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를 만난 외치
항생제를 만난 외치
  • 서민(의예) 교수
  • 승인 2018.05.26 00:24
  • 호수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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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의 메디컬 히스토리 6
페니실린을 발명한 플레밍
페니실린을 발명한 플레밍

“여기는 또 어디야?”
 

외치는 기계적으로 손등의 숫자를 확인했다.


“1941년? 멀리도 왔구나.”


아득한 그 숫자만큼이나 외치의 눈에 비치는 풍경은 경이로웠다. 길에는 도로가 깔려있고, 자동차들이 그 도로를 달렸다. 참 좋은 세상이라고 외치는 생각했다.


“이렇게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면 내 무릎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문명이 이렇게 발달한 곳이라면 자신의 무릎도 고칠 수 있을 거로 생각한 외치는 병원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어디가 아프냐고 하기에 무릎이라고 답하자 놀라운 답변이 돌아온다.


“그럼 정형외과로 가셔야겠네. 저 사거리 건너편에 있어요.”
 

부위에 따라 담당하는 병원이 다르다는 게 외치는 못내 신기했다. 하기야, 의사 한 명이 모든 부위를 다 보는 것보다 특정 부위만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전문적일 터였다. 외치는 희망에 부풀어 정형외과를 찾았다. 안타깝게도 그 병원은 외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졌다는 진단을 받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현재 의학 수준으로는 치료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난 대체 언제까지 미래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가!’


실의에 빠진 외치는 신석기시대 사람답게 산기슭에 누워 잠을 자다 그만 고슴도치의 공격을 받는다. 몸 이곳저곳을 찔린 외치,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 외치는 옆집 사람의 도움을 받아 열이 나는 것을 전문으로 본다는 ‘내과’에 간다. 그의 체온을 잰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고슴도치한테 찔렸다고 했지요? 아무래도 그 상처부위로 세균이 침투한 것 같네요. 예전 같으면 무조건 죽었습니다. 하지만….”
 

열이 너무 오른 나머지 실신하는 바람에 외치는 의사의 다음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페니실린이란 약이 있답니다. 인류 최초의 항생제지요.”


그 의사는 원래 치료하려던 ‘알렉산더’라는 경찰관 대신 더 급해 보이는 외치에게 페니실린을 투여하기로 한다. 효과는 드라마틱했고, 열이 내린 외치는 곧 눈을 뜬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이 페니실린으로 치료된 6번째 사람입니다.”


외치가 감사 인사를 하자 의사는 더 생색을 냈다.


“페니실린이란 약이 좋긴 한데, 대량생산하는 방법은 아직 몰라요. 당신 살리려고 그동안 모은 거 다 썼네요. 하하하.”


외치는 거듭 감사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외치는 다시금 심한 열이 나는 것을 느꼈다. 걱정된 나머지 의사에게 달려가자 의사가 이런다.


“아, 투여했던 페니실린이 좀 부족했나 보군요. 세균이 다시 창궐하네요.”


외치가 페니실린을 달라고 하자 의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없죠. 다시 모으려면 3개월은 기다려야 해요. 이게 문제라니까.”


페니실린이 대량생산돼 인류를 세균으로부터 구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945년이 돼서였다. 외치는, 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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