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9회 대학문화상 소설부문 당선작(전문)
■ 제39회 대학문화상 소설부문 당선작(전문)
  • 단대신문
  • 승인 2016.03.23 01:26
  • 호수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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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고운(문예창작학과)

소리는 분명 울리고 있다. 단속적으로, 명징하게. 김은 자신의 왼쪽을, 왼쪽이라고 불릴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문에 가져다 댄다. 발소리는 분명 계단 아래서부터 들려왔다. 김은 조심스레 도어스코프 너머를 살핀다. 좁은 시야의 한 귀로 하나의 정수리가 봉긋이 솟아오른다. 희다. 어둠 속에서 희고 자그마한 정수리가 떠오른다. 그럴 리 없어. 김은 중얼거린다. 찾아올 수 있을 리 없어.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 걸. 딛고 선 돌바닥처럼, 김의 허벅지는 보다 견고해진다. 정수리가 한 칸 더 솟아오르고, 계단의 모퉁이를 돌아 나오고, 주름 진 얼굴이 그늘의 외피를 벗었을 때 김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팡이를 짚은 노파가 김의 대문 앞을 느리게 지났다. 힘살은 그때서야 긴장을 벗는다. 한기가 등을 타고 젖가슴까지 침범했을 때 그때서야 김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널브러진 옷과 오물이 든 요강을 향해. 거실 바닥에 놓인 악보를 향해. 들창 사이로 드는 외풍이 맵차다. 틈새로 부는 바람이 우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곧 적요해질 것을 안다. 다 자기가 자초한 일이야. 그러지만 않았어도…. 음표 옆에 푸른 도돌이표를 그리며 김은 중얼거린다. 그러면서도 김은 귀를 기울여본다. 고함과 오열과 홍소 따위가 한데 모여 우짖는 소리, 누구의 것인지 모를 소리가 골목 가득 운다. 울었다. 고함과 오열과 홍소의 음계가 그녀의 귓바퀴를 타고 돌았다. 김은 악보에 몇 개의 기호를 더한다.

D.C

푹 주무셨어요? 김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감각은 차례를 두고 돌아왔다. 먼저 상판과 맞댄 볼이 얼얼해왔고, 또 입가가 축축해왔고, 시큰한 침 냄새가 물씬 올라왔다. 다만 눈앞의 상(狀)은 무너진 채로 한동안 일어날 줄 몰랐다. 김은 책상 앞에 선 남자가 서서히 형태를 갖추는 것을, 그늘이 잿빛 양복이 되고 두 덩어리의 그림자가 신발이 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나이에 참 대단해. 회사에서 부업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이 대리의 쉰 목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돌았다. 김은 서둘러 몸을 일으킨다. 얼굴에 붙은 몇 장의 악보가 바닥으로, 김의 발밑으로 떨어진다. 지원 씨는 아주 회사가 가족 같은가봐? 악보에는 벌써 시커먼 발자국이 묻었다. 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리가 가족 같은 회사라고 발음했는지, 좆같은 회사라고 발음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우선 어머니부터 보고 와요, 그 다음 내 자리로 오고. 이 대리가 어머니라고 발음했을 때, 김은 잠시 숨을 멈춘다. 엄마, 라고, 저 멀리서 누군가 부르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김은 이미 내달리고 있었다. 발끝을 세우고, 지면을 단단히 디디며 칸막이가 선 책상 사이를 지났다. 칸막이 너머로 김을 향한 수군거림이 바쁘게 오갔다. 어머니가 저 사이에 있다. 높이를 맞추어 쌓인 서류 사이에, 수정을 기다리는 수많은 보고서 사이에. 얼른 쫓아내야 해. 김의 시선 끝에 꽃무늬 치마가 걸린 것은 그때다. 김은 웬 사내와 함께 선 어머니를 향해, 경비의 어깨 너머로 연신 고개를 내미는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어머니가 김의 품에 안겼을 때, 주름진 얼굴이 김의 가슴에 닿았을 때 김은 순간 몸을 뒤로 물렀다.

“엄마, 여기 가자. 여기!”

