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義士 碑, 撤去 알고도 傍觀했다니!
安義士 碑, 撤去 알고도 傍觀했다니!
  • 권용우<명예교수 ‧ 법학>
  • 승인 2013.07.2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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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義士 碑, 撤去 알고도 傍觀했다니!

권 용 우

<명예교수 ‧ 법학>

     1909년 10월 26일, 이 날은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가 하얼빈역(哈爾賓驛)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元兇) 이또오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날이다.

     쓸쓸한 義擧의 現場, 하얼빈驛

     그 역사적 현장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하얼빈역 플랫포옴에는 안 의사가 이또오를 사살한 의거 현장은 안내판 하나 없이 타일로 된 삼각형(▷) 표시만이 바닥에 그려져 있을 뿐인데, 그것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한다(조선일보 2013. 7. 3). 이 역 역무원과 항일(抗日)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삼각형(▷)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1931년의 만주사변(滿洲事變) 이후 일본이 만주국(滿洲國)을 세우고 이또오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비석(碑石)을 세웠던 곳인데, 1949년 중국 공산당(共産黨)이 정권(政權)을 수립하면서 이 비석을 제거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0년 후반에 들어와서 하얼빈 역사(驛舍)를 보수하면서 현재의 모습대로 안 의사가 총을 쏜 지점과 이또오가 총탄에 맞은 지점을 타일로 표시한 것이라고 한다(위 조선일보).

     그런데, 얼마 전 중국을 국빈(國賓)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이 역사적 현장에 “「안중근 의사 기념비」를 설치하자”고 제의하고, 시 주석도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박 대통령의 이 제의가 하루 빨리 이루어져 안중근 의사의 ‘애국(愛國) 혼(魂)’이 이 곳에서 살아 숨쉬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또오가 피를 흘리면서 플랫포옴에 쓰러진 모습을 지켜보면서 ‘대한제국 만세’를 외쳤던 안 의사의 늠름한 그 날의 모습을 하루 빨리 보고 싶다.

     紀念碑, 撤去 알고도 傍觀했다니!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블라디보스톡 주립 의과대학 캠퍼스에 세워졌던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온데간데없이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한다(조선일보 2013. 7. 15).

     이 비(碑)는 2002년 서울보건신학연구원이 블라디보스톡 주립 의과대학과 협정을 맺고, 블라디보스톡에서 독립운동을 한 안중근 의사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때는 1909년 10월 22일, 블라디보스톡에 머물고 있는 안중근은 요동보(療東報)의 1면 톱기사에 눈을 멎었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 기사인 즉, ‘이또오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체프(Kokotsev)와 동양(東洋)에 대한 현안(懸案)을 은밀히 협의하기 위해서 26일 만주 하얼빈역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신문을 잡은 안중근의 손이 떨렸다. 그는 보던 신문을 손으로 움켜쥐고, 동지 우덕순(禹德淳) ‧ 조도선(曺道先) ‧ 유동하(劉東夏)를 급히 불렀다. 이들은 이마를 마주했다. 그리고, 절호의 기회를 놓지지 않고, 이또오를 사살할 계획을 세웠다.

     안중근은 동지들 앞에서 “장부(丈夫)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로 시작되는 ‘거사가’(擧事歌)를 낭독하고, 이또오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1909년 10월 26일, 이제 그 날이 찾아온 것이다. 안중근은 일본인으로 가장하고, 하얼빈역에 잠입한다. 이 날 청(淸) ‧ 러(露) 두 나라의 의장대가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정돈하고, 이또오를 맞았다. 곧 이어서 이또오가 거만한 모습으로 의장대의 사열(査閱)을 받고 있었다. 이 때, 이또오를 향해 요란한 총소리가 긴장된 공기를 갈랐다. 그리고, 이또오가 피를 흘리면서 플랫포옴에 쓰러졌다. 안중근이 그의 업(業)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블라디보스톡 주립 의과대학 캠퍼스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기념비」는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우리의 ‘애국 혼’이다. 가로 약 1m, 세로 약 2m 크기의 이 기념비는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비가 작년 2월경 철거된 것으로 추정되고, 4월 러시아 극동대학교로부터 독립기념관측에 철거 사실이 보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톡 주재 한국 총영사관은 뒤늦게 철거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제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조선일보 2013. 7. 19). 정말로 어이 없는 일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의 기념비가 철거되었는데도 뒷짐만 지고 있는 총영사관이 참으로 원망스럽다.

     “그 책임은 내게 있다.”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트루먼(Truman, H. S. : 1883~1972)이 남긴 이 명언을 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 관계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너무 늦었다. 그러나, 기념비를 세운 서울보건신학연구원과 국가보훈처 ‧ 독립기념관 ‧ 안중근의사 숭모회 등 유관기관들이 긴밀히 협의를 거쳐 철거의 이유가 무엇인지, 향후 기념비 복원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 그리고, 차제에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기념시설의 보존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안중근 의사 기념비」 철거를 계기로 해서, 기념시설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보존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새롭게 했으면 한다. 이것도 애국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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