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運動, 近代化의 씨앗 되다
새마을運動, 近代化의 씨앗 되다
  • 권용우
  • 승인 2014.04.1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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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運動, 近代化의 씨앗 되다

 

권 용 우

(명예교수 ․ 법학)

 

1970년 4월 22일, 이 날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날이다. 이 날 가뭄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 소집된 시 ․ 도지사 회의에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가뭄에 대한 대책과 아울러 넓은 의미의 농촌운동을 전개할 것을 지시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 마을을 우리 손으로 가꾸어나간다는 자조(自助) ․ 자립(自立)의 정신을 불러일으켜 땀 흘려 일한다면 모든 마을이 머지않아 잘 살고, 아담한 마을로 그 모습이 바꾸어지리라 확신한다”고 말한 것이 새마을운동의 시작이었다.

 

새마을運動은 ‘精神革命運動’이다

 

그 해 5월 6일, 국토보존(國土保存)에 관한 지침과 새마을운동의 추진방안을 세우고, 그 첫 사업으로 농촌환경 정비사업을 시작하면서 새마을운동이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첫 단계에서 농촌개발사업으로 시작되었던 새마을운동은 모든 직장과 도시지역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화운동(近代化運動)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은 근면 ․ 자조 ․ 협동의 정신에 입각해서 모든 국민이 자발적이고 협조적인 국가 ․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솔선수범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그 지긋지긋한 ‘보릿고개’를 넘고 조국근대화(祖國近代化)의 터전을 닦았다. 이로써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우리의 역량을 결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새마을운동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민족적 자각(民族的自覺)이었다. ‘우리 마을은 우리의 힘으로 새롭게 바꾸어보자.’ 참으로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말이 아닌가.

그 당시를 되돌아보자. 마을 주변의 도로 개발, 마을 안길 넓히기, 지붕과 담장개량, 소교량 건설, 마을회관 건립, 신품종 개발, 특수작물 재배, 농업의 기계화, 새마을 공장 건설 등이 줄을 이었다. 이는 가난한 농민들이 ‘잘 살아보겠다’는 의욕의 발로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지난 날의 가난을 벗고, 오늘의 경제대국(經濟大國)으로 성장하였다. 돌이켜보면, 우리 대한민국은 참으로 가난한 나라였다. 6 ․ 25 전쟁이 끝나던 1953년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60달러에 불과하였다. 이로부터 반세기가 조금 지난 현재에는 2만6,000달러로 급성장하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발표에 의하면, 2015년에는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고도성장을 이끌어낸 것은 제3,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경제패턴을 대전환한 데서 비롯되었다. 1973년 1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중화학공업화’(重化學工業化)를 선언하고 철강공업 ․ 비철금속공업 ․ 기계공업 ․ 전자공업 ․ 석유화학공업 ․ 조선(造船)공업 등을 전략업종으로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하면서, 수출에 올인하였다.

이로써 1971년 수출 10억 달러에 불과했던 것이 1977년에는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하였다. 그리고, 2011년 12월 5일에는 ‘연간 무역(貿易) 1조 달러’를 달성함으로써 세계에서 ‘무역 아홉 번째의 국가로 우뚝 선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63년만의 쾌거였으며, 1962년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수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한지 50년만의 경사였다.

이는 자주(自主) ․ 자립(自立)의 기치를 높이 들고 개방형 수출구조로 전환한 추진력의 결과였다. 여기에 추석과 설 연휴만 쉬면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공돌이’와 ‘공순이’로 불리었던 산업역군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새마을運動이 世界로 뻗어가다

 

우리는 이것을 ‘한강(漢江)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1조 달러 무역시대’! 이로써 우리 대한민국은 경제성장(經濟成長)과 민주화(民主化)를 동시에 이룩한 모범국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뿐이 아니다. 2010년에는 G20 정상회의(頂上會議)를 개최하고, 그 의장국으로서 당당하게 세계무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또, 2011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기구(DAC)에 가입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뀐 것이었다.

2012년 6월 23일에는 ‘20-50 클럽’에 가입함으로써 당당하게 경제대국으로 이름을 올려놓았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20-50 클럽’에 가입한 나라는 일본(1987년) ․ 미국(1988년) ․ 프랑스(1990년) ․ 이탈리아(1990년) ․ 독일(1991년) ․ 영국(1996년) 등 6개국이었는데, 우리나라가 일곱 번째로 가입한 것이다. 여기 ‘20-50 클럽’이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을 동시에 충족하는 나라를 뜻하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지난 2012년 6월 23일에 1인당 국민소득 2만3,680 달러, 인구 5,000만 명을 충족하였다.

이는 근면 ․ 자조 ․ 협동의 정신에 입각하여 우리 국민 모두가 ‘잘 살아보세’를 외치면서 노력한 결과물이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40여년 전에 우리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시작했던 새마을운동이 세계 곳곳으로부터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참으로 반가운 현상이 아닌가.

그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것이 미얀마(The Republic of the Myanmar) 양곤(Yangon)에서의 손짓이었다. 지난 2013년 8월 30일, 양곤에서 80km 정도 떨어진 농촌마을인 동파운지(East Phaunge)에서 ‘새마을회관’ 개관식이 있었다(조선일보 2013. 9. 2).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참석하여 미얀마 정부 관계자 및 마을주민들과 축하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새로 세워진 새마을회관에는 강당 ․ 도서관 ․ PC방도 갖추어졌다고 한다.

동파운지 주민들은 바나나 나무껍질로 만들어진 집에서 살고 있으며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서 삶의 질이 우리의 1950년대를 연상케 한다고 하니, 참으로 비참하다. 이처럼 가난한 동파운지가 새마을운동과 만남으로써 가난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또, 유엔의 지역개발 프로그램인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와의 업무협력으로 이어졌다. 한 보도에 의하면, 한국국제협력단(이사장 : 김영목)은 작년 9월 24일(현지시각) 유엔본부에서 밀레니엄 프라미스(Millennium Promise, 회장 : 제프리 삭스)와 업무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한다(조선일보 2013. 9. 26). 이러한 추진의 배경에는 밀레니엄 프라미스가 빈곤(貧困) 개선 프로젝트 중 우간다와 탄자니아의 사업을 지원하면서 이에 새마을운동 프로그램을 접목시킬 계획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추진되면 새마을운동이 빈곤 개선 ․ 지역개발 모델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현재 밀레니엄 프라미스가 추진 중인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가 아프리카 10개국 80여개 마을에서 진행 중에 있다고 하니, 크게 기대가 된다. 또, 현지인들을 우리나라에 초청하여 교육하고, 새마을운동 전문가를 현지에 파견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제 새마을운동이 밀레니엄 프라미스와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 업무협력을 계기로 해서 세계화에 날개를 달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면서, 이 글을 맺는다.

권용우
권용우

 lawkw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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