가기는 어딜 가? 대체 왜 왔어? 그렇게 묻는 김에게 어머니는 구겨진 전단지 한 장을 내밀었다. ‘전에 없는 가격, 10박 11일 남동부 유럽 일주 특가, <2,190,000>!’ 김은 일곱 자리의 금액과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붉게 인쇄 된 금액 너머로 폐허가 된 신전이 희게 빛났다. 때문인지 금액의 숫자가 더욱 선명하다. 아가씨가 보호자야? 어머니의 팔을 붙들고 있던 사내가 앞으로 나선 것은 그때다. 이거 봐, 이거. 이거 다 어떻게 할 거야? 사내는 김에게 몇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김은 사진 속에 진열된 그릇과, 그릇의 파편과, 내달리는 어머니와, CCTV 속의 시간을 응시한다. 불편하신 분 이렇게 두는 거, 다 아가씨 책임 되는 거야. 알아요? 그렇게 말한 사내가 김이 든 사진 위에 영수증을 얹었다. 진열대 위로 넘어지는 여자는 분명 어머니가 부딪히고 간 그 여자다. 영수증 아래로 보이는 사진 속에서 어머니는 웬 종이 한 장을 들고 엉망이 된 가게를 걸어 나왔다. 김은 어머니가 든 전단지와, 영수증에 적힌 금액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실일까.

“두 시간 전 일인데 이걸 어떻게 다 인쇄해올 생각을 하셨대? 영수증 말고, CCTV 원본이랑 이 여자 연락처부터 가져와요, 경찰서로.”

사기일까. 경비와 사내를 뒤로하고 김은 어머니를 잡아끌었다. 김은 근골에 고인 모든 힘이 중력을 따라 휩쓸려나가는 상상을 한다. 흔한 일이다. 흔한 하루다. 하지만…. 화를 내는 대신, 김은 손에 든 영수증과 사진을 구긴다. 하지만 저게 대체 뭐라고…. 어머니는 여전히 전단지 한 장을 품에 안은 채 바쁜 걸음으로 김의 뒤를 따랐다. 전단지 속 신전은 일찍이 어머니의 시로 쓰인 적이 있다. 신의 부재를 온 몸으로 현현하는 기둥과 제단은 신도들에 의해 빠르게 훼손되었다. 뒤늦게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복구된 신전은 재질이 다른 살점을 기둥마다 붙이고 관광객을 맞이했다. 어머니는 그 시에 과부라는 제목을 붙였다. 김은 차라리 당신 이름 석 자를 제목으로 쓰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이죽거리고는 했다. 그걸 기억하는 걸까. 김은 어머니의 얼굴을 흘깃 바라보았다. 주름과, 저승꽃 핀 얼굴과 양 갈래로 곱게 땋인 머리카락이 온통 낯설다. 엄마 어디 가? 여기 안 가? ‘엄마’ 라고, 김은 어머니가 발음하는 그 단어를 속으로 되풀이해본다. 어머니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회사 밖으로 나가는 것과 동시에 김은 이마 위에 손차양을 댔다. 이런 데 갈 시간이 어디 있어? 밖에 나오지 마, 집에 가서 전화하고.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이 맹렬하다. 김은 도보 위로 어머니를 떠민다. 뜨거운 볕 아래서 어머니는 눈가를 닦았다. 땀이었을까.

 

