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트라우마를 기억하는 곳
인류의 트라우마를 기억하는 곳
  • 김한길 기자
  • 승인 2018.11.14 15:28
  • 호수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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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용산 전쟁 기념관
정문 기념관 전경
정문 기념관 전경

 

인간은 특별한 날을 기억한다. 좋아하는 이와 시간을 함께한 날,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며 이불을 뻥뻥 찰만한 그런 날들을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사건을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잘 기억한다고 한다. 과거 인류가 수렵 채집으로 삶을 꾸려가던 시절, 약초보단 독초를 기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해 습관으로 굳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이 과학적 설명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용산 전쟁 기념관은 인류가 기억하는 치명적인 기억을 현실에 구현한 공간이다. 수많은 기념관이 있지만, 굳이 ‘전쟁’을 기념하는 것은 먼저 전쟁을 해본 선조들이 전쟁은 인류에게 독초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독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경고문 같은 의미일 것이다. 용산 전쟁 기념관 정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동상은 이러한 의도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힘차게 전진하는 군인들

 

동상의 선두엔 국기를 펄럭이며 예리한 총검이 달린 소총을 든 군인들이 전진하고 있다. 그들의 굳은 표정과 역동적인 포즈는 동상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감을 들게 한다. 그러나 군인의 뒤로 쭉 줄지어진 대열을 보면 전쟁의 진실을 볼 수 있다. 잘린 다리를 끌고 있는 상이군인, 피난길을 떠나는 어린이와 노인들. 이 중 압권은 대열 마지막에 주저앉아 소리치는 어머니의 형상이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헷갈리게 하는 그 표정은 기념관을 돌아다니는 내내 잊히지 않는다.

전쟁기념관은 호국 추모실, 전쟁 역사실부터 어린이박물관까지 전쟁을 주제로 다양한 관람거리가 있다. 특히 전쟁 역사실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6.25전쟁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전쟁사를 볼 수 있다. 전쟁 역사실에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돌멩이 몇 개가 눈에 들어온다. 무엇인가 했더니 선사시대의 전쟁 무기란다. 싸울 땐 손에 뭐라도 들고 싸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론 돌멩이가 지금의 첨단 무기로 발전한 걸 보면서 뛰어난 인류의 지성이 같은 동족을 괴롭히는데 쓰였다는 사실에 씁쓸하기도 하다.

 

모형전투기가 전시돼있는 기념관 내부
모형전투기가 전시돼있는 기념관 내부

 

또 전쟁 기념관은 옥외전시장 곳곳에 눈을 즐겁게 해주는 대형 관람물들을 마련했다. 특히 소위 ‘밀덕(밀리터리 덕후)’들이 열광할 만한 전투기와 전차들이 실제크기를 재현해 전시돼있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전투기와 무기가 있다는 사실에 기자는 놀람과 동시에 레고로 전투 상황을 상상하며 놀던 어린시절의 향수에 젖어든다.

전쟁기념관의 또 다른 매력은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9월부터 열려 내년 2월까지 열리는 김홍도 작품전은 다소 단조로울 수 있는 관람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또 내년 3월 까지는 어린이 전시관에서 ‘BRICK FOR KIDS’프로그램을 마련해 어린이들이 블록으로 다양한 레고 작품들을 구경하고 실제로 조립할 수 있는 체험실도 마련돼있다.

 

옥외 전시관에 전시된 탱크들
옥외 전시관에 전시된 탱크들

 

이렇듯 전쟁기념관은 전쟁에 대한 유익한 정보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마련해 한 번쯤 나들이 장소로 들르기에 좋은 곳이다. 또 입장료가 무료라는 점은 전쟁기념관의 매력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념관을 들러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지금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또 앞으로도 평화를 유지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익숙함에 속아 잠시 평화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면 시간을 내 용산 전쟁기념관에 들러 다시 평화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것은 어떨까.

김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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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lyoneway@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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