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과 ‘공공평평(公共平平)’의 정치
<비밀의 문>과 ‘공공평평(公共平平)’의 정치
  • 김홍백 연구원
  • 승인 2014.11.11 18:33
  • 호수 13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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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붕당과 탕평 너머의 군사(君師)
정치는 전쟁인가, 타협인가? 붕당(朋黨)의 정치가 ‘전쟁’과 같다면, 탕평(蕩平)의 정치는 ‘타협’을 지향한다. 정치란 첨예한 역사적 국면에서는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계급 간의 적대적 계급투쟁”(칼 맑스)이면서, 일상적 삶의 국면에서는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공동체가 공동으로 직면한 문제를 토론하고 설득하는 장”(한나 아렌트)이다. 붕당과 붕당, 왕과 신하의 이익이 첨예하게 충돌할 때 소통과 공감, 토론과 설득은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 공감(共感)은 나와 너 사이의 ‘공통감각(共通感覺 Common sense)’을 전제하기에 ‘상식’이 공유되지 않는 타자를 배제하며, 소통(疏通)의 ‘소(疏)’에는 ‘사물 사이가 성기다, 뜨다, 멀어지다’라는 뜻이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그 자의(字意)에 이미 ‘소통의 불가능성, 어려움, 불통성(不通性)’이 잠재되어 있다. 그렇다면 상식을 공유하지 않는 불통의 타자는 누구인가? 민(民)이다. SBS 사극 <비밀의 문>은 두 층위의 대립을 축으로 삼는다. 왕권과 신권, 왕권과 민권. 전자에서 영조(한석규 분)는 강력한 신권(노론)에 대항해 강력한 왕권을 세우고자 ‘탕평’을 활용하며, 후자에서 사도세자(이제훈 분)는 강력한 왕권에 대항해 신분의 귀천이 없는 ‘공평(公平)’으로서의 민권을 이루고자 신권(소론)을 이용한다. 탕평은 《서경(書經)》의 “무편무당(毋偏毋黨), 왕도탕탕(王道蕩蕩). 무당무편(無黨無偏), 왕도평평(王道平平)”에서 나온 말로, 치우침도 없고 무리 지음도 없으면 왕도가 탕탕평평해진다는 뜻이다. 공평은 이른바 ‘공공평평(公共平平)’으로 왕도의 탕탕평평을 민(民)의 입장에서 재서술한 ‘민도(民道)의 탕탕평평’을 의미한다. 세자는 분노한다. “힘없는 백성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는데, 그 진상규명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주도권 다툼만 벌이는 당신들이 역도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역도란 말입니까?” 서균(권해효 분)은 탄식한다.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와 그 유족이 안타까워서 진실을 밝혀보겠다는 것이 뭐가 문제야? 문제가 있다면, 자식 놈 귀한 뜻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이 못난 애비가 문제고, 진실이나 정의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는 이 험한 세상이 문제인 게지.” 이렇게 드라마는 2014년 한국의 가장 뜨거운 정국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역사에서 사도세자는 광증(狂症)으로 내관과 내인, 하인을 백여 명이나 죽였으며 심지어 아버지 영조를 죽이려고까지 하였다.(권력과 인간) 한편 영조는 표면적으로 노론의리를 승인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왕권을 강화하는 고도의 정치적 기술을 발휘하였다. 곧 붕당의 의리를 사적(私的)인 것으로 부정하고 의리의 공적(公的) 성격을 강조하여 왕권에 귀속시킨 것이다. 이는 사대부가 아니라, 세신(世臣)과 민(民)을 정치파트너로 삼고자 한 기획에서도 확인된다.(균역법) 급기야 영조는 ‘임금=스승’이라는 군사(君師)로 등극하였다. 이는 태종과 세종, 선조 때의 ‘국가의 질서’에 기반한 공적 정치가 다시금 반복된 것이며, 훗날 정조에게 계승된다. 정치는 전쟁이면서 타협이다. 군사(君師), 영조의 정치는 붕당(전쟁)과 탕평(타협)의 줄다리기 너머로, 왕권과 민권을 제한적으로나마 상보(相補)하게 한 것이다. 김홍백(동양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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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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