시집은 종이비행기가 되었다. 시를 쓴 시인의 손에 의해서.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던 날, 어머니는 자신의 등단 시집을 찢어 비행기를 접었다. 제 시가 구겨지고, 찢어지고, 훼손되는 것을 어머니는 즐겁게 바라보았다. 그 순간 김은 부모를 모두 잃었다. 단어를 잊는 것부터 시라는 걸 모를 때까지 어머니는 유년으로 되돌아갔다. 아무리 아이 같은 행동을 해도 어머니가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았다. 아무도 반기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나도…. 김은 중얼거린다. 나도, 라는 자신의 발음에서 김은 일정한 음계를 읽는다. 음을 만들 때에만 난삽한 생각이 멈추고는 한다. 때문에 작곡과 밤샘과 부업과 출퇴근이 빈틈없이 반복되었다. 혼곤한 채 김은 버스에서 몸을 내린다. 그때서야 사위는 고요해진다. 비 내리는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대신, 그 고요를 한껏 누리는 대신 김은 걸음을 서둘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김의 그림자는 도로 위에서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밤이면 사람의 그림자인지, 건물의 그늘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골목을 지키고 서 있었다. 김은 그런 명암을 자주 다른 사람의 것으로 느끼고는 했다. 지금처럼. ‘전공 살리는 건 좋은데, 직장에서 이러는 건 너무하지 않아? 아니면 예술 한다고 유세부리나? 이래서 젊은 사람은….’ 이 대리는 30분 동안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김은 30분 동안 그의 구취를 맡았다. ‘사실 관계가 어떻든지 간에, 소송이 들어오면 저희도 조사를 해야 해서요. 금요일 오후 7시까지 어머니 모시고 출두해주세요.’ 자신을 경찰이라고 밝힌 사내가 김에게 출두를 요구한 것은 사내가 돌아간 다음의 일이다. 변호사 선임, 합의금, 피해 보상금…. 김은 단어에 얽힌 액수를 세어본다. 그 액수는 어머니 대신 김이 지게 될 빚이다. ‘진짜 K대 출신 맞아요? 아니, 난 더 모르겠고 이번 수시도 떨어지면 우리 진수 다른 거 시킬 거예요.’ 김은 ‘우리 진수’에게서 부모가 그런 핑계로 벌써 작곡 선생을 세 번 갈아치웠다는 것을 들었다. 네가 떨어지는 게 내 탓이야? 첨삭 중인 악보에 그렇게 적는 대신 김은 다른 음표를, 교정된 기호를 촘촘히 그려주었다. ‘오늘 지혜가 술 한 잔 하자는데? 자기 승진했다고.’ 그리고 지금, 김은 막 도착한 문자를 지운다. 흔하다. 이 모든 일상이 흔하다. 모든 친척이 어머니를 외면하는 지금이, 악보 대신 보고서를 쓰는 서른의 삶이나 우울과 가난이 이제는 흔하다. 흔한 예술가의 흔해 보이는 성공담이 김의 유일한 위무다. 하지만 혹시, 혹시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김은 그렇게 중얼거려본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김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어머니는 저 아래에, 저 문 너머에 있다. 김에게 위무가 되는 삶은 그보다 멀다. 오히려 저 아래에, 저 문 너머를 향해 갈수록 멀어지는 그 어딘가에 있다. 결코 흔하지 않은 어딘가에. 문을 여는 동시에 김은 마른 입술을 핥아본다. 맞물린 입술이 떼어진다.

“자고 있어?”

아니. 아주 희미한 대답이었기 때문에 김은 보다 귀를 기울였다. 환청이었을까. 불 꺼놓고 뭐해? 대답을 듣는 대신 김은 집에 들어선다. 좁은 들창으로 드는 가등 불빛이 집을 밝히는 유일한 조명이다. 그 조명에 의지해 김은 발에 치이는 것을 유심히 살폈다. 지난 번 어머니는 혼절한 채 여기에 누워 있었다. 김은 어제 미처 개지 못한 이불 더미를 발끝으로 밀어본다. 발목에 실리는 이불의 무게가 가볍다. 왜 대답이 없어! 치우지 않은 밥상과 베란다에 쌓인 쓰레기 더미가 어두운 집에 그늘을 더한다. 그늘 속을 헤매던 김이 문고리를 잡은 것은 그때다. 김은 한 번 더, 문을 열어젖힌다.

“이거 봐, 엄마. 내가 했어.”

방이 밝다. 밝은 조명 아래서, 벽과 문에 붙은 흡음재가 가장 먼저 김의 시선에 들었다. 눈앞에 댄 손가락을 조금씩 떼어가며 김은 방 안을 살폈다. 어머니는 방 중앙에 앉았다. 낮에 본 긴 꽃무늬 치마가 누런 장판위에 하나의 원을 그렸다. 어머니 앞에 널린 악보는 어제 김이 두고 간 그대로 도열해있다. 오선지에 까만 음표를 걸고. 까만…. 김은 눈앞에 둔 손을 치운다. 바닥에, 책상에, 행거 아래 보이는 흰 악보가 선명하다. 그보다 온통 까맣게 칠해진 오선지가 더욱 선명하다. 음표 대신 글자가 걸린 악보가, 온통 까만 글씨로 덮인 악보가 김의 시선을 가득 채운다. 이거 봐, 나 잘했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어머니가 웃는다.

