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들의 사회, 문화적 경험 공유하기
혼자들의 사회, 문화적 경험 공유하기
  • 김평호(커뮤니케이션) 교수
  • 승인 2018.11.21 09:57
  • 호수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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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호(커뮤니케이션) 교수
김평호(커뮤니케이션) 교수

혼술, 혼밥 같은 말이 유행한다. 말 뿐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 혼자 사는 시대의 모습과 세대의 이야기는 이미 방송에서 자주 보고 듣는 소재다. 수퍼에 가면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전혀 불편치 않도록 정말 많은 것들이 준비되어 있다. 좁고 남루한대로 혼자를 위한 최소한의 거주공간이 고시원 등의 이름으로 골목골목에 번성하고 있다.

사람의 삶이 본래 모듬살이라는걸 생각하면 이건 모순이다. 문제는 혼술, 혼밥, 혼자 살기 자체가 아니라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과 맥락이다. 간단히 말하면 사회가 개인을 버린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든 사람을 제외하면, 개인을 배신하고 뿌리치는 곳을 사회라 부르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 전도사 노릇을 했던 왕년의 영국 수상 M. 대처가 ‘사회라는건 없다’고 말한 것은 솔직하게 체제의 본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정상적이라면, 사회는 개인을 돌보고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그래야 사회가 존속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회라면 이젠 개인이 그런 사회를 배신해버리고 뿌리쳐 버려야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문제는 그런 선택이 우리에게 사실상 없다는데 있다. 이런 것을 구조라 부르며, 이런 비정한 구조 속에서 개인의 삶은 고통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혼자들의 시대 거기에 지갑까지 빈약한 요즘 사람들은 정말 외롭다. 이들에게 어떤 길을 제시하기 어렵다. 분명한건 혼자 사는게 매우 위태로운 길이란거다. 그 길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도는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거다. 무슨 이야기? 정치? 경제? 맞다. 그러나 편차와 간극이 너무 심하다. 말하다 갈라진다.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건 미디어의 경험, 즉 문화적 경험이다. 상대적으로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

본래 미디어는 모듬살이를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토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젠 개인적 차원의 소유와 경험의 대상으로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혼자 사는 것이 대세가 된 세대에게 TV는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나홀로 보는 동영상을 뜻한다. 이들에겐 장안의 화제가 됐던 ‘미스터 션샤인’보다 ‘연플리’ 같은 웹 드라마가 더욱 가깝다.

이 같은 미디어의 개별화, 개인화, 파편화 현상 때문에 공통의 문화적 경험도 적어졌고 함께 말하긴 더 어려운 일이 됐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건 드라마를 함께 보란 얘기가 아니다. 내가 본 드라마나 영화, 전시회, 네가 들은 음악이나 공연, 또 다른 네가 읽은 소설이나 시 등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함께 문화를 공유하면서 경험의 내용을 깊고 풍성하게, 또는 비판적으로 채워나가는 것. 그것이 혼자살이의 외로운 시대를 헤쳐 나가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구원까지는 몰라도, 이것이 정치적으로도 매우 올바른 길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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