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이거나 스킨십이거나
성희롱이거나 스킨십이거나
  • 이숙 (간호)교수·성폭력상담소 소장
  • 승인 2011.05.03 13:43
  • 호수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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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여성 허리를 끌어안고 키스를 한다. 여성은 남성을 밀치고 뺨을 때린다. 이에 아랑곳 않고 남성은 다시 여성을 끌어다 키스를 한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성은 조금 전의 반항은 잊어버린 채 열렬히 키스에 응하고 있다.” 인기 드라마 아이리스의 한 장면이다. 명확히 성폭력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별로 폭력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무척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여자는 처음엔 싫어해도 힘으로 밀어붙이면 결국은 좋아한다는 이상한 생각까지 심어주고 있다. 물론 배우들이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김태희, 이병헌이라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그 장면을 보고서 저런 키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혹자는 그게 왜 성폭력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전혀 그 여성을 비하해서도 아니고, 성적인 놀림감으로 본 것도 아니고, ‘사랑’하니까 그녀를 ‘갖고 싶어서’, 사랑 고백으로의 키스를 조금 ‘터프’하게 한 것뿐이다. 문제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해서 키스했다는 것이며 결국 여자도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랑이 문제다. 사랑으로 가는 단계에서 아주 많은 부분이 낭만의 이름으로 용서된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만약 그런 상황이 나에게 벌어진다면? 이병헌처럼 멋진 남자배우가 아니고, 그저 같은 과선배이거나 동기로 생각한 남학생이고, 김태희가 아닌 과후배 여학생이거나 동기 여학생이었을 때, 그래도 영화에서처럼 조금 ‘터프’하지만 낭만적인 사랑의 고백으로 느껴질까?

이성간의 관계에서 스킨십이냐, 성폭력이냐 하는 것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고 느낄 수 있다. 마음으로 좋아하는 이성에게 낭만적인 첫 키스를 하면서 ‘키스해도 될까요?’라고 하면 왠지 분위기를 망치거나 촌스러워지는 것 같다. 그 질문을 받는 여성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다. 그러니 영화나 드라마처럼 용기를 내어서 ‘터프’하게 기습키스를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터프한 키스가 ‘사랑’의 이름으로 폭력이 아닌 낭만으로 승화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먼저 아니다. 아무리 사랑해서라고 이해를 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대방에 대해서 불쾌한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왠지 자신이 존중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는 별로 아름답지 않은 기억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상대방이 사랑하지 않는 사이라면 낭만적인 첫 키스가 성희롱(성폭력)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 순간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의 감정에 솔직해지며,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방의 거절을 받아들일 줄도 알고,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도 있어야 된다. ‘터프’의 낭만보다는 ‘존중과 배려’의 낭만이 더 아름답고 신뢰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달콤하게 말해보자. ‘당신과 키스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두 눈을 바라보며 대답해 보자. ‘저도 당신과의 키스를 기다려왔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해야 할 사실은 낭만적 키스이건 애정표현의 터치이든 상대방의 동의를 구한 후에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숙 (간호)교수·성폭력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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