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외로움으로 물든 종로3가를 찾다

종로3가 단대신문l승인2016.05.31l수정2016.05.31 20:52l141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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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을 위한 따뜻한 나눔의 공덕… 100세 시대의 한 줄기 빛"

Prologue
서울 종로3가 일대가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의 집합소가 되고 있다. 지하철 요금이 무료이며 탑골공원, 종로3가 만남의 광장 주변의 물가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2천500원이면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사 먹을 수 있다. 또한 4천원에 통닭 한 마리, 3천원이면 이발을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주머니 가벼운 노인들의 공간이다. 지난해 서울시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23만7천181명으로 15세 미만 유소년인구 123만2천194명보다 무려 4천987명 많았다. 이는 우리나라가 산업화·저출산·핵가족화를 겪고 있는 한편, 의료기술의 발달로 기대수명이 늘어난 결과다. 이제 우리나라 역시 고령화 사회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고령화 시대에 맞춰 정년을 맞이한 노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노인의 빈곤, 질병, 고독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크게 대두되고 있는 만큼 그들의 사정을 들어보고자 지난 9일 서울 종로3가를 찾았다.


#1 누구나 사정은 있다

탑골공원엔 혼자 무료신문을 보거나 삼삼오오 모여 바둑을 두고 있는 노인들로 북적였다. 술잔을 기울이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노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허공을 바라보며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오전 10시, 파란색 의상을 맞춰 입은 노인 15명이 쉼터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어떠한 이유로 모여 있는지 물어보려 다가가니 이정섭(78) 씨가 가장 먼저 반겼다. 이 씨는 서울복지관에서 나온 환경지킴이로, 일 년에 한 번씩 두 달간 탑골공원을 청소하러 나온다. 이곳에서 봉사하는 이유를 묻자 “자식들과 같이 살고 있는데 집에만 있으면 며느리 눈치도 보이고, 놀아줄 사람도 없고…”라며 말을 흐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74) 씨가 “이 나이 먹고 퇴직하면 할 일 없는 건 당연하지.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야”라고 토로했다.

이후 탑골공원의 관리사무소를 찾았다. 탑골공원 송기용(68) 관리사는 문화재를 관리하는 일을 해오다가 지난해 9월, 11개월의 계약을 맺고 이곳에 왔다. 그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계약일수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왕년에 나랏일을 하면서 이름을 날린 사람이야. 여기에 있는 노인들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잘나갔을걸. 그런데 현실은 정년퇴직하면 다 부질없지. 내가 이런 걱정을 하고 있을 줄 그땐 몰랐어”라며 씁쓸한 웃음을 내비쳤다.

탑골공원을 나서자 들리는 흥겨운 멜로디, 이를 따라 걷다 보니 깔끔하게 차려입은 한 노인이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다. 자신을 거리의 악사라고 소개한 그는 방송사에서 자신을 취재하러 왔을 만큼 유명하다고 말했다. 그가 매일 아코디언을 켜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이다. 그는 그림에도 소질이 있을 만큼 다재다능했다. 한 시간가량 연주하던 아코디언을 정리한 뒤 가방에서 부채와 붓을 꺼내 순식간에 호랑이를 그려 보였다. 그에게 예술은 마음 어딘가에 자리 잡은 한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2 누구든 먹을 권리가 있다

정오 점심시간. 슬슬 배가 고파지려는 찰나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띄었다. 대열에 포함돼있던 한 할아버지에게 무슨 줄이냐고 묻자 “무료급식 먹으려고 기다리는 중이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허름한 건물에 ‘탑골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마침 막 식사를 마치고 내려온 서(85) 씨는 “이거 먹은 지는 5~6개월쯤 됐지. 내가 왕년에 군인이었어. 30년이 넘도록 일했지. 우리 아들은 유명한 언론사 높은 자리에 있어”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손주 같은 젊은이를 만나 반가웠는지 살아온 이야기를 척척 꺼내 놓았다.

