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노라! 보았노라! 느꼈노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열정을 찾아서
왔노라! 보았노라! 느꼈노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열정을 찾아서
  • 장승완·손나은 기자
  • 승인 2018.03.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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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1988년 풋풋했던 20살 대학생은 어느새 50세의 중년이 됐다. 자국에서 열리는 세계인의 축제를 즐길 기회는 일생에 많아야 서너 번 올 것이다.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버스나 기차만 타고도 올림픽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큰 행복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올림픽 경기를 뭐하러 직접 가서 보나.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만 켜면 경기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데.”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숙박의 번거로움과 비싼 교통비를 감수하고, 황금 같은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올림픽 현장에 직접 방문하는 이유는 뭘까. 올림픽 현장에서 만난 송재민(44) 씨는 이런 답을 내렸다. “경기장 밖의 것을 느끼기 위해서.”


경기장 안의 열정보다 경기장 밖의 열정을 느끼고 싶다는 그의 답변은 모든 사람에게 동의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난 17일간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장 안의 열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당신이라면, 한 번쯤은 경기장 밖의 열정도 느꼈으면 한다.

 

가자, 올림픽 현장으로
핀란드 국기를 등에 꽂은 외국인부터 U.S.A라고 적힌 비니를 쓴 외국인까지. 강릉행 KTX를 기다리는 서울역의 플랫폼은 벌써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붐빈다. 설레는 얼굴로 각기 다른 언어로 웃음꽃을 피우다가도, 영어로 된 안내 방송이 나올 때면 모두 입을 닫고 방송에 귀를 기울인다.


기관사 교체를 위해 제복을 입고 플랫폼에 선 김진규(42) 씨는 요새 큰 책임감을 느낀다. “기관사 짬은 좀 찼지만, 평창올림픽을 맞아 강릉행 KTX 운행을 맡은 뒤로는 세심한 것 하나도 더 신경 쓴다”는 김 씨.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테러 위협부터 외국인 손님이 기차를 잘못 타는 사례까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도사리고 있어 피로가 더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애국이라는 생각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미소를 보인다.


김 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플랫폼에 서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왼쪽으로 이동한다. “Why are they walking there?” 기자 옆에 서 있던 외국인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리를 따라 이동한다. 외국인 관광객 몇 명이 1호 차에 배정돼 앞쪽으로 이동하니 다른 외국인들도 영문도 모른 채 모두 따라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난 것이다. 뭔가 조처를 해야 하지 않냐는 기자의 물음에, 김 씨는 기관사의 영어는 승무원만큼 유창하지 못하다며 웃는다.


평창올림픽 현장을 방문하는 사람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첫 번째로 마주하는 곳. 바로 진부(오대산)역이다. 올림픽 파크 방문이나, 스노보드와 프리스타일 스키를 제외한 설상 종목과 썰매 종목을 관람하려면 진부역을 거쳐야 한다. 평창올림픽의 대문답게 마치 파티장 입구처럼 시끌벅적하다. 먼저 도착해 일행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람부터 경기장 가는 방법을 몰라 자원봉사자와 짧은 영어로 대화하며 쩔쩔매는 외국인까지. 서로 다른 사연을 지닌 올림피언들의 열기를 싣고 갈 무료 셔틀버스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셔틀버스의 운전대를 잡은 박흥구(57) 씨는 운전경력 29년 차의 베테랑이다. “내 평생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이런 중한 일을 맡게 될 줄이야. 유일한 밥벌이 수단으로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요즘 평창올림픽 셔틀버스를 운전하면서 새삼 보람을 느껴.”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네며 말하는 박 씨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셔틀버스에서는 때마침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여자 컬링 예선이 중계된다. 일순간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됐다. 스웨덴 선수의 스톤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가자, 스웨덴 국기를 얼굴에  그려 넣은 커플의 표정에 진한 아쉬움이 번진다. 훗날 스웨덴이 대한민국을 꺾고 금메달을 딸 줄은 상상도 못 하리라.

 

▲ 평창 올림픽을 관광 온 외국인

 

최고의 올림픽 그 생생한 현장
‘놀랍도록 안전한 올림픽’, 무장한 군인 한 명 보기 힘들지만, 최고의 안전 올림픽이었다는 미국의 일간지 USA투데이 기사의 일부다. 안전 올림픽의 핵심인 검색대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총기와 폭발물 의심 물체는 물론이고 라이터와 개봉된 물병까지. 올림픽 축제의 입구인 만큼 자원봉사자의 환영 인사와 검색대의 긴장감이 묘하게 공존한다.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기자의 시도도 엄격한 검색대 앞에서는 물거품이 됐다. 단호한 얼굴을 한 경찰은 “검색대는 보안상 찍으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는 사진을 완전히 지운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돌아섰다.


