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 주권, 우리의 식량안보가 위험하다

남성현·서승원 기자l승인2017.09.19l수정2017.09.21 03:02l143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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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만약 당신이 먹다 남은 콩을 심고, 다시 씨앗을 받아서 심는 과정을 반복하며 자급자족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그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농작물 씨앗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발아율이 감소하게끔 유전자조작을 거친 것. 즉,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게 만들어 계속 새로운 씨앗을 구매하도록 기업이 막아버렸다.

우리의 밥상에 자주 올라오는 콩, 옥수수부터 청양고추,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등 상당수 작물의 종자는 모두 외국이나 다국적 기업의 소유다. 

때문에 우리의 식량자급률(식량의 국내 소비량 중 국내 생산량이 차지하는 비율)과 곡물자급률(곡물의 국내 소비량 중 국내 생산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1970년부터 꾸준히 감소해 각각 49.8%, 24%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2014년 기준)이다. OECD 곡물자급률 1위 호주는 무려 229%로, 모든 곡식이 자급자족으로 소비될 뿐만 아니라 타국으로의 수출 역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보리의 약 70%, 밀·옥수수·콩은 거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외국 기업이 값을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올리거나 수출을 막아버린다면 머지않아 국내 식품물가가 급등해 심각한 식량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스스로 종자를 확보하고 보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본지는 민간차원에서 토종 종자를 꾸준히 지켜나가고 있는 ‘우리씨앗농장’과 국가 차원에서 종자를 지키고 연구하는 국립종자원·국립백두대간수목원 ‘Seed vault’를 방문해 우리나라 종자 주권의 현주소를 알아보고자 한다.


농민의 힘으로 종자 주권을 실현하다 : 우리씨앗농장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꼬박 3시간, 충청북도 괴산군 소수면에 있는 우리씨앗농장을 방문했다. 논 700평, 밭 4천500평, 임야 15만 평의 규모를 가진 이곳은 농부 안상희(70) 씨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토종 종자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30년 넘게 보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자연방식 그대로, 건강하게
안 씨를 따라 산골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눈길이 닿는 곳마다 다양한 작물이 진한 초록빛을 뽐낸다. 고추와 토마토가 울긋불긋, 좀처럼 도시에서 보기 힘든 도깨비방망이, 수세미, 여주 그리고 뽀얀 하얀색 가지까지 옹기종기 모여 있다.
 

▲ 탄저병에 걸려 떨어진 고추

“에구, 고추는 건질 게 없네….” 작물을 설명해주다 문득 그의 시선이 고추밭에 머문다. 조금 전 빨간 빛을 자랑하던 고추와 다르게 유달리 노란색으로 변색해 비틀려 있다. 여름내 한시도 쉬지 않고 쏟아진 비 탓에 바이러스가 빨리 번져 전염병에 걸린 모양이다. 화학비료나 제초제, 살충제 등 화학제품을 일절 쓰지 않아 날씨와 주변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지만, 자연 그대로 작물이 자라날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둔다고 그는 말한다.

“옷에다 쓰윽 닦아서 한번 먹어봐요.” 잘 익은 노란 방울토마토 한 움큼을 건네받아 먹어보니 새콤달콤한 과즙이 입안에서 터져 나온다. 안 씨는 ‘토종 종자’라는 단어보다 정감 있는 ‘우리 씨앗’이 좋다며 “맛 좋고 품질 좋은 개량종도 좋지. 상품성을 가지고 가치를 정한다면 개량종이 더 가치 있지만, 나한테는 우리 것을 지키는 것의 가치가 몇십, 몇백 배 더 크다”고 말한다.

# 우리 씨앗 지키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종자를 보관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씨앗을 작물에서 분리하고 햇볕에 말린 뒤 수확 날짜를 적어 저온 보관실에 넣어야 한다. 언뜻 보면 쉬운 일이지만 수만 평에서 재배되는 모든 작물을 책임져야 하는, 종자를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조금씩 토종 종자를 모아 시작했던 일은 30년의 시간이 지나 무려 120여 종을 보관하게 됐다.


 

▲ 안상희 씨가 저장된 토종종자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국민의 부족한 관심 때문에 토종 종자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고 말한다. “토마토 씨앗 1g이 금 1g보다 결국엔 더 비싸. 우리나라에 종자가 없거든. 파프리카 씨 1g이 12만 원인데 금 1g 값은 4만 원 정도 되니까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게 종자야. 그러니까 우리들이 앞장서서 종자를 지켜내야지.”


종자 보존이 ‘농부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우리씨앗농장은 주기적으로 토박이씨앗소농학교를 열어 교육은 물론, 토박이씨앗을 나눠주고 이후 직접 재배해 다시 그만큼의 양을 돌려받는 적극적인 종자 보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종자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라 : 국립종자원
경상북도 김천시에 위치한 국립종자원에 들어서자 재배 실험실과 종자 저장고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곳 국립종자원의 품종보호과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종자를 법적으로 관리한다. 

