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幸福한 社會 됐으면 …

권용우l승인2014.08.18l0호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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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幸福社會 됐으면

 

 

권용우

(명예교수 법학)

 

 

지난 12,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만해마을 하늘내린센터에서 제18회 만해대상(萬海大賞) 시상식이 있었다. 만해대상 수상자는 평화대상(平和大賞)에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원장 : 원행 스님,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쉼터), 실천대상(實踐大賞)에 이세중(李世中 79 : 변호사, 환경재단 이사장), 문예대상(文藝大賞)에 윤양희(尹亮熙 72 : 서예가) 아시라프 달리(Dali, A. 51 : 이집트 시인 소설가) 모흐센 마흐말바프(Makhmalbaf, M. 57 : 이란 영화감독), 특별상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돕기 노란봉투 캠패인 손잡고(대표 : 고광헌)였다.

 

 

만해대상은 매년 8월에 개최되는 만해축전(萬海祝典) 기간 중에 시상하게 되는데, 이 시상식은 축전의 하이라이트이다. 지난 11~144일간 진행된 올해 축전의 주제는 청년 만해(靑年 萬海)였다. ‘만해 시()의 젊음과 영원성을 주제로 열린 첫 행사에는 문학평론가 구중서, 시인 정진규 신달자 등의 원로문인과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인 최현우(조선일보) 김진규(한국일보) 최찬상(문화일보) 등의 신진시인들이 자리를 함께 해서 펼친 방담은 참석자들을 설래게 했다는 전언이 있었다.

그리고, 만해축전은 일생을 조국독립과 겨레사랑으로 일관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 1879~1944) 선사(禪師)의 사상을 오늘에 선양하기 위하여 1997년부터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강원도 인제군 동국대학교 조선일보사와 공동으로 개최해왔는데, 올해로 18회째가 되었다.

따라서, 만해대상은 만해의 사상이 함축되어 있는 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평화대상을 수상한 나눔의 집과 관련된 기사가 더욱 필자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할머니들의 눈물이 평화대상에 배어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멍멍하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올해 만해평화대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한자리에 모였다. “저희를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뜻으로 이런 상을 준 것이죠? 어휴, 고마워라. 이런 문제를 앞장서서 얘기하는 후세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네요.”

할머니들은 가슴아픈 한많은 얘기를 풀어놓았다. ‘10대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러간 이야기, 고문과 구타 당한 이야기, 전 세계를 다니며 위안부 피해사실을 알린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한숨 짓는 모습은 듣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실천대상을 수상한 이세중 변호사는 1963년부터 변호사로 일해왔는데, 1987년부터는 경제정의실천연합 환경운동연합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등의 활동을 통해서 사회정의(社會正義)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한 수상소감 중에 만해 선생께서 주신 교훈을 통해 우리 사회에 참된 자유와 평화가 정착되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됐으면하는 말씀이 가슴에 찡하게 다가왔다.

 

 

萬海 韓龍雲은 누구인가?

 

 

만해 한용운은 1879829(음력 712)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에서 태어나 이 곳에서 한학(漢學)을 배우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속명은 유천(裕天)이었으며, 용운(龍雲)이 법명이며 만해(萬海)는 법호이다.

그런데, 그가 세상에 눈을 뜰 무렵인 18941월에 동학농민봉기(東學農民蜂起)가 일어났으며, 7월에는 일본군이 경복궁(景福宮)을 침입하는 갑오변란(甲午變亂)이 일어나 민심(民心)이 어수하였다. 이에 더하여, 그 이듬해 10월에는 일본 공사(公使) 미우라 고오로(三浦梧樓)가 주도하여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이로써 반일감정(反日感情)이 격화되어 전국 각지에서 의병(義兵)이 일어나 항일항쟁(抗日抗爭)을 펼쳤다. 그러나, 국운(國運)은 날로 기울어져갔다.

 

 

만해는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 시골에 묻혀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표연히 집을 나와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오대산(五臺山) 월정사(月精寺)에서 탁발승(托鉢僧)이 되어 불도(佛道)를 닦기 시작하였다. 그 때가 1896, 그의 나이 18세 때였다.

그 후로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19051월 설악산(雪嶽山) 백담사(白潭寺)에 들어가 연곡선사(蓮谷禪師)를 은사로 모시고 출가(出家)하면서 수도(修道)의 길에 들었다. 이로써 만해는 가정을 버리고, 속세를 등졌다.

그리고, 그는 불교개혁에 앞장서서 1913년에는 그의 불교사상(佛敎思想)을 담은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펴냈으며, 1914년에는 불교대전(佛敎大典)을 간행하여 불교의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였다. , 19189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교양지 유심(惟心)을 창간하였는데, 이로써 일반 대중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앞장섰다.

 

 

만해는 우리나라 불교계(佛敎界)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19193 1 운동 당시에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3 1 독립선언서의 공약3(公約三章)을 쓰기도 하였다.

독립선언서 끝부분에 덧붙인 공약3은 독립운동의 행동강령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언제 읽어보아도 힘이 넘치고 애국혼(愛國魂)이 깃들여 있음을 느낀다.

 

 

“1. 금일 오인(吾人)의 차거(此擧)는 정의(正義) 인도(人道) 생존(生存) 존영(尊榮)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2. 최후의 일인(一人)까지, 최후의 일각(一刻)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意思)를 쾌히 발표하라.

3. ……

 

 

이는 공약3장의 일부이다.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이 얼마나 결의에 찬 부르짖음인가. 이는 만해의 독립투사로서의 진면목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萬海思想, 萬海祝典으로 宣揚되다

 

 

그리고, 만해는 3 1 운동의 민족대표들과 함께 내란죄(內亂罪)의 죄목으로 서대문(西大門) 감옥에 투옥되어 갖은 고문에 시달리면서 재판을 기다렸다. 서대문 감옥에는 별도의 고문방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만해는 다른 민족대표들과 마찬가지로 이 방에 끌러가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만해는 감옥에 있으면서, 자기를 위해서 변호사를 대지 말 것, 사식(私食)을 들이지 말 것, 보석(保釋)을 요구하지 말 것을 제시하고 이것을 실천하였다. 그는 또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 정동분실에서 있은 결심공판에서 판사가 최후의 발언을 하라고 하자, “나는 나의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라는 짧막한 답변으로 그의 소신을 피력했다고 한다.

그의 기개(氣槪)는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 검사장 앞에서 작성한 조선독립이유서(朝鮮獨立理由書)에 잘 나타나 있다. 원고지 53장의 이 이유서는 만해의 확고한 신념에 바탕을 둔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한 것으로서, 최남선(崔南善)독립선언서를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조지훈 민족주의자 한용운”).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로 시작한 이 이유서에서 지난 일은 그렇다 하고라도 앞 일을 위하여 간언하노라. 지금은 평화의 일념이 가히 세계를 상서롭게 하려는 때이니 일본은 모름지기 노력할 것이로다로 끝맺고 있다. 이 얼마나 통쾌한 꾸짖음인가.

 

 

만해의 조국을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과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사상은 1997년부터 매년 8월에 개최되는 만해축전으로 되살아나, 오늘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올해는 만해 선사(禪師) 입적(入寂) 70주기(週忌)가 되는 해이다. 만해 선사여, 부디 천상(天上)에서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시옵소서!


권용우  lawkw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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