이렇게 28만여 명의 경찰 인력은 보안 검색, 치안유지, 민원 해결 등 중요한 일을 처리한다. 그렇다고 딱딱한 표정으로 업무에만 집중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외국인 관광객과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 것은 물론이고 길을 잃은 아이 손을 잡고 어묵을 같이 먹으며 길을 찾아주기도 한다.


이 광경을 본 김진용(56) 씨는 총과 방탄조끼로 완전히 무장한 군인이 활보하던 지난 소치 올림픽을 떠올렸다. “88올림픽 때도 올림픽 구경을 제대로 못 해봐서 지난번 러시아 출장 김에 올림픽 구경을 갔었지. 사실 첫 올림픽 구경이라 총을 든 군인이 치안 유지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느꼈는데 여기, 평창 올림픽을 와보니까 너무 좋아. 그냥 동네 놀이공원 온 것 같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든 곳을 헤쳐 나가자 브라질의 피겨 국가대표 이사도라 윌리엄스의 모습이 보였다. 인파를 뚫고 나가자 기자와 같이 신기한 눈으로 서성이던 관광객이 눈에 들어왔다. 소감을 묻자 일본어가 돌아왔다. 당황한 나머지 영어로 다시 물었지만 역시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대화를 포기할 법도 한데 일본인 관광객 사이가 류코(53) 씨는 통역사까지 섭외해 대화를 이어갔다. “자국 선수 응원단으로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관람하러 왔다. 미야하라 선수도 훌륭했지만 다른 나라 선수들의 연기도 황홀했다”는 그녀. 기자에게 도쿄 올림픽에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번지는 2년 뒤를 기약하고 사라졌다.

▲ 올림픽을 취재 온 외신 기자들

그대가 올림픽의 주인공
올림픽의 수장,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개회식 때 한번, 폐회식 때 한번 연설을 했다. 두 번의 연설에서 빠지지 않고 강조한 이 한마디. “자원 봉사자분들께 특별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1만6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는 올림픽 현장 곳곳에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내며 ‘원활한’ 올림픽, 그래서 최고의 올림픽을 만들어냈다. 눈에 보이는 대회안내와 운영지원부터 미디어, 기술과 의무 봉사까지 자원봉사자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일면식도 없이 팀이 돼 어색했던 남쪽 게이트 안내팀도 그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팀으로 일하니까 어느새 끈끈한 전우애가 느껴진다는 손희승(21) 씨는 자원봉사자 쉼터를 살짝 보여주며 팀과의 친밀함을 공개했다. 다 같이 모여 간식을 먹으며 경기를 보는 모습이 오래된 친구들처럼 보인다. 바깥으로 나오자 라이브 페스티벌로부터 빈지노의 랩이 노을을 타고 흘러나온다.


감미로운 빈지노의 랩도 들을 수 없는 대관령에서, 칼바람에 몇 시간을 맞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상아(22) 씨는 대관령 주차장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관광객을 안내하는 일을 맡았다.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운영지원에 지원했지만, 높은 경쟁률로 인해 원하던 꿈은 이루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정말 보람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에너지를 뿜어냈다. 평창과 강릉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서, 빨간 엄지 장갑을 끼고 서툰 영어로 외국인을 안내하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일일 것이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대학 생활을 바꿔보고자 휴학까지 하고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됐어요. 앞으로 패럴림픽까지 봉사 활동 기간이 많이 남았지만,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지금이 제일 행복합니다.”


Epliogue
평창동계올림픽은 막을 내렸고, 밤마다 쇼트트랙 경기를 보여 손에 땀을 쥐던 사람들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매일같이 올림픽 소식을 전하던 뉴스도 잠잠해졌고 최고의 올림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그리고 그 올림픽을 온몸으로 즐긴 수많은 사람도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그렇지만 올림픽이 끝났다고 축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올림픽보다 더 뜨거운 패럴림픽이 오는 9일부터 시작된다. 일생에 자국에서 열리는 첫 번째 올림픽일 수도, 어쩌면 마지막 올림픽일 수도 있었던 평창동계올림픽. 이대로 마무리하기 아쉽다면, 경기장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고 싶다면, 바쁜 일상 속에서도 KTX에 몸을 싣는 것은 멋진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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