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살해하는 남자 ② 영국 헨리 8세 上
아내를 살해하는 남자 ② 영국 헨리 8세 上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8.03.13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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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의 두근두근 세계사

죽음조차 뛰어넘었던 두 연인의 이야기를 했던 이전 편과는 달리 이번에는 도리어 아내들의 죽음을 불러왔던 한 왕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작자 미상, <헨리 8세>, 1513년

이 남자, 헨리 8세의 시작은 나름 단출했습니다. 영국의 왕자로 태어나 최상의 교육을 받긴 했지만 건강한 형이 있어 왕위에 앉게 될 것 같진 않았죠. 당시 왕이었던 헨리 7세는 장남의 장래를 더욱 탄탄히 만들기 위해 아들이 2살일 무렵부터 며느릿감을 찾았고 아서가 15살일 때, 스페인에서 온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시켰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혼한 지 고작 20주 만에 신랑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애지중지 키워오던 왕자가 급사하였으니 영국에선 무척 슬퍼했지만 둘째인 헨리가 있었으니 후계자 걱정은 없었습니다. 다만 오랜 기간 공들여 성공시킨 정략결혼이 결실도 보기 전에 끝나버렸다는 것이 걱정이었죠. 캐서린이 다른 곳으로 시집가버릴까 걱정된 영국에서는 콩가루 냄새 폴폴 나는 결정을 내립니다. 바로 시동생과 형수를 결혼시키자는 것이었죠. 헨리는 처음에는 무척 반대했다고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말을 따라 형수인 캐서린과 결혼하였습니다.
 

▲ 작자 미상, <아라곤의 캐서린>, 18세기 초

적갈색 머리를 휘날리는 188㎝의 미남이라 유럽에서 가장 잘생겼단 칭송을 들었던 헨리는 성격도 쾌활해 아주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런 젊은 왕의 곁에 앉은 자애롭고 우아한 왕비, 캐서린은 겉보기에 완벽한 조합 같아 보였습니다. 다만 헨리의 뒤를 이을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문제였죠. 캐서린은 수차례 임신했지만 딱 한 명의 딸, 메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산되거나 태어나 몇 달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등, 건강한 아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튜더는 고작 헨리 7세부터 시작한 왕가였기에 헨리는 자기가 아들을 낳지 못해 아버지가 시작한 왕실의 명맥이 끊길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런 와중 첩에게선 아들이 태어나자 헨리는 자신이 왕자를 보지 못하는 것은 모두 캐서린 탓이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고뇌하는 헨리 8세의 곁에 매력적인 앤 불린이 등장합니다. 왕비의 말동무이자 백작의 딸인 앤 불린은 세련되고 재치 넘치는 아가씨였습니다. 앤 불린에게 홀딱 반한 왕은 앤을 첩으로 삼으려 했지만 앤은 자신은 남편과만 잠자리를 가질 것이라며 거절합니다. 젊고 아름답고 건강한 앤 불린과 자신이 결혼할 수만 있다면! 왠지 아들도 쑥쑥 태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인지 헨리 8세는 서둘러 캐서린을 버리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이혼이 없었던 이 시절, 왕비를 내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황청에서 이 결혼은 무효라고 결정해주는 것뿐이었죠. 성경을 이 잡듯이 뒤진 헨리 8세의 눈에 든 것은 바로 레위기 20장 21절이었습니다.

“누구든지 그의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의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오호라, 완벽한 구절이군요. 헨리 8세는 이 구절을 근거로 혼인 무효를 요청했지만 이미 과거에 둘의 혼인 허가를 내려줬던 교황청에서는 요청을 거절합니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헨리는 그렇다면 교황청을 버리고 새 교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합니다. 전 유럽이 경악한 이 결정으로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된 헨리 8세는 아내를 왕비 자리에서 쫓아내고, 외동딸 메리는 서녀로 강등시켰습니다.

그렇게 헨리는 그토록 바라던 앤 불린과의 결혼을 성사시키고 곧 앤과의 첫 아이를 품에 안게 되었죠. (또 딸이라 헨리 8세는 실망했을지 모르나) 훗날 영국의 황금시대를 이끌게 되는 엘리자베스 1세의 탄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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