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 차민영(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11.05.17 17:17
  • 호수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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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실에 있다 보면 학생들로부터 종종 전화가 걸려온다. 지난 중간고사때 있었던 일이다. 전화를 받았는데 "몸이 아파서요. 학교를 못 갔는데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 그 학생의 첫 인사말이었다. 나는 일단 학생의 용건을 해결해 준 후 전화예절에 대한 충고를 해 주었다. 나는 단순히 교수에 대한 예우를 갖추지 못한 학생의 예의 없음을 꾸짖은 것이 아니었다. 교수들은 학생들이 질문을 하거나 이메일이나 전화로 소통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심지어 고맙게 느끼기까지 한다. 나도 그들 중 일인으로서 그 학생의 전화를 피곤해 했을 리 없다. 양해와 선처를 구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학생이 인사말과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로 자신의 용건만을 당당하게 물어온 통화로 나는 한창 하던 일에 방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불쾌감 내지는 선생으로서 자존심에 상처도 받았다. 나의 이런 생각이 '오바' 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고리타분한 보수주의자도 아니며 교수와 학생의 계층구조를 강조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소위 최소한의 에티켓(Etiquette)의 소양을 지니고 있는 대학생이라면 선생에게 전화를 걸때 인사말과 신분을 밝히는 것이 기본적인 사람 됨됨이라고 믿고 있다.
 에티켓이란 '예의' , '예절' , '품위' 등을 일컫는 프랑스어로 공공의 장소에서 마땅히 지켜야하는 사회적 규범을 의미한다. 주관적 견해가 강한 매너와는 다르게 에티켓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특히,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배려하는 것은 물론 호감까지 주어야 한다는 현대 에티켓 의미를 비춰볼 때 기본적인 전화예절도 갖추고 있지 못한 우리 학생들의 에티켓 문화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해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 회의 때 지하철에 붙어있던 에티켓 캠페인 포스터에 주목해 본 기억 있는가. 물론 보신탕을 먹지 말아달라는 88올림픽 때의 구호에 비하면 많이 세련되어졌다고 하나 마치 초등학생들에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법을 알려주듯이 영어번역과 함께 스인 지나치게 친절한 문구에 얼굴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의 에티켓 현실을 생각하면 국가적 큰 행사를 준비하는 실무자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속담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는 말이 있듯이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지켜야하는 에티켓을 소홀히 하는 학생들이 요즘과 같은 글로벌 세상에서 인격을 갖춘 호감 가는 이미지를 주는 인물로 긍정적으로 평가될 리 만무하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으로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입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에티켓을 서로 지키지 않아 불편했다던가 불쾌한 감정이 들어 화가 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은 사소한 배려나 양보 때문에 감동받아 한동안 가슴 훈훈해 한 적도 있을 것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최근 유행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후드를 머리에 반쯤 걸치고 가방을 그대로 메고 수업을 듣는 무개념 패셔니스타들, 호시탐탐 카톡질을 하는 열등한 스마트들, 커피 캔과 삼각 깁밥 봉지를 대놓고 두고 나가는 뻔돌이 뻔순이들, 사생활 침해를 거부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소음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공공의 적들, 개성과 자유를 강조하면서 화장실에서 여전히 두더지를 잡고 잇는 이기주의자들, 앞뒤 모두 생략하고 다짜고짜 자신의 용건만을 얘기 하는 에티켓 불량자들이 자기 자신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차민영(교양학부) 교수
차민영(교양학부) 교수

 ejaqh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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