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성웅성 - 제 3세계에 대한 원조
웅성웅성 - 제 3세계에 대한 원조
  • 최준영
  • 승인 2003.11.20 00:20
  • 호수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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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은 ‘제3세계에 대한 원조’또는 ‘개발도상국가에 대한 선진국의 원조’등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아프리카 등의 대륙에서 벌어지는 내전, 그리고 최근 이라크가 직면한 생존의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어려운 난제들을 우리는 TV와 신문 등을 통해 늘 접하고 있다. 하지만 신문의 국제 면을 무심코 남의 나라의 일이라고, 우리 생활과 직접적인 일이 아니라고 하여 신문지 넘기듯 무심코 넘긴 적은 없는가? 우리의 국제사회에 대한 무관심은 국제사회의 얼음장과 같은 냉철한 현실과 비례하여 더욱더 커져갈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국제사회의 많은 이웃국가들이 처한 그들 내부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들을 무관심하게 넘기기에 그들은 너무나도 가까이 우리 옆에 다가와 있다.
국제사회를 힘에 의하여만 설명하는 냉철한 현실주의적 국제정치학 이론에서는 순수한 국가간의 온정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국제사회 또한 냉정한 정글의 법칙만으로는 설명하기 곤란한 것 또한 분명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국제사회가 어느덧 ‘세계화’라는 범지구적인 명제 속에 하나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좁아지고 가까워져 물리적인 나라간의 장벽이 점점 희미해진 오늘날, 이웃의 빈곤은 곧 나의 빈곤이 되었다. 아직 우리는 나라간의 부족한 자원을 둘러싼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과 더 많은 욕심을 채우기 위한 선진국의 욕망, 그리고 이러한 욕망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도국과 후발주자국가들의 피나는 노력 사이의 긴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기주의에 빠져 이웃을 돌보지 않는 것은 국제화·세계화라는 명제를 공허한 외침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바로 서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개도국의 빈곤을 벗어나는데 가장 선진사례이기도 했던 한국이 이제는 세계로 손을 뻗히는 데에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최준영
최준영

 <정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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