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 인조와 조선의 ‘정신승리’
<추노>, 인조와 조선의 ‘정신승리’
  • 김홍백 연구원
  • 승인 2014.11.11 18:31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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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華夷)의 ‘프랙탈’ 구조
인조는 할아버지인 선조와 닮았다. 선조와 인조는 모두 서자출신의 임금이고(선조는 중종의 서자 덕흥군의 아들이며, 인조는 선조의 서자 정원군의 아들), 각기 왜란과 호란을 겪었으며, 공히 자기 아들을 질투하고 증오하였다. 선조는 파천이 1회요, 전란 중에 자기 대신 분조(分朝)를 이끈 광해군을 폐세자시키려 하였다. 인조는 파천이 3회요, 전란 후에 자기 대신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를 폐세자시키는데 성공했다. 공히 권력의지는 누구보다 강했지만 공히 내치와 외교에는 무능했다. 인조는 광해군의 폐모살제를 “패륜을 저질렀다”라며 반정의 명분으로 삼았지만 정작 자신은 친아들 외에도 며느리와 두 명의 어린 손자를 죽였으며,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오랑캐와 화친했다”라며 반정의 명분으로 삼았지만 정작 자신은 사대외교로 백성을 전쟁터에 몰아넣고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다. KBS 사극 <추노(推奴)>(연출 곽정환)에서 소현세자(강성민 분)는 부하 무장 송태하(오지호 분)에게 말한다. “청이 광야를 달리는 말과 같다면 조선은 우물 안 개구리와 다를 바 없네. 군사는 한 나라를 지킬 만하면 요족하지만, 문물은 세상을 덮을 만큼 광대해야 하네.” “청나라를 따르자는 뜻이옵니까?” “배우자는 것이야. 청을 배우는 것이 바로 청을 이기는 길이야.” 그는 홍타이지의 동생 도르곤과 친교하면서 역사적인 ‘북경 진격’에 동참하였고, 청의 수도 북경에서 독일 선교사 아담 샬을 통해 서양학문과 천주교를 접하였다. 전자가 ‘중화-오랑캐’의 질서가 전도되는 ‘명청교체’의 순간이었다면, 후자는 ‘중화문명’ 바깥의 또 다른 문명과 접촉하는 ‘동서교제’의 순간이었다. ‘화이(華夷)’의 관계가 역전되고 ‘서학(西學)’이 침투한다. 이른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이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이다. 그러나 “청을 배워야 한다”던 소현세자는 독살당하고, “청을 정벌해야 한다”는 소중화주의가 ‘정신승리’한다. 소현세자의 ‘북학(北學)’은 북벌(北伐)의 시대를 거쳐 150년이 지나서야, 박지원의 ‘북학=실학’으로 재현된다. <추노>의 노비들은 말한다. 양반을 싹 죽여 그 처자식을 노비로 만들고 우리가 양반이 되자고. 정작 자신도 노비인 업복이(공형진 분)는 회의한다. “그런다고 새 세상이 된대요?” 양반 대길(장혁 분)은 노비 언년이(이다해 분)에게 말한다. “과거에 급제한 후 아주 아주 높은 벼슬을 해서 양반 상놈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들 거다. 그래서 너랑 같이 살 거다.” 전자는 양반과 노비 간의 ‘화이’를 전도시켰을 뿐 ‘구조’(신분제)는 바뀐 게 없고, 후자는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것이지만 ‘방법’은 낭만적이고 나이브하다. 명과 청의 관계가 국가 간의 ‘화이’라면, 양반과 노비의 관계는 사람 간의 ‘화이’이다. 국가 간ㆍ사람 간의 ‘화이’가 형식적으로 무화된 것이 국제ㆍ국내법상 평등한 근대 국민국가이다. 그러나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중심과 주변’은 여전하며, 약소국 안에서도 계급과 성별, 학력과 직업에 따라 ‘갑과 을’은 여전하다. 부분의 구조는 전체를 닮았으며, 그 부분의 부분은 그 부분과 동일한 구조를 반복한다. 자기 유사적 반복의 기하학적 구조가 ‘프랙탈’(fractal)이다. 화이는 ‘프랙탈’로 반복된다. 김홍백(동양학 연구원)연구원
김홍백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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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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