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히피는 어떻게 다른가
한국과 미국의 히피는 어떻게 다른가
  • 박재항 마케팅 컨설턴트
  • 승인 2019.05.08 00:06
  • 호수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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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히피, 젊음과 괴짜의 사이

‘Stay hungry. Stay Foolish.’ 2005년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한 연설의 마지막을 장식한 유명한 말이다. 언제나 갈망하는데, 바보처럼 하라니. 세계적인 IT 기업을 일군 사람의 말로는 어울리지 않게 보일 수 있다. 그 문구의 뿌리까지 파헤쳐 들어가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1968년에 첫 호가 출간된 『Whole Earth Catalog』란 잡지가 있었다.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거나 지향하는 ‘히피’들을 위한 정보나 상품을 소개한다는 목적으로 그 자신이 히피를 자부한 1938년생인 스튜어트 브랜드(Steward Brand)가 발행인이었다. 스튜어트 브랜드는 1995년 『Time』지에 인터넷 시대의 밝은 미래를 전망하는 글을 기고했는데 제목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모두 히피에게 빚을 졌다(We Owe It All to the Hippies).’ 부제에서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얘기한다. ‘전쟁 반대, 우드스톡, 장발머리 따위는 잊어라. 60년대 세대가 남긴 진정한 유산은 컴퓨터 혁명이다.’
『Whole Earth Catalog』가 종간호로 낸 1974년판의 뒷면에 바로 ‘Stay hungry. Stay Foolish.’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스탠포드대학에서의 연설 전에 잡스는 브랜드가 서명을 한 잡지 원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잡스가 전공과 관련 없는 예술 수업을 듣고, 동양 종교에 심취하고, 결국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두며 히피와 같은 생활을 한 사실은 유명하다. 그런 틀에 얽매이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는 히피 정신과 문화가 21세기 IT 혁명의 바탕이 되었고, 실리콘밸리 신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세상을 등지고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던 히피들이 첨단의 기계 세상을 만들었다.

▲ 반체제, 반사회를 추구하는 미국의 히피와는 달리 한국의 히피문화는 제한적으로 펼쳐졌다  출처-Pixabey
▲ 반체제, 반사회를 추구하는 미국의 히피와는 달리 한국의 히피문화는 제한적으로 펼쳐졌다 출처-Pixabey

한국 최초의 히피는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와 같은 70년대 초의 포크송으로 유명한 한대수이다. 그 또래의 가수들을 진원지로 소위 청년문화가 나타났다. 흔히들 ‘통기타와 생맥주’를 70년대 한국 청년문화의 상징물이라고 한다. 이는 미국의 반(反)체제, 반사회, 반문화적인 히피문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혹독한 전제 정권과 전통의 사슬이 남아 옥죄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의 저항이란 통기타를 치면서 생맥주를 마시는 지극히 소비적이며 제한적으로 펼쳐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 그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청년도 소수였다.


베트남전쟁 종전과 미중 관계의 개선으로 히피들은 이념적 방향성을 상실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차례의 오일 쇼크와 경제 불황으로 ‘혼돈의 70년대’를 겪은 이들은 ‘탐욕의 80년대’의 주류(mainstream)가 된다. 이들에게는 ‘전문직에 종사하며 도시에 거주하는 젊은층’이라는 ‘여피(Yuppie: Young Urban Professional)’라는 새로운 명칭이 붙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리버럴한 성향을 보이면서 개인의 재테크에도 아주 밝은 모습을 보였다. 조금 삐딱한 소수가 실리콘밸리로 갔다. 바보 같은 우직한 갈망 속에 그중 소수가 새 세계를 열었다.


한국의 청년들은 80년대 한국 정치의 최전방에 섰고, 압제 체제를 무너뜨리는 혁명과 같은 격변의 주도세력이 되었다. 그리고 90년대에 들어 그들은 ‘386’이란 한국만의 독특한 명칭을 얻게 된다. ‘30대-80년대 학번-60년대 생’이란 동어반복의 명명법이었지만, 정치 과잉의 시대에 자랑스러운 승리자의 월계관처럼 작용했다. 90년대에 그들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부문에서도 좋게 말하면 글로벌 경제의 주역, 부정적으로는 자본의 첨병 역할을 떠맡았다. 전통 사회 체제의 틀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 시스템 속으로 들어온 그들은 어릴 때 체득한 가부장적 요소를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주입했다. 다시 배가 고파서도, 남에게 바보로 업신여김을 받아도 안 되었다. 바보처럼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히피가 생성되고 자리 잡기에 한국 사회는 너무나 동질적이고 각박했는지도 모른다.

 


박재항 마케팅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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