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행가이드 편
3. 여행가이드 편
  • 길지혜 동우
  • 승인 2011.03.29 14:10
  • 호수 12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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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이름 모를 그 여행자’를 기다린다

3. 여행가이드 편

봄 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몰랐네.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 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 테야.
다시 또 알 수 없는 안갯빛 같은 젊음이라면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까 나이 든 지금이 더 좋아.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로마여행에서 인연을 맺은 그녀가 가이드로 첫 걸음을 내딛은 지 5년이 지났다. 가수 양희은의 ‘인생의 선물’에서 들려주는 노랫말처럼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노을이 보이고, 손님들의 눈빛이 보이고, 파도가 보이고, 노랫말이 마음에 담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5년 전 순수한 열정이 가득한 그때도 꽤 상큼한 블루베리 같았지만, 인생의 비밀을 조금씩 알아가는 지금 그녀는 ‘지식’이 아닌 자기만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가이드가 되어 있었다.

  로마는 신기하게도 하루를 머물러도 하루가 부족하고, 일주일을 머물러도 하루가 부족하고, 일 년을 머물러도 딱 하루가 부족하단다. 그래서 그 하루 때문에 6년을 넘게 로마에 머물러 있다는 선배 가이드의 말로 그녀가 로마에 머무는 이유를 대변했다. 30년 전 환갑의 어머니와 딸이 로마를 찾았고, 그 딸이 환갑이 되어 딸의 손을 잡고 다시 오는 곳 역시 로마라고. 250년 그 자리를 지킨 로마의 오래된 카페에 앉아, 지난 날을 떠올리며 280년의 역사를 읊조렸던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로마는 그렇게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곳이다.

   가이드 사이에 회자되는 인연과 추억은 끝이 없다.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추억을 만드니, 어찌 미다스(Midas)가 황금을 원하듯 ‘내일 하루’를 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이드에겐 어찌 할 수 없는 골칫덩이도 ‘사람’이요. 르네상스 예술의 감흥 못지않은 것도 ‘사람’이기에 내일 만나게 될 ‘이름 모를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녀가 엄마와 산책을 나갔던 어느 저녁, 몇 걸음 앞서 나간 엄마를 지나가던 트럭이 보지 못했다. 이후 그녀는 밀려오는 슬픔으로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고 싶어 했고, 아버지는 보험금으로 로마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어주셨다. 여행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그녀를 위한 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배려였다. 그때 그녀의 할아버지는 “엄청난 권력의 진시황도 죽고, 최고 의술을 가진 화타도 죽고, 하늘이 내린 지략을 가진 제갈공명도 죽으니 사람의 삶은 하늘이 정한 것이다”라며 “남아 있는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눈에 담으며 최선을 다해 살자”고 위로했다. 이후 사람이 한 말은 삼일을 가고, 들은 말은 천년이 간다했으니 말로써 풍경을 전하고, 지나간 시간의 이야기를 전하는 가이드란 직업이 어쩌면 누군가에게 가장 오래 기억되는 직업이겠다며 가이드를 천직으로 삼았다 한다.


  이 이야기들은 바티간 성베드로 성당 안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 앞에서 그녀가 한 이야기다. 그녀가 어떻게 로마에 오게 됐으며, 지금껏 그 간절함이 스스로를 지탱하고 곧추 세웠는지 담담하지만 솔직하게 털어놨다. 어머니를 여읜 슬픔을 이겨낸 그녀를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동시에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형상의 피에타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천재 조각가의 위대함을 넘어서서 한 작품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 교감하는 그 과정속의 우리들을 발견한 것이다. 가이드의 훌륭한 인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결국엔 면세품 즐비한 쇼핑코스로 우리를 인도하겠지’ 라는 그동안의 통속적인 가이드 이미지를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여행은 ‘어디에’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내 지론을 증명한 순간이기도 했다. 여행은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동행자에 따라 다른 기억을 남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먹을 것은 잘 먹어야 한다는 ‘식도락 여행자’, 복잡한 도시보다 시골마을의 탁 트인 전원 풍경을 좋아하는 ‘컨트리 여행자’, 시간을 쪼개어 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보려는 ‘발품 여행자’ 등 여행하는 스타일도 제각기 달라서 여행자 100명이 있다면, 100가지 여행스타일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여행에서 다투는 이유도 여행에 두는 기대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무도 다른 여행자를 한데 묶어 ‘전반적인 만족’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 ‘여행가이드’인데 사실 그녀와 같은 가이드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우연찮게도 그녀가 소속된 ‘유로자전거나라’의 기사를 읽게 됐다. 옵션 투어도 없고, 쇼핑 강요도 없고, 팁도 없는, 그렇지만 열정으로 무장한 가이드를 소개하는 내용의 특집기사였다. 평소 같았으면 ‘광고기사가 그럴듯하게 기사로 둔갑했군’하며 괜한 의심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엔 달랐다. 기사를 읽는 내내 그녀가 자랑스러웠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교감하며 로마를 떠나올까 하고 가슴이 찡했다.


  나 역시 오래전 가이드를 꿈꿨다. ‘여행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가이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찍 알게 된 것이 꿈을 포기한 이유지만, 그것이 전부인 그녀를 만나고서 나는 이렇게 글로써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다.

▲ 여행자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고, 그들과 교감하려 애쓰는 김민주 가이드.


 미스트레블(Misstravel.co.kr)
 길지혜(언론홍보·05졸) 동우

길지혜 동우
길지혜 동우

 dkdds@danj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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