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 이대로 좋은가?
수능 시험, 이대로 좋은가?
  • 박정규(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18.11.28 10:57
  • 호수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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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교양학부) 교수
박정규(교양학부) 교수

필자는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왜 우리나라에서는 로또 1등 당첨자가 거의 매주 몇 명씩 나온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어떻게 814만분의 1이라는 확률의 1등 당첨자들이 매주 여러 명씩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그 이유를, 학생이었던 시절의 필자를 포함한 우리나라 학생들이 초‧중‧고등학교의 12년 과정을 거치면서 선다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른바 ‘찍기 시험’을 통해 갈고닦은 실력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소위 변별력 확보라는 명분으로 문제의 유형이 갈수록 기묘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93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치러지고 있는 ‘수학 능력 시험’ 즉 수능 시험에서 만점자가 꾸준하게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찍기 실력이 가히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12년 동안의 교육이 학생들을 정답 찾기에 매진하게 한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대학에 입학한 대다수의 학생들을, 본격적인 대학 교육에 적응하기 이전의 상당 기간을 정답 찾기에 골몰하게 하면서, 중‧고등학교 식으로 수업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전달하는 강의자를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얼핏 보기에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학에서의 교육 환경이 갈수록 피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이쯤에서 현재의 수능 시험이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대다수의 대학에서는 수능 시험 성적만으로도 학생들을 선발하는 데 별 문제가 없으므로 현재의 수능 제도가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소위 상위권 대학에서는 수능 시험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변별할 수 없으므로, 논술이라는 추가적인 시험을 통해 학생들을 선별하고 있음을 감안할 경우, 사실상 수능 시험의 본래 목적은 이미 퇴색되었을 뿐 아니라, 보기에 따라서는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더 이상 수능 제도가 유지될 명분이 상실되었다고 봐도 전혀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수능 시험이 1992년까지 시행되었던 학력고사의 문제점을 바로잡고자 시행된 것임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지만, 수능 시험을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조차도 수능 시험의 본질이 갈수록 변질되고 있음을 개탄하면서, “이럴 바에야 수능 없애는 게 낫죠. 경쟁을 심화시키니까 죽는 사람도 생기고 가장 중요한 학생의 자존감이 깨져 버려요. 시험은 사람을 이해하는 자료가 돼야지 판단하는 자료가 돼선 안 돼요”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금이라도 수능 시험의 본질을 회복하거나 폐지하여, 입학시험에 대한 모든 권리를 대학 측으로 귀속시키는 것이 마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계 당국의 적극적인 검토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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