“이거 내가… 내가 쓴 거 아냐? 이거 뭐야?”

이게 대체 뭐야? 어머니의 손에 들린 만년필이 형광등 아래서 빛을 반사해낸다. 순간 숨이 막혀온 탓에 오히려 김은 숨을 참아야 했다. 엄마 일, 내가 다 했어! 주름이 자글자글한 어머니, 온 몸에 저승꽃이 핀 어머니, 다리에 힘이 없어 바닥을 짚고 일어나야만 하는 어머니가 시커멓게 칠한 악보를 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14년 1월 7일. 악보에 그린 날짜가 형형하다. 바닥을 두드리며 수많은 박자를 만들고,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루 씩, 하나 씩 그린 악보가 지금 김의 앞에 있다. 글자에 채 덮이지 않은 기호와 음표를 드문드문 보이며. 수백 번, 수천 번 건반을 두드린 기억이 순간 김의 머릿속을 스쳤다. 머릿속에서 눈앞으로 한순간 스쳐간 기억은 이제 악보처럼 온통 까맣다. 입을 벌린 채, 숨을 참은 채 서 있는 사이 어머니는 김의 얼굴 앞에 전단지 한 장을 들이 밀었다. 폐허가 된 신전보다, 신전을 가린 금액보다 그 뒤에서 아이처럼 웃는 어머니의 얼굴이 먼저 김의 눈에 들었다.

“이제 시간 많지? 여기 같이 갈 수 있지?”

가방을 던진 것은 그때다. 도움이… 안 되면… 가만히 라도… 있어야지! 음절이 끊길 때마다 김은 선반에서, 책장에서, 바닥에서 물건을 주워 던졌다. 벽에, 건반에, 어머니에게 맞기도 하며 물건은 울음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머니가 몸을 움츠릴 때마다 수많은 음파가 어머니의 몸 밖으로, 집 밖으로 미쳤다. 엄마는 왜 나만 괴롭혀? 엄마 싫어! 웅크린 어머니도 지지 않고 소리 질렀기에, 김은 문을 굳게 닫아야만 했다. 흡음재의 마루와 골에는 이 모든 소음이, 언어라고 부를 수 없는 소리가 모두 고일 것이다. 진짜 싫은 사람이 누군데, 지금 괴롭히는 게 누군데! 소리를 내질렀을 때 김의 무릎은 허물어졌다. 젖은 눈앞으로 헤진 전단지를, 둥그렇게 구겨진 전단지를 줍는 어머니가 보인다. 비는 듯 엎드린 채 김은 잠시 말이 없다. 저 여자는 거의 어머니처럼 생겼다. 김은 축축이 젖은 어머니의 얼굴을 응시한다. 주름진 입술은 벙긋거릴 뿐, 어머니는 말 대신 짐승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울었다. 김은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어머니는 여러모로 말 뿐인 사람이었다. 다음에는 꼭 같이 장을 보자고 말하고서 시를 쓰고 행간을 나누며 하루를 허비하는 것이 어머니의 일상이었다. 방에 앉아 가난과 바꾼 자신의 시집을 읽고, 또 읽는 것이 유일한 여가 활동이었다. 의사는 ‘그런 생활이 조기 치매를 촉진했다’고 진단했다. 때문에 어머니는 시를 잃었다. 시를 잃고 짐승처럼 울었다. 몇 년, 몇 십 년 뒤에는 언어 자체를 잃을 것이다. 김은 고개를 든다. 가자. 그렇게 말하는 제 목소리가 환청 같다. 거기 가고 싶다며? 그래서 이렇게 한 거 아냐? 김은 고개를 든다. 저 여자, 연신 코와 입을 닦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저 여자는 어머니와 닮았다. 김은 젖은 얼굴을 닦는다. 가고 싶으면 가. 가자, 지금.

