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로스트' 이종범 작가 : 나'라는 퍼즐 조각 맞추기
'닥터 프로스트' 이종범 작가 : 나'라는 퍼즐 조각 맞추기
  • 김아람 기자
  • 승인 2016.11.23 11:23
  • 호수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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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휴재 중이라서 미안합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건넨 이종범(35) 작가. 그가 연재 중인 웹툰 『닥터 프로스트』는 웹툰과 심리학의 절묘한 조화로 많은 사람의 흥미를 자극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본업인 만화가 외에도 라디오 디제이, 재즈밴드 드러머, 에세이 작가,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 씨. 그 열정과 에너지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 15일, 작업을 위해 그가 종종 찾는다는 한 카페에서 그의 인생과 작품, 그리고 웹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자기소개 부탁한다.
웹툰 『닥터 프로스트』를 그리고 있고,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만화를 가르치고 있는 이종범이라고 한다. 반갑다.

▶ 어릴 때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나.
여덟살 때부터였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을 실제로 이뤄낸 것을 좋은 의미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위험천만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꿈을 오래 유지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사람은 변하고, 그에 맞춰 꿈 역시 변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람이 변화하는 과정을 돌아볼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꿈을 액세서리처럼 빨리 정하고 그걸 추구하는 것이 멋진 일이라고 애써 포장하는 느낌이 든다. 다른 꿈으로 옮겨가거나 다른 목적을 세우면 ‘꿈을 버렸다’, ‘현실적으로 변했다’, ‘변절했다’고 한다. 그것만큼 폭력적인 문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고 예외적인 상황이었을 뿐이다.

▶ 그럼 어린 시절 꿈을 갖게 된 계기는 뭔가.
아주 어릴 때 꿈을 정한 친구들의 공통적인 부분은 꿈과 관련된 활동에 대해 누군가에게 칭찬받거나 인정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좋아해 주면 거기에 인생을 투신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이 내 만화를 좋아해 줬고, 그걸로 칭찬도 많이 받았다.

▶ 웹툰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아주 단순하다. 대학 졸업 후 만화가 데뷔를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출판업계는 망해 있었고 웹툰 업계는 흥해 있었다. 물론 그 두 업계는, 비유하자면 연극과 영화만큼이나 다르다.

▶ 출판만화와 웹툰은 어떻게 다른가.
출판만화에서 개발된 모든 연출 기법은 책이라는 형태가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에 발명된 것이다. 책은 규격이 정해져 있고, 페이지도 한정적이다. 반면 웹툰은 이론적으로는 지면의 한계가 없다고 보면 된다. 한계가 사라지면서 모호한 분절점, 자유로운 컷의 간격 등 좀 더 영상연출에 가까워졌다. 데뷔작 『투자의 여왕』을 연재하면서 그런 바뀐 점들을 연구·적용·응용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 『닥터 프로스트』는 심리학을 소재로 한 만화다. 재미와 정확한 정보, 두 가지를 동시에 녹여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참 어려운 작업이다. 나도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캐릭터가 드라마에 잘 녹아 있으면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독자들은 재미있어한다는 사실이다. 정보가 우위에 서는 순간 재미는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재미, 즉 캐릭터가 확실한 드라마만 갖춰진다면 많은 정보를 담아도 안전해지는 것 같다.

▶ 『닥터 프로스트』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닥터 프로스트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 알고 싶은 남자가 과연 자신에 대해 알 수 있을까?’다. 보통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과 만날 때 행복한지, 절대 못 하는 종류의 일은 뭔지….생각보다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자기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닥터 프로스트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 다양한 케이스를 지켜보며 자신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길 바란다.

▶ 얘기를 들으니 시즌 4가 더욱 기다려진다. 살짝 알려줄 수 있나.
‘그림자 밟기’, 시즌 4의 부제다. 누가 누구의 그림자를 밟는지는 비밀이지만, 아무튼 누군가의 그림자를 밟아가는 이야기다. 지금까지의 떡밥들은 전부 회수되고 프로스트의 과거 역시 모두 드러날 것이다. 가장 다루기 힘든 사이비 종교와 언론을 메인 소재로 잡았다. 심리학적인 얘기보단 프로스트의 드라마에 더 초점이 맞춰져 앞선 시즌들과는 조금 다른 호흡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연재 시기는 내년 중순쯤으로 예상한다.

▶ 한순간도 만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나.
대학 시절 7년 동안은 군복무 때 잠깐 그린 단편 하나를 제외하면 조금도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 ‘만화 그리는 데 도움 되는 다른 활동을 해봐야지’라는 핑계를 댔지만, 10대에 너무 만화에만 매몰된 삶을 살았기에 사실 조금 지쳤던 것 같다. 그래서 만화를 아예 그리지 않고 음악만 했다.

▶ 그럼 어떻게 다시 만화를 그리게 됐나.
떨어져 봐야 알게 되는 소중함이 있지 않냐. 7년 동안 만화를 왜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다. 공백 없이 계속해서 만화를 그렸다면 지금의 난 훌륭한 오타쿠로서 만화를 소비하는 아마추어가 됐을 수도 있다. 음악은 평생을 두고 하기 좋은 취미라는 결론을 내렸다.

▶ 취미가 다양하다. 취미는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음악 외에도 게임, 탁구, 건담 만들기, 피겨 수집하기 등 참 많은 취미가 있다. 일단 직업적인 면에서 만화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기에 확장된 경험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많은 소재, 자극을 취미로부터 얻는다. 직업 외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취미는 중요한데, 이는 취미가 ‘쓸모가 0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쓸모는 나를 평가하는 사람, 써먹을 사람이 제시하는 기준이다. 그런 기준들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것이 취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취미야말로 사람을 가장 빨리 발전하게 하며, 10년 정도 꾸준히 하면 결국 돈을 벌어다 준다는 사실이다.

▶ 취미는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기자만 해도 취미라고 할 만한 게 딱히 없다.
요즘 20대들한테는 취미가 사치로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충분히 이해된다. 여러 가지로 미안할 따름이다. 나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취미는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내가 나를 파악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굉장히 쓸모없는 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는 우리에게 그런 기회를 잘 주지 않는다. “네가 뭘 좋아하는지는 별로 안 중요한데, 네가 어떤 쓸모가 있는 사람인지는 중요해. 그러니까 스펙 쌓은 거 보여줘”라고 말할 뿐. 참 슬픈 일이다.

▶ [공/통/질/문] 본인을 표현하는 색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보라색. 닥터 프로스트의 테마 색이기도 하다. 보라색은 빨강과 파랑을 섞은 색인데 빨강은 따뜻한 색, 파랑은 차가운 색이다. 그래서 보라색은 따뜻한 색과도, 차가운 색과도 잘 어울린다. 다시 말해 어떤 색과도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에 있어도 이질감 없는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 마지막으로 20대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본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서로 힘든 세상이 돼버렸다. 20대들에게 “이걸 해라”, “저렇게 하는 게 좋다” 같은 종류의 얘기를 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럴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작품을 하고 있을 테니, 20대들이 작품 속에서 어떤 것이든 얻어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Epilogue>
흔히들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무엇에 불안함을 느끼는지, 죽도록 싫어하는 것은 뭔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를 더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인생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른 ‘쓸모 있는’ 것들은 잠시 미뤄두고,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김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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