서 씨는 4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무료급식소를 찾게 됐다. “내가 먼저 죽어야 우리 마누라도 국립묘지에 뉘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지 우리 마누라한테. 하여튼 마누라 가고 나니 집엔 찬밥뿐이지. 그렇다고 이 나이에 자식들한테 손 벌리겠어? 집에 있으면 적적하니 한 끼라도 밖에서 먹는 거지 뭐”라며 덤덤하게 사연을 전하던 모습에선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졌다.

오후 12시 30분경, 급식소를 찾았다. “맛있게 먹고 갑니다, 내일 봐요!” 마지막 할아버지가 자리를 뜨고, 급식 배부가 얼추 마무리됐다. 청소에 한창인 분주한 모습에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두리번거리자, “학생들이 어쩐 일이에요?” 중년의 남성이 먼저 말을 건넸다.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의 고영배 사무국장이다.

매일 150~200명의 노인이 다녀간다는 이곳에서 어떻게 무료급식이 운영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고 사무국장은 “사찰에서 남는 공양미를 보내주기도 하고, 현금 및 물품을 후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덕에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 특히 매일 일손을 거들어주는 35팀으로 이루어진 450여명의 봉사자들이 없다면 무료급식을 진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누구든 먹을 권리가 있다. ‘이 사람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니까 되고, 이 사람은 안 돼’ 식의 제약조건을 마련해두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나눔으로써 공덕을 실천한다면 삭막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의 말에선 따뜻함이 느껴졌다.

#3 그들의 여가생활

점심식사 후, 뜨거운 태양 아래 시원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커피 향을 따라 뒷골목으로 나오자 각종 가맹점 커피숍이 늘어서 있었다. 여기서도 여느 커피숍과는 다른 독특한 광경이 포착됐다. 바로 젊은이들이 아닌 색색의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멋쟁이 노부부가 찻잔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노인들의 성지'답게 종로3가역 근처엔 노인들의 여가생활이 활발했다. “에이 그렇게 하지 말라는데두!”, “어이구 잡혔네! 허허허.” 탑골공원 바깥쪽에 마련된 장기판에선 장기 두는 두 사람 근처를 빙 둘러싸고 저마다 훈수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거리외곽 역시 기원, 다방 등 이젠 도무지 찾아보기 힘든 시설이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성인 콜라텍’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노인들로 만원이었고, 콜라텍이 위치한 9층에 도착하자마자 들린 쿵짝거리는 뽕짝 리듬에 몸이 들썩였다. 어두운 장내를 비추는 번쩍이는 파란색 불빛 아래 남녀가 짝을 지어 춤을 추는 모습에선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도 느껴졌다. 1천원의 저렴한 입장료와 오전 11부터 오후 7시까지인 운영시간은 노인들에겐 안성맞춤이다.

이어 향한 곳은 ‘실버 영화관’. 지난 2009년에 개관한 이곳은 하루 700~1천500명, 많을 때는 2천명 이상의 노인이 찾는 그야말로 ‘노인들의 핫 플레이스’다. 365일 연중무휴로 3~4일마다 상영하는 작품이 바뀌는데, 주로 추억의 외화를 상영한다. 막 영화표를 끊은 한 노부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오지. 요즘 영화보다 옛날 영화에 명작이 많아. 노인들이 갈 데가 마땅치 않은데 여긴 참 고마운 곳이야”라고 전했다. 이어 “오늘 볼 건 〈약탈자〉라는 작품인데, 나랑 동갑이야. 1942년 작”이라고 말하며 허허 웃었다. 인터뷰를 마친 후 다정히 손을 맞잡고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에서 오랜 애정이 느껴졌다. 실버영화관 김준진 실장은 “단골 노인 고객이 3천명 이상일 정도로 반응이 좋은데, 추억의 영화를 보고 행복을 얻어간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고 전했다.

#4 종로3가를 나서며

하루 동안 종로3가 일대 노인들의 생활을 취재한 결과,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을 절실히 느꼈다.

잘 마련된 화려하고 저렴한 노인시설도 자식과 사회로부터 외면받는 노인들의 허전함을 채워주진 못했다. ‘100세 시대’에 맞게 노인복지와 같은 제도적 장치부터 효도, 봉양 등의 사회적 인식까지 넉넉해질 따뜻한 대한민국을 꿈꾼다.

 

김채은·김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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