저녁이면 도로는 밤의 육질이 된다. 울렁이는 가등 불빛을 보며, 바닥에 스러진 소금 결정을 보며 김은 문득 제 몸이 바다 한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해본다. 여기 잠시 있어. 여자의 손이 김의 목에 닿았을 때, 순간 김은 몸을 움츠렸다. 여자의 손은 미아 방지 목걸이를 아귀에 쥔 후에야 제 자리로 돌아갔다. 엄마가 아빠 찾아올게. 아직 주름지지 않은 얼굴이 김을 보며 미소했다. 그 순간은, 이 순간은 날 것처럼 선명한 기억이다. 엄마, 어디가? 우린 아빠 없잖아. 묵언으로 일관하는 여자의 얼굴이 흐리다. 이목구비가 지워진 여자의 뒤를 따르며, 김은 ‘엄마’라고 발음해본다. 여자의 시선이 여러 번 김의 얼굴을 스치고 간다. 엄마! 라는 발음이 고함이 되기까지, 울음이 되기까지 사람들은 매대 사이를 오갔다. 오갈 뿐이었다. 김이 달음박질을 시작했기 때문에 여자의 걸음도 더 이상 균일할 수 없었다. 김의 고함은 인파 너머로 미치지 못했다. 사람의 형체가 만든 마루와 골이 김이 내는 모든 소리를 방음했다. 때문에 여자는 행인 사이로 금세 몸을 감췄다. 생선 대가리를 모아둔 고무 대야 옆에서, 혹은 연근이 널린 매대 앞에서 김은 무릎을 모으고 앉는다. 길을 잃었니? 그렇게 묻는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린 탓에 김은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거기에 있다. 경찰복을 입은 사내 옆에. 지원아, 어디 갔었어? 엄마가 얼마나 찾은 줄 알아? 김은 한달음에 여자에게 가 안긴다. 여자의 품은 김의 체액으로 금세 젖어들었다. 엄마, 미안해. 나 버리지 마. 응? 그렇게 말하는 김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여자의 손이다. 아이를 찾으셔서 다행이네요. 경관이 여자에게 말을 걸었을 때 김은 젖은 눈과, 코와, 입을 닦았다.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 짐승의 외피를 덧씌운 듯 매끄러운 여자의 얼굴이 점차 선명해진다. 지원이 없는 동안 엄만 정말 지옥에 간 기분이었어. 엄마는 우리 지원이 없으면 못살아. 알지? 호들갑을 떠는 여자의 뒤에서 웬 목소리가 불쑥 말을 걸었다. 정말이야?

김은 눈을 뜬다. 여자의 모습은 흐린 시야와 함께 형체를 잃는다. 금방까지 꿈속에 있던 여자는 옆자리에 앉아있다. 허벅지와 어깨를 맞댄 채 여자는, 어머니는 잠들어 있다. 혼곤한 와중에도 김은 가방을 매고 일어섰다. 버스는 좌우 거리를 재며 공항에 정차했다. 비틀거리는 어머니를 붙잡고, 김은 짐과 몸을 내리는 인파 사이로 몸을 맡긴다. 잊을 즈음이면 끊임없이 꿈으로 재현되었기에 유년은 일종의 기억으로 남았다. 엄마에게, 아니, 어머니에게 얽힌 몇 없는 기억이었다. 이후 스무 해 동안 김은 이 여자를 ‘엄마’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 이 여자도 그렇게 했잖아. 김은 속삭여본다. 김은 더 망설이지 않았다. 그 빚과, 책임과, 삶은 어머니의 것이다. 그렇기에 망설이지 않아야 했다. 마지막 비행을 알리는 방송이 울린 것은 김과 어머니가 공항에 들어선 것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때문에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인파가 더욱 빠르게 흘렀다. 엄마, 우리 비행기 타? 타고 가? 어머니의 얼굴은 조명을 비스듬히 치받는다. 김은 잠시 그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온통 주름 진 이목구비가 김의 시선을 가득 채운다.

“여기 잠시 있어.”

