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사이에 둔 두가지 논쟁
생명을 사이에 둔 두가지 논쟁
  • 이다현
  • 승인 2019.06.05 16:25
  • 호수 14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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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수술실 CCTV 설치

● [View 1]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은 유가족

지난달 17일, 국회의사당으로 나섰다. CCTV가 없는 수술실에서 벌어진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모여 수술실 CCTV 설치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나는 2년 전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아들은 수술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나는 병원 측과의 소송에서 며칠 전 승소했다. 힘겨운 법정공방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것은 수술실 CCTV 영상이었다. 그런데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을 철회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아들의 죽음 이후, 수술실 CCTV를 몇 번이고 돌려봤던 나는 출혈이 심한 아들을 내버려둔 채 수술실을 떠난 의사, 휴대전화를 만지는 간호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CCTV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지난 4월에 신생아를 떨어뜨려 사망에 이르게 했음에도 ‘병사’라는 사인으로 이를 은폐하려 했던 사건을 생각해보면 수술실 CCTV 설치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현재 수술실 내에서 대리 수술 등의 범법행위와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사건 등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런 와중에 CCTV 설치에 대한 의료진의 무조건적인 반대는 의료계에 대한 신뢰도를 낮출 뿐이다. 수술실에서 의료사고가 난 피해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

● [View 2] 의사

의사는 단 1%의 생존 확률이라도 좇아야 한다. 내가 하는 치료와 수술이 환자의 생존에 직결된다고 생각하면 항상 심적 부담감이 뒤따라온다. 그런데 내 수술을 지켜보는 CCTV가 설치된다니 책임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설 뿐이다. 의사의 부담감이 높아지고 집중력이 저하되면 환자를 살릴 가능성이 줄어든다. 아무래도 진료가 위축되고 적극적인 치료가 방해되기 때문이다.

수술 결과는 의사의 집중력과 실력에 좌우되고 수술 시간이 길수록 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CCTV가 설치되면 여러 부담감과 혹시 모를 걱정에 수술 중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이다. 실제로 의사협회 회원 8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8%의 의사가 CCTV 설치에 반대했고 그중 60%가 집중도 저하를 이유로 들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환자의 수술 부위가 노출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인권 침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CCTV가 없을 때는 환자의 민감한 신체를 소수의 의료진만 치료 목적에서 확인했지만 CCTV가 설치될 경우 불가피하게 환자의 정보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가 넓어질 우려가 있다. 불법 촬영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는 사건들처럼 누군가 CCTV 영상을 악용한다면 디지털 피해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

● [Report]

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청와대 국민 청원 글이 다수의 지지를 얻은 데 이어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했다. 경기도는 작년 10월 1일부터 경기도 의료원 안성 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시범 운영했으며 올해는 6개 공공 의료원에 이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술실 CCTV 설치 찬성 입장은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때 CCTV 영상이 가장 결정적인 단서로 활용될 수 있으며 자신이 수술받은 곳에서 일어난 일을 아는 것은 환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한다.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의료 분쟁이 있을 때 객관적인 근거를 활용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해결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의사를 포함한 누구든 수술을 받는 입장이 될 수 있으므로 의료 분쟁 시 의료진은 의료 사고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할 수단으로 CCTV 영상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 입장에서는 CCTV로 인해 의료인이 심적 부담을 갖게 돼 진료가 위축될 수 있어 의료 행위에 방해된다고 주장한다. 의료권을 보장받지 못하면 피해는 결국 수술받는 환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또한 ‘VIP증후군’에 빗댄 ‘CCTV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VIP증후군은 의사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수술할 때 심적 부담을 느껴 손을 떠는 등 수술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지난달 14일,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수술에 대해선 영상 촬영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으나 다음날 다수 의원이 공동 발의를 철회하면서 폐기됐다. 이후 21일, 다시 15명의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의학계의 반대 성명이 이어지며 CCTV 설치 법안 마련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의료사고가 매년 평균 2.4%씩 증가하고 있으며 의료사고에 의한 소송도 작년보다 2배나 높아진 만큼 CCTV 설치로 인한 문제 해결책을 마련하거나 의료사고 방지하는 방법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이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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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acodm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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