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의 英雄’을 생각한다
‘鐵의 英雄’을 생각한다
  • 권용우 명예교수 ‧ 법학
  • 승인 2011.12.1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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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鐵의 英雄’을 생각한다

 

                           권      용     우
                                          <명예교수 ‧ 법학>

 
   “철의 영웅은 유산(遺産) 한 푼 남기지 않고 갔지만, 그가 지핀 용광로의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한국의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떠나보내는 국민들이 그를 향한 존경심의 표시이다. 그는 우리나라 경제의 토대가 된 철강산업의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홀연히 생을 마감했다.

   ‘鐵鋼이 宗敎’였던 박 회장

   청암(靑巖) 박태준(朴泰俊)! 그는 영일만 허허벌판에 ‘제철신화’(製鐵神話)를 쓰고 간 ‘철의 영웅’이다.
    “철이 성공하면 나라가 살고 철이 실패하면 나라도 망한다. 나는 철에 목숨을 걸었다.” 바람이 불면 아지랑이 피듯 잔모래가 올라오는 포항제철(현 포스코) 건설현장을 누비면서 직원들을 독려하던 박 회장의 말이다.
    그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소명의식을 가슴에 새기고, 용광로에서 ‘황금빛 쇳물’을 받아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남다른 열정과 의지로 ‘산업의 쌀’이라 불리우는 철 생산에 온몸을 던졌다. 제철소 건설 지휘본부인 ‘롬멜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냈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에 ‘산업의 쌀’이라는 철의 시대를 연 것이다.
   박 회장은 현장에서 늘 “나는 사장이 아니라 전쟁터의 소대장이다. 전쟁터 소대장에게는 인격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군복 차림에 지휘봉을 들고 “선조(先祖)의 피값으로 짓는 제철소가 실패하면 ‘우향우’(右向右)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고 하면서 쉴 새 없이 건설현장을 누볐다고 하니, 참으로 감탄스럽다.

    어디 그 뿐인가. 조국이 국난을 당했을 때에는 총과 칼을 들고 전장으로 나갔던 군인이었다. 그리고, 경제 현대화를 위해서는 기업인이었으며, 국가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그저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자리지킴이가 아니었다. 언제나 조국애를 불태우며, 사명감 넘치는 모습으로 일에 전념했다.
    1990년 11월, 프랑스 프랑수아 미테랑(Mitterrand, F.) 대통령이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그를 가리켜 “군인과 기업인, 정치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한국 경제개발 신화의 주역이자 다시 없을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라는 찬사를 보냈다. 또,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일본 전 총리도 “박태준은 냉철한 판단력과 부동의 신념, 정의감으로 한 ‧ 일 양국의 협력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박 명예회장을 가장 잘 평가한 말들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더하여,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은 ‘포항제철의 경영 성공사례 연구’에서 박 회장의 탁월한 리더쉽을 성공의 요인으로 꼽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朴正熙 대통령과의 인연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일궈낸 ‘철강 신화’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출발한다. 1967년 11월, 박 대통령이 박태준을 종합제철소(현 포스코) 건설추진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그에게 던진 한 마디 말이 새로운 ‘철의 역사’를 쓰게 하였다. “나는 경부고속도로를 책임질 테니 자네는 제철소를 맡게. 제철소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그러나 임자는 할 수 있어”(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가 그것이다. 얼마나 강하고 의미 있는 메시지인가.
    이에 깨달음을 얻은 박태준은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라는 그의 좌우명에 ‘제철보국’의 사명의식을 보탠다. 그리고, 밤낮 없이 이 ‘길’만을 위해서 달리고 또 달려왔다.

    이로써, 그는 1968년 4월 1일, 대일청구권(對日請求權) 자금 일부를 가지고 “경제적 타당성도 없고 절대 불가능하다”는 국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포항의 허허벌판에 종합제철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철광석을 녹여 무쇠를 만드는 제선(製銑) 작업에서부터 제강(製鋼) ‧ 압연(壓延) 공정에 이르기까지의 일관(一貫) 시스템을 갖추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이 험난한 역경을 해쳐나가면서 오늘의 조업능력을 쌓아올렸다. 그 결과, 이제 연간 생산량 3,700만톤, 연 매출 39조원에 달하는 세계 4위의 철강업체 포스코를 건설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결단과 박 명예회장의 집념의 결정(結晶)이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1992년 10월 2일, 연간 2,100만톤 생산체제를 구축한 후, 그 다음 날 국립 현충원 박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박 회장은 “불초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를 드립니다. ‧ ‧ ‧ 일찍이 각하께서 분부하셨고, 또 다짐 드린 대로 저는 이제 대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혼령이라도 계신다면 불초 박태준이 결코 나태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25년 전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잘 사는 나라 건설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주시옵소서”라는 보고문을 낭독했다고 한다. 얼마나 엄숙한 장면이었겠는가. 참으로 자랑스런 모습이었으리라.

   이제 영일만 허허벌판에 서서 안전모를 쓰고 군 지휘봉을 휘두르던 박 회장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남긴 “쇳물은 멈추지 않는다”는 귀한 말씀을 가슴 속에 새기면서 그의 유지(遺志)를 받들어야 한다. 이것은 이제 남은우리들의 몫이다. “포스코가 더 크게 성장해 세계 최고가 되길 바란다”라는 박 회장님께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기자. 그리고, 실천하자.

권용우 명예교수 ‧ 법학
권용우 명예교수 ‧ 법학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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