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애매함
[백색볼펜]애매함
  • 권예은 기자
  • 승인 2011.09.27 17:45
  • 호수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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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할수록 더 분명해질 수 있다

 


◇ 친한 선배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고 한다. 축의금으로 얼마를 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애정남이 알려준다. “4·5·9·10월은 결혼 성수기이기 때문에 축의금 지출이 많다. 따라서 기본 축의금으로 통하는 3만원이 적절. 그 외 비수기에는 5만원.” 최근 KBS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 ‘애정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일명 애정남이 생활 속 애매한 상황의 기준을 정해준다. 물론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 사항은 아니다. 애정남이 말하기를, “위의 사항을 위반하더라도 경찰이 출동하거나 쇠고랑을 차지는 않습니다잉. 하지만 이런 것들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하나의 암묵적인 룰이고 우리들만의 약속입니다잉!”


◇ “어정쩡하다. 흐리터분하다. 애매모호하다. 혼돈스럽다….” 아직 정확한 진로를 정하지 못한 대학교 3학년인 필자의 현재 인생 수식어다. 생각해봤다. 필자의 진로가 정확해진다면 저러한 수식어는 바뀔 수 있을지. 결론은 아니었다. 세상은 온통 애매하고 흐릿한 것투성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나의 선택을 하고 나아가더라도 다시금 선택의 순간은 찾아올 터. 늘 불분명하다. 정확한 것은 없다. 모호한 인생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분명한 길을 찾아 나서는 것뿐이다. 분명하게 세상을 보려고 하는 노력들이 곧 살아가는 모습 같다.


◇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존 키츠는 시인의 자질에 대해 ‘소극적 능력’의 이론으로 집약하여 설명한 바 있다. 키츠가 말하는 소극적 능력이란, 사물과 이치를 끝까지 추구하지 않고, 불명확, 불가사의, 의혹 속에 안주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즉 애매모호하고 불명확한 표현을 통해 독자들이 의혹을 갖게 함으로써 상상력을 더 펼칠 수 있게 만든다는 것. 이러한 소극적 능력으로 시인은 오히려 상상력의 문을 활짝 열고, 감수성을 높여 사물을 보다 다양하게 노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T.S 엘리엇의 ‘몰개성론’과 맥락이 같다. 더 큰 자유와 상상력을 얻기 위해서 시인은 그 개성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시인 스스로의 자기중심적 의식을 버리고 현실과 사물을 통찰하고 직관할 때 사물의 본질이 뚜렷이 나타난다는 것이 키츠의 믿음이었다.


◇ 요즘 애정남이 대세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살아가면서 자주 찾아오는 애매한 순간들에 대해 정해주는 하나의 기준, 애정남의 해결책이 참 재밌고 공감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개그 소재로 일종의 재미삼아 정해주는 기준들이지만 실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생겨나는 막막함,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는 역할도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확연하게 그려지는 인생은 없다. 세상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색깔의 인생이 있다. 시에 나타나는 모호성이 시 해석의 획일성을 극복하고, 시적 상상력을 더 가미시키듯 우리 인생의 모호성도 마찬가지다. 잘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거니는 듯한 인생의 순간이 찾아와도 겁먹지말자. 그 자체로 또 인생의 새로운 면모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藝>

권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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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ver12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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