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의 특별한 러브스토리

- 하야시 세이이치의 『적색비가』 전경환 기자l승인2015.11.24l1403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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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대에서든 ‘러브 스토리’는 항상 존재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러브 스토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느끼는 애틋함 같은 정서가 있고, 이 정서는 시대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은 넘쳐나는 러브 스토리를 접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그 러브 스토리가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70년대에 발표된 작품 중 아주 특별한 러브스토리가 있다. 바로 하야시 세이이치의 『적색비가(赤色エレジ?)』이다. 60년대와 70년대를 걸친 시대를 배경으로 하야시 세이치가 바라본 당시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그 풍경 속에 그려진 러브 스토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60년대부터 70년대는 새로운 가치관이나 표현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전 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를 꽃 피우며 그 흐름을 함께했다.전 세계가 반전을 외치는 투쟁을 하였고, 히피의 플라워 무브먼트, 마리화나, LSD, 사이키델릭에 열광했던 배경에는 미국의 베트남전쟁이나 흑인의 공민권운동 등, 시대적 사건들이 존재했다.

일본만화도 카운터 컬처와 함께했고, 그 결과물은 지난 기사들에서도 몇 번 이야기했던 만화 잡지 『가로(ガロ)』였다. 앞서 소개했던 쓰게 요시하루나 아베 신이치 같은 작가들도 년대와 70년대를 걸쳐 새로운 가치관과 시대와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 즉 인간 본연의 염원 같은 것들을 만화로 그려냈다. 하야시 세이이치 또한 『가로』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었고, 『적색비가』는 하야시 세이이치의 대표작이자, 카운터컬처의 총체인 만화 잡지 『가로』를 대표하는 러브스토리였다.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에서 근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만화가를 꿈꾸는 신출내기 애니메이터, 이치로와, 역시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에 근무하는 사치코는 서로를 사랑하며 동거를 하게 된다. 이치로와 사치코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두 사람의 동거생활은 잠시나마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이내 냉혹한 현실에 이치로는 사치코를 사랑하면서도,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사치코 역시 이런 이치로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이별을 준비하게 된다.

『적색비가』의 이야기는 위의 내용처럼 사실 뻔하고 흔한 러브 스토리이다. 하지만 이 뻔하고 흔한 러브스토리가 아주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적색비가』가 보여주는 화법이 기존의 만화의 화법과는 굉장히 색다르고 생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적색비가』가 보여주는 만화 화법은 하야시 세이이치의 압도적이고 경이로운 연출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전에 소개했던 쓰게 요시하루(つげ義春)의『나사식(ねじ式)』을 계기로 새로로운 표현방법을 찾게 되었는데, 하야시 세이이치 또한『적색비가』를 통해 만화의 새로운 표현 방법을 보여주었다. 애니메이터 출신인 자신의 장기를 살려 스피디하면서도 기존의 만화에서 보여줬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실험적인 컷 구성을 통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컷 안에 표현된 이미지와 기호의 상징을 통한 이야기의 암시와 감정표현, 그리고 작품 내에 깔린 초현실적인 무드는 자칫, 뻔하고 흔할 수도 있는 러브 스토리를 아주 색다르고 신선하게 그려내고 있다. 『적색비가』는 분명 기존의 만화화법과 다른 새롭고 실험적인 화법 때문에 신선함과 동시에 난해한 작품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색비가』가 아직까지 일본에서 사랑받는 작품인 이유는 러브스토리가 지니고 있어야할 특유의 정서를 놓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치로와 사치코의 동거와 이별의 과정에는 왠지 모를 애틋함과 슬픔 같은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 받게 된다. 담겨져 있다.특히 후루야 우사마루의 『파레포리』에서 패러디되기도 한 마지막 장면은 꽤나 유명하다. 사치코와 헤어진 후 슬퍼하는 이치로의 모습에 받는 생생한 감정은 도저히 말로는 형용하기 힘들다. 아마 하야시 세이이치가 아니면 그릴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작품 속 두 주인공인 이치로와 사치코는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냉혹한 현실에 부딪히며, 그 당시에 일어났던 베트남의 반전 시위나 학생집회 같은 시대적인 사건과 카운터컬처의 흐름과 동떨어져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삶은 보잘 것 없어 보이기까지 하며 그들의 사랑 또한, 그저 꿈 같이 허무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치로와 사치코도 당시의 시대가 새로운 가치관을 염원하고 있었던 것처럼, 분명히 특별한 무언가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다. 결국 하야시 세이이치가 이치로와 사치코의 러브 스토리에 투영시켰던 것은 하야시 세이이치 본인이 바라던, 더 나아가 그 시대가 바라던 염원이 아니었을까.


권성주 만화연구소장


전경환 기자  32154039@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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