으로 직접 진출하는 길이 조선 초기에 개척되어 있음을 말하여 주고 있다. 이를 위해서 『성종실록』에 나오는 ‘왕림 사장’ 지명의 위치를 비정(比定)할 필요가 있다.
왕림의 지명 표기는 『성종실록』 2건의 기사에만 나타나서, ‘왕림 사장’의 지명을 비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 왕림의 지명을 비정하는 데에 방증 자료로 쓰일 선장산, 효일산 등의 지명 표기도 『성종실록』 2건의 기사 이외에는 다른 기록을 찾을 수 없어서 이를 방증 자료로 활용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왕림, 선장산, 효일산 등이 인근 지역임에는 분명하고, 또 이 지역이 낙생역에서 도보로 약 4시간 거리 곧 12km(1시간에 3km를 걷는다면) 이내에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면, 우리는 왕림과 선장산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동림리와 포곡읍 신원리에 걸쳐 높이 약 350m의 선장산(禪長山)이 소재하고 있다. 선장산의 북쪽 골짜기에는 동림리의 왕림(旺林) 마을이 위치하여 있고, 남쪽에는 신원리의 선장(仙庄) 마을이 위치하여 있다. 이것은 선장산(禪長山)과 왕림(旺林)이 인접한 지역임을 말하는 것이다.
인터넷 지도 서비스에서 확인해 보면 서현역(성종 대왕의 유숙지인 낙생역과 인접해 있는 지역)부터 죽전을 경유하지 않고 성남시의 율동공원을 경유하여 모현면 동림리까지 직접 진출하는 거리를 약 9km로 제시해 주고 있다. 한편 서현역에서 죽전까지 7.53km, 죽전에서 동림리까지 8.4km로 서현역에서 죽전을 경유하여 동림리까지 약 16km로 제시해 주고 있다. 성종 대왕은 유숙지 낙생역을 해뜰 때 출발하여 해질 때 돌아 오셨으니 성종 대왕은 죽전을 경유하지 않고 동림리로 진출하는 길로 사냥을 갔다 오셨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에 따라 우리는 ‘왕림(旺林)’의 선대형 표기는 ‘왕림(王林)’, ‘선장산(禪長山)’의 선대형 표기는 ‘선장산(仙場山)’임을 추정할 수 있다.
『성종실록』에 나타난 ‘왕림’의 지명을 처인구 모현면 동림리에 있는 자연 부락인 왕림(旺林) 마을로 비정하고, ‘선장산’의 지명을 포곡면 신원리에 있는 ‘선장산(禪長山)’으로 비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첫째로 서현역에서 성남시 ‘율동공원’을 경유하여 ‘감람식물원’을 지나 모현면 동림리로 진출하는 57번 도로가 이미 조선 초기에도 개척되었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판교에서 죽전을 경유하여 43번 도로를 따라서 모현면 동림리를 지나 경기도 광주 오포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낙생역에서 유숙했던 성종 대왕의 거가 행렬은 이 길로 왕림 사장을 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종 대왕의 거가 행렬은 낙생역에서 모현면 동림리를 직접 진출하는 길을 이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죽전을 경유하는 길을 택했을 경우에는 해가 뜰 때, 낙생역을 출발해서 모현면 왕림 마을에서 사냥하고 해가 질 무렵에 낙생역에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조선 초기에 호랑이, 노루, 사슴 등이 용인의 왕림 마을 인근 지역인 선장산(禪長山)등에 서식하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선장산의 남쪽은 경안천의 상류 지역이다. 따라서 산림과 덤불 같은 곳에서 서식하며 물가에서 헤엄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호랑이가 선장산에서 포획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셋째로 왕림 마을의 한자 표기 왕림(旺林)의 선대형 표기가 ‘왕림(王林)’이고, 선장산의 한자 표기 선장산(禪長山)의 선대형 표기가 ‘선장산(仙場山)’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왕림 마을의 한자 표기로 사용되던 ‘왕(旺)’는 본래의 지명 유래와는 무관한 것임을 알려 준다.  또 선장산의 한자표기 ‘선(禪)’도 본래의 지명 유래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점에서 ‘선장산(仙場山)’의 ‘선(仙)’을 객관적 근거없이 ‘신선’의 뜻으로 해석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왕림(旺林)’의 한자 표기를 가진 자연 마을명이 전국적으로 많이 있다. ‘왕림’의 지명 유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식(국어국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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