금방 올게. 불 꺼진 가게가 가득한 어느 복도에서, 복도에 들어찬 인파 속에서 김은 어머니의 손을 놓아본다. 순간 어머니의 흰 정수리와 누런 얼굴이 가게의 창 위로 반투명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초점이 맞지 않는 그 형상도 얼굴에 진 주름을 흐릴 수는 없었다. 나날이 골이 깊어 왔으므로. 왜? 어디 가는데? 김은 그 소리를 못들은 체 한다. 뒤돌아보지 않은 채 김은 걸었다. 나도 같이 가, 응? 어머니가 김의 소매를 잡으려 손을 뻗은 순간 김은 재빨리 몸을 뒤로 물렀다. 저마다 다른 박자를 가지고 걸었기에 공항 안은 걸음소리 만으로 충분히 소란스러웠다. 김은 걷는 속도를 높인다. 바쁘게 걸을수록 전신에 도는 허기를 느낀다. 엄마! 하고, 걸음 소리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김은 귀를 막고 뛰었다. 귀가 먹먹할 만큼, 소리는 금세 사그라진다. 어머니는 시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김의 유년은 언제나 TV와 함께했다. ‘시인’이 소리에 예민했기 때문에 TV는 늘 음소거 상태를 유지했다. 모든 만화, 모든 영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소리 없이 울고, 웃고, 살고, 죽었다. 김은 사실 음계나 박자를 원한 적이 없다. 언제나 소음과 소란을 원했다. 그 TV와 소리가, 주인공이 갑자기 왜 떠오른 걸까. 공항 밖으로 한참을 뛰고 나서야 김은 귀를 막았던 두 손을 떼었다. 밤이 깊어서일까, 사위는 고요하다 못해 소리가 없다. 들리는 건 제 심장 소리와 걸음 소리뿐이었기에 문득 김은 제 자신이 정적 자체가 되었다고 생각해본다. 잎이 스적이기만 해도 사라질 그 무엇이라고. 김은 시선을 먼 곳에 둔다. 아직 야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불빛들이 하늘 위에 제 잔상을 슬어놓았다. 김이 돌아갈 곳은 그 속에 있다. 불빛 주변을 에워싼 밤 속에. 김은 문득 뒤를 되돌아본다.

 

소리는 이미 멎은 지 오래다. 어머니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때문에 새벽 내내 골목에 울리던 소리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 하나 없이, 발소리 하나 없이 멎었다. 김을 깨운 것은 소란이 아닌 그 고요다. 자리에 누운 채, 김의 손바닥은 바닥을 쓴다. 며칠 새 쌓인 먼지와 마른 밥풀 따위가 살갗 아래에 걸린다. 팔의 오금이 예각에 가까워질수록 구겨진 악보와, 보고서와, 먼지 따위가 김의 품 안으로 모였다. 김은 교정하다 만 악보를, 읽다 만 보고서와 그 아래 놓인 시커먼 악보를 주워든다. 오선지에 걸린 음표 위에는 어머니의 글씨가 놓였다. 김은 이 악보의 음독을 안다. 나란히 누워 악보를 보고 있을 때면 어머니는 악보 귀퉁이에 엄마라는 글자를 적었다. 엄, 마, 하고, 입술이 모여 만드는 소리. 모인 입술이 벌어지며 만드는 음의 파동이 악보의 음독으로 꽤 그럴싸하게 들리고는 했다. 몇 번 엄마, 라고 발음해 본 것은 그 탓이었다. 김은 얼굴과 목에 손을 대어 힘살이 어떻게 긴장하는지, 소리를 낼 때 성대가 어떻게 진동하는지 가늠해보고는 했다. 그런 때도 있었다. 김은 글씨로 채워진 악보를 구긴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아야 했다.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김은 가방에 악보와 보고서를 집어넣었다. 회의 시간이 가까워왔기에 김은 서둘러 현관을 나선다. 젖은 도로 곳곳에는 벌써 안개가 피었다. 구석에 고인 비 웅덩이가 그 안개에 습기를 더했다.

“엄마!”

그 때문이었을까, 안개 속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크고 길었다. 김은 내리막을 걷다 말고 자리에 멈춘다. 관성이 그녀의 몸을 앞으로 이끌었기에, 김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몇 걸음 더 앞으로 걸어야 했다. 어떻게? 라는 물음은 김의 입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어제 입은 옷, 어제 땋은 머리 그대로 어머니가 저 아래에 섰다. 중년의 경관을 데리고. 김은 순식간에 품에 파고드는 가느다란 몸집을 느낀다. 가슴께에 겨우 닿는 자그마한 머리를 느낀다. 엄마, 나랑 여기 가. 응?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다 헤진 전단지 한 장을 꺼내들었다. 마치 어제 보았던 모습처럼, 어머니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조금도 울지 않았다.

