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미원을 정당화하다
마키아벨리, 미원을 정당화하다
  • 이준형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06 22:36
  • 호수 14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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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키아벨리
▲ 마키아벨리가 정당화한 미원을 넣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볶이
▲ 마키아벨리가 정당화한 미원을 넣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볶이

가족의 건강을 염려하는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듯, 우리 어머니 역시 각종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본인 요리의 가장 큰 원칙 중 하나로 여기셨다. 지금은 논란이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어머니의 원칙은 매우 현명하게 느껴졌다.

TV에선 매일 MSG로 인해 구토와 복통을 호소하는 사람과 뇌가 굳어버린 실험용 쥐 이야기가 전해졌고, 출시된 각종 조미료 광고 역시 자신들은 천연이다, 안전하다를 강조하는 통에 외려 조미료는 유해한 것이라는 의심을 굳힐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의심은 내가 조금 더 자란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시작됐다. 외가 근처에 위치한 분식집 할머니의 떡볶이가 그 주인공.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식집을 찾은 그 날, 할머니는 떡볶이를 만들고 계셨다. 비법은 정점에 다다른 맛의 경지와 달리 단순하고도 명쾌했다. 맑은 어묵 국물 몇 국자와 고추장, 가는 고춧가루, 설탕. 그리고 미원 크게 한 국자. ‘어라, 저거 나쁜 건데?’

 

미원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16세기의 철학자 마키아벨리가 그 장면을 지켜봤다면 틀림없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 어때?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는 법인데!”

마키아벨리의 대표작 군주론은 통치자가 일정한 역할과 자질을 갖추길 권고하는 책이다. 그는 비슷한 종류의 책이 겸손이나 정직함, 동정심 등을 군주의 미덕으로 제시하는 것과 달리, 권력을 유지하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용맹스러움과 단호함, 기민한 판단력을 통치자의 덕목으로 꼽았다.

이는 책의 핵심 개념인 비르투(virtu)’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 비르투란 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담보하는 수행능력이다. 여기엔 거짓 정보를 흘리거나 국가의 발전에 저해되는 인물을 암살하는 것, 필요할 경우 내 편까지도 처치할 수 있는 능력과 용기도 포함된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가 태어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는 늘 격변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가 태어난 1469년에는 로렌초 데 메디치가 통치자에 올라 번영을 이끌었지만, 1494년에는 그의 아들 피에로가 샤를 8세 치하의 프랑스에게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즈음 정치인이 됐다. 그는 당시 29살에 불과했지만, 지금으로 따지면 국무부 차관보 정도에 해당하는 제2 서기관에 임명됐다. 하지만 명예도 잠시, 1512년 프랑스 군대가 교황이 이끄는 신성 동맹에 밀려 이탈리아에서 철수하자 그 역시 공직을 잃고 만 것이다. 이후 그는 시골에 틀어박혀 글쓰기에 몰두했다. 군주론로마사론, 정략론, 만드라골라등이 이때 작성된 작품들이다.

 

이 녀석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미원을 비롯한 MSG 성분 조미료의 유해성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MSG는 천연 조미료나 다름없어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쪽과 과다 섭취할 경우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으며, 싸구려 재료를 이용한 음식의 맛을 억지로 좋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쪽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어느 쪽의 편도 들고 싶지는 않다. 다만, 양쪽 모두 적은 양은 건강상에 큰 문제가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 그날 할머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는 만들었다는 점, 맛에 대한 갈증은 국가적인 위기 사태와 필적할 만한 문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가끔은 모른 채 맛있게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음식의 최대 목적은 일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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