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한글날
[백색볼펜]한글날
  • 권예은 기자
  • 승인 2011.10.11 14:12
  • 호수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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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라는 단어는 한글일 수밖에 없다

‘정’이라는 단어는 한글일 수밖에 없다


◇ 중학생이던 시절, 고향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어떤 식당 화장실에 갔는데,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와 젊은 엄마가 있었다. 그들 옆에서 손을 씻던 필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Baby, Wash your hands before eating. Okay?” “Yes, mom.” 그 누가 봐도 한국적으로 생긴 한국 사람이, 한국 땅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었다. 영어, 영어… 하더니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영어 열풍의 진면모였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세상은 영어도 모자라 이제 제2외국어를 요구한다. 일단 영어 회화는 기본 중의 기본이 된 지 오래다. 또 근래에 “중국어를 모르면 취업하기 힘들 것”이라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한 마디에 여기저기서 중국어 공부 바람도 불고 있다.


◇ 지구촌시대라 불리는 21세기를 살면서 외국어 공부가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정작 공부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말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아니에요/아니예요’, ‘왠지/웬일’, ‘되/돼’ 등 각각 어떨 때 쓰이는 것이 올바른 표현인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우리말은 막상 쓰려고 하면 무엇이 맞는지 문득 헷갈리는 말들이 은근히 많다. 태어나 입 뗄 때부터 하는 우리말이라, 잘 듣고 잘 말할 수 있기에 쉬운 것 같아 얕보지만 알고 보면 제일 어렵다. 또 한글은 한글맞춤법 규정에 따라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한 문장으로 설명되는 깔끔한 원칙이지만 띄어쓰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헌데 우리말도 잘 못하면서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주객전도 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 안타까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우리말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 들어 영상 문화가 발달하면서 읽기를 기피하는 현상에 따른 언어 교육의 부재, 빠른 소통을 추구하며 줄임말의 유행 등 우리말이 파괴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환경 조건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말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족한 인식과 결여된 자부심이 가장 큰 문제라 생각된다.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유명한 CM송으로 기억되는 우리나라 대표 간식 초코파이 광고. 초코파이로 ‘정(情)을 나눈다’는 컨셉으로 지금까지도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광고 이후 ‘초코파이’하면 ‘정’, ‘정’하면 ‘초코파이’가 떠오른다. 이 광고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한국인의 따듯한 정서를 공략한 데 있다. 만약 이 광고를 외국인에게 설명한다고 할 때, ‘정’이라는 단어는 외국어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friendly? やさしい? 아마 비슷한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안에 담긴 우리나라만의 문화와 마음을 모두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말은 단순히 소통을 위한 언어가 아닌 그 이상이 담긴 하나의 문화다.
지난 10월 9일은 한글 창제는 기념하는 한글날이었다. 일 년에 단 하루, 한글날에라도 조상들이 남겨주신 자랑스러운 한글의 소중함을 되새겨보아야 우리가 덜 부끄럽지 않을까. 

<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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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ver12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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