“김 지원 씨? 이 분 보호자 되시죠?”

이걸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덕분에 쉽게 찾았습니다. 경관이 품에서 꺼낸 무언가를 김에게 건네주었기에 김은 그 작은 금속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금속을 매단 줄의 길이가 짧다. 김의 이름과 집 주소가 음각되었던 자리에는 붉다 못해 꺼먼 녹이 슬었다. 김은 줄과 금속을 손 위에 늘어트린다. 김은 제 아귀에 있는 것이 이전에 어머니가 가져간 미아 방지 목걸이라는 걸 알았다. 이걸 여태 가지고 다닌 거야? 왜? 김은 차마 그렇게 물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왔다. 나를 버린 여자인지, 나와 살았던 어머니인지, 그 모든 걸 잊은 소녀인지 알 수 없는 ‘어머니’가 돌아왔다. 김은 품 안에 든 어머니의 몸을 살짝 밀어본다. 손목에 실리는 어머니의 무게가 현실적이다.

“가지고 다니시게 한지 좀 된 거 같은데, 참 잘 하신 겁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신경 써주세요. 보니까 어떻게 거기 간 건지도 모르시던데….”

이런 어르신이 집 나가시면, 정말 다시 찾기 힘드니까요. 경관은 무연히 선 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김은 경관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대신 길을 지나는 행인의 걸음 소리, 계속해서 도착하는 문자 소리, 타이어가 젖은 노면에 몸을 밀착하며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었다. 경관이 간단한 인적 사항과 주소를 받아 적고 떠난 후에도 김은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자리에 서서 어머니의 눈에 비친 제 얼굴을 응시했다. 동공 속에 서 있는 여자는 우는 지, 웃는 지 모를 얼굴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김은 호흡을 고른다. 대체 어떻게? 호흡을 고르며 몇 번이고 그렇게 되뇌었다.

“왜 가지고 있었어?”

어머니의 대답을 듣고서야 김은 자신이 그렇게 소리 내어 물었다는 걸 알았다. 한 걸음 거리를 둔 채로, 어머니는 김의 손바닥 위에 놓인 목걸이를 뒤집었다. ‘우리 딸에게, 엄마가.’ 음각마다 녹을 채운 글씨가 바랜 금속면 위로 희미하게 떠오른다. 김은 그때서야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기 내 거라고 적혀 있잖아. 엄마 딸은 나니까, 내 거 맞지?”

「오늘 회의 안 올 거야?」문자를 확인하고, 어머니의 대답을 들은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주름진 얼굴, 너무나 닮은 얼굴, 이미 저승꽃이 만개한 얼굴을 피해 김은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김이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이, 어머니는 김의 손을 잡아끌었다. 소리란 탄성체를 매질로 전파되는 파동이라고 했던가. 김은 어머니와 자신 사이에서 이랑지는 모든 파동에 귀를 기울인다. 그 모든 소음과 소란의 박자를 세어본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김은 앞으로, 옆으로, 때로는 뒤로 이끌리며 어머니를 따라 가만히 걸었다. 김의 시선은 주변이 아닌 어머니의 등으로만 향했다. 때문에 주변을 지나는 모든 소음과 소란이 어머니의 등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해본다. 김은 이 모든 소리를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날,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돌아오던 날 어머니는 골목을 지나며 쉴 새 없이 얼굴을 닦았다. 닦아낸 것이 무엇이었는지 보다 김은 닦아낸 얼굴이 어떠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 얼굴은, 표정은 정말 외피를 덧씌운 듯 매끄러웠을까. 우는 지, 웃는 지 알 수 없는 표정은 아니었을까. 김은 입술을 모아본다. 엄마, 하고, 입 안에 고인 음절이 낯설다. 허공에 보이지 않는 기호를 그리며 김은 맞물린 입술을 뗀다. 김의 소리는 다시 울리고 있다. 단속적으로, 명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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