 

▲ 복숭아의 표현형질을 검사하는 연구원


종자 재배 실험실에 들어가자 진풍경이 펼쳐진다. 연구원들이 수백 개의 복숭아 틈에서 복숭아의 껍질과 씨를 일일이 검사하느라 여념이 없다. 농업 연구사 강우식(45) 씨는 “종자를 대량으로 육성할 때 작물의 외형이 일정하고 크게 다른 점이 없는지, 또 작년과 올해 작물의 모양과 키 등 표현형질이 동일한지에 대한 재배심사는 필수”라며 설명을 이어간다. 복숭아를 쉴 틈 없이 자르는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 작물에 대해 설명하는 강우식 연구사

법적으로 종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다양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종자의 품종 보호 출원을 거쳐 출원된 품종이 품종 보호 요건을 갖췄는지 판단하고, 출원된 품종의 구별성, 균일성 및 안정성 여부를 검사하는 까다로운 출원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재배시험 후 담당 작물의 데이터를 취합하고 종자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 마지막으로 품종 보호 등록을 하면 등기부에 등록되면서 종자의 권리를 인정받게 된다.


아시아 최초 종자 영구보관시설 : 국립백두대간수목원 Seed Vault
경상북도 봉화군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위치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종자 영구보관시설, Seed Vault는 산림 야생 종자를 미래 세대에게 안전하게 전달함으로써 생태계 파괴에 대비하기 위해 마련된 거대시설이다. 현재 Seed Vault는 4만5천점의 종자를 보관 중이다.

▲ Seed Vault 내부모습


# 미래를 위한 영하 20℃ 종자 장기저장고, 하지만….

아시아 최대의 Seed Vault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입구가 기자를 맞이한다. 지하 40m에 위치한 Seed Vault에 가기 위해서 승강기를 타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내려 가야한다.

승강기에서 내리자 마치 고속도로 터널 같은 통로가 위풍당당하게 등장한다. 지진과 전쟁 등 재난 상황에서도 끄떡없도록 60cm 두께의 강화용 콘크리트로 짓고 장기 보존을 위해 내부 습도는 항상 5% 이하로 유지되고 있다. 또한 지하 깊숙이 위치해 있어 며칠간은 전기가 없어도 환경조건이 유지될 수 있다.

▲ 저장소에 보관된 종자 보관 트레이를 꺼내는 이동준 연구원

장기저장고는 항상 영하 20℃로 맞춰져 있기 때문에 두꺼운 방한복과 장갑은 필수이다. 아직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냉기가 상당하다.

만약 어떤 기관이 종자를 맡기면 우선적으로 수탁 동의 및 협약을 거친 뒤 건조 작업이 시행된다. 이후 발아율, 종자 특성을 조사하고 포장돼 바로 이곳 장기저장시설로 온다. Seed Vault 장정원 박사는 “야생식물 종자 안에 들어있는 유용성 물질을 추출해 연구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시아 최대의 종자영구보관시설이라는 호칭이 무색하게 연구지원과 운영은 열악한 상황. 장 박사는 “우리나라가 아직 야생식물 종자에 대한 관심과 연구지원이 미미해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전 세계적으로 종자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강대국은 앞다퉈 종자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백두대간수목원 Seed Vault의 모델이자 최초의 Seed Vault인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의 경우 노르웨이 정부가 직접 비용을 투자해 건설한 후 UN 산하 세계작물다양성재단(GCDT)에서 기금을 지원받고 있지만, 당장 백두대간수목원 Seed Vault는 국가기관이 아닌 법인 지위만 가지고 있어 원활한 연구를 위한 자금 확보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현재 Seed Vault에서 보관하고 있는 종자 데이터베이스는 무려 우리나라 자생종 2천5백여 종이며, 백두대간 내 1천2백여 종의 식물 채집정보와 기초정보가 확보된 상황이다. 아직까지는 기초 정보 수준이지만, 연구에 박차를 가해 세부표면구조, 활력정보(발아조건, 생리조건 등)와 같은 세부정보 확보와 함께 꾸준히 종자를 연구, 보존할 계획이다.

■ Epilogue
작고 단단한 씨앗. 우리에게 먹거리를 선사하며 인류가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종자가 이젠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 이익을 얻기 위한 무기로 변해버렸다. 먼 옛날, 씨앗 하나에도 소중한 생명이 태동하고 있음을 알았던 농민의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우리씨앗농장을 방문했을 때 여러 토종 작물이 자연 그대로 얽혀 자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누군가의 소유도 조작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우리 씨앗. 지난 날 혼란의 역사 속에서 홀대를 받았던 우리의 종자를 우리의 손으로 지켜야 할 때다. 미래의 내 아들, 딸에게 조그만 씨앗 속 강인한 생명력을 직접 보여줄 수 있도록 말이다.


남성현·서승원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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