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만나는 청춘의 순간들 14. 총학을 위한 제언
철학으로 만나는 청춘의 순간들 14. 총학을 위한 제언
  • 김선교(철학·3)
  • 승인 2015.09.22 17:19
  • 호수 13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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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지난 15일 총학생회가 주최한 전체학생총회가 재학생 정족수를 채우는데 실패했다. 10명 중 1명의 학생도 참여하기 어려운 현재의 상황에 마음이 무겁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누리는 낭만은 학내 민주화를 위한 선배들의 노력에 빚지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쓰라리다. 끊임없는 저항을 요구하기엔 각자의 짐이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과거에 그 투쟁을 알기에 현실의 강요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운 순간이 있다.

지난주 총학생회의 목소리 역시 학내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수영의 시와 7개의 안건을 포함한 총학생회의 자료집에는 성실한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소리는 일반 학우들에게 가닿지 못했다. 총회의 개최시기,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무관심, 교육부 지침에 휘둘리는 대학본부 등이 문제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지금 이들에게 ‘알맹이 있는 외침이었다면 방해물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달됐을 것’이라고 비판한다면 너무 잔인하다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패를 딛고 일어서려면 핵심을 짚고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일반 학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총학생회가 주장하는 ‘학내 민주주의’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철저한 성찰이 없는 외침은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점에 하나의 역사를 상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우리의 선배들보다 10~20년 앞선 시기, 다른 대륙의 대학생들이 자유를 위해 저항한다.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68 운동은 대학 내의 권위주의를 해체하고 학생의 권리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오늘날 유럽의 대학생들은 우리와 같이 선배가 남긴 유산 위에서 새로운 자유를 위해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68 운동에도 그림자가 있었다. 청년의 과도한 열정은 때때로 폭력으로 번졌다. 체제의 거부에만 매몰되어 명확한 시대상을 제시하지 못한 탓에 다른 계층의 동의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지도부가 분해되고 테러적 성격으로 변질되어 갔다. 좌파 지식인들까지도 혁명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르렀다. 특별히 ‘비판이론’을 혁명의 무기로 내주었던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아도르노 교수는 자신의 철학이 왜곡되는 상황에 개탄하며 지지자들과 강하게 대립했다. 학생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급기야 세 명의 여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속옷을 벗어 그를 희롱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충격에 시달리던 선생은 몇 달 뒤 심장마비로 사망함으로써 학생들의 바람과 자신의 철학을 비극적으로 성취했다.

그가 혁명에 반대했던 것은 학문의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아도르노의 철학은 ‘실천의 거부’로 요약된다. 그는 독일의 사상을 지배했던 헤겔의 관념론을 유아론적 자기만족이라고 비판한다. 헤겔이 정신과 역사를 변증법적인 통일로 긍정했다면, 아도르노는 끊임없이 부정되고 허위로 폭로되는 삶 자체를 체념적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때문에 ‘광장’보다는 ‘교실’에 천착할 것을 강조한다.

비슷한 시기에 김수영도 시대를 앓는 고통 속에서 시 한 편을 출산한다.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바람은 먼 데에서 오고/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절망> 어쩌면 희망은 절망을 견디고 스스로를 깊게 반성하는 가운데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일까. 서로 다른 대륙의 두 지식인은 같은 시대의 아픔에 대해 비관적인 통찰을 함께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계승한 하버마스는 아도르노의 죽음 이후 파시즘적 학생운동을 격렬히 비판하며 학교를 떠난다. 더불어 동료이자 스승의 철학에서 드러났던 비관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 끝에 ‘공론장’의 개념을 제시한다. 그의 공론장은 철학적 소통의 장소다. 그는 대의제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론장은 새로운 민주성, 곧 ‘토의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공론장에서의 소통은 학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논의를 포함한다. 요컨대 공론장은 이론과 실천의 단절을 매개하는 지점인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공론장은 두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학생총회가 운영되는 대의적 조직은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낮은 투표율과 적극성이 낮은 학우의 배제가 바로 그것이다. 학생대표자들의 입장에서도 그동안의 오해를 불식하는 동시에, 자기들의 철학을 관철하고 구체적인 아젠다를 보완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학생들의 열정을 걱정한 두 명의 철학자가 내놓은 질문을 간과하지 말기를. 당신들의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당신들의 소통은 어떠한가. 총회의 민주주의가 학생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존중을 담고 있다면 꼭 확실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바란다.

김선교(철학·3)
김선교(철학·3)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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