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회 대학문화상 시 부문 당선작 「마인드팰리스」
제 42회 대학문화상 시 부문 당선작 「마인드팰리스」
  • 김지은(문예창작)
  • 승인 2019.03.06 22:00
  • 호수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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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는다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한 마당의 앵두나무를, 다 따지 못한 작은 텃밭의 상추를, 한 쪽 신발만 굴러다니는 밑 빠진 신발장을, 종이 달력 뒤에 그려진 팔 없는 졸라맨을, 종일 쌓아올리는 건 당신의 주름살 나는 때때로 그것을 태워야 했다

눈을 비비지 않으면 문득 떠오르는 굽은 어깨 당신은 그곳을 오르고 또 오르다 몇 번을 굴렀다 더, 더 깊숙한 낭떠러지 속으로, 오 남매의 손을 타 구겨진 당신의 살가죽을 그 깊이가 얽혀 남긴 흉터라 불렀지만 곧 그것을 발음하는 방법을 잊었다

어린 시절 남의 것을 곧잘 훔치던 딸아이에게 당신은 말했다 갖고 싶은 것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전한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을지 몰라, 종종 그랬다 하지만 그건 정말 종종, 당신을 떠올리는 날도 참 종종이었다 잊은 것마저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 어쩌면 눈꺼풀이 두텁거나 가벼워 알아채지 못한 당신의 어떤 그림자 때문이겠지

어제와 오늘이 덩이지어 당신으로 가득 찬 방문이 완성되고 나면 난 문득 당신을 오래도록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두려워

다시 부순다

 

*마인드 팰리스 : 기억법 훈련. 어떤 것을 기억해야할 때 머릿속에 궁전을 만든 뒤 그 안에 보관하여 오래 남도록 훈련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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