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주재형(철학) 교수
  • 승인 2021.11.09 14:36
  • 호수 14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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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형(철학) 교수
주재형(철학) 교수

작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조연상을 받은 배우 오정세가 수상소감으로 남긴 말이다. 물론 이 배우는 수상소감에서 세상의 불공평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그의 말을 잘 들어보면, 그는 세상의 불공평에서 작은 위안을 발견한 것처럼 보인다. 100편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한 작품도 소홀히 임하지 않았고 성공한 작품이나 실패한 작품이나 나는 늘 최선을 다했으니, 성공도 실패도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이 실패를 맛봤더라도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은 많은 이들에게 진솔한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운의 세계관에 반대되는 것이 현대의 지배적 이념인 능력주의(Meritocracy) 세계관이다. 능력주의는 신분이나 인종, 성별과 같이 인간들을 구별하는 차이들의 부당함을 폭로한다. 능력주의에 따른 세계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하고, 각자가 해낸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


그런데 마이클 샌델을 비롯한 여러 학자는 당연하고 바람직해 보이는 이 능력주의를 비판한다. 개인의 능력은 누구에게도 물려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질을 타고 나는지, 사회와 부모가 어떤 성장 환경을 제공해주는지에 따라 판이해진다. 그런 점에서 신분, 인종, 성별에 따른 차별과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별은 사실 다를 바 없다.


오늘날 능력주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미국의 법학자 대니얼 마코비츠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노동 소득의 불평등은 엄청나게 심각해져 사회적 양극화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금융계와 법조계의 엘리트들, IT업계로 대표되는 신흥 기업의 CEO들은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아 천문학적 액수의 연봉을 받는다. 이런 소수 엘리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내는 성과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에 그들의 연봉이 지나치다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만큼 우리는 극소수의 엘리트가 사회의 부 대부분을 독차지하는 극단적 양극화의 세계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각자의 노력에 따라 정당하게 보상받는 세상이나,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결과가 주어지는 세상이나  불공평한 것은 매한가지인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운의 세상은 인간을 똑같이 운에 매달린 존재로 묶지만, 능력의 세상은 인간을 천상의 엘리트와 지하의 무능력자로 양분하기 때문이다. 인간사의 결정권을 운에 맡기는 것은 사실 신이 결정한다는 섭리론적 세계관이다. 폭군처럼 굴었던 신을 죽이고 인간 해방을 성취한 것이 근대의 역사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을 인간 손에 맡겼을 때 인간은 신이 군림하던 세상보다 더 잔인한 세상을 만들었다. 신과 인간의 차이는 이제 인간들 사이의 차이가 됐다. 밤하늘에 우뚝 서 있는 수백억을 호가하는 찬란한 서울의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그야말로 신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운의 섭리가 주는 작은 위안에 기대고 체념할 수는 없다. 이제 아메리칸 드림과 코리안 드림 이후의 꿈이 필요할 때다. 공평한 세상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상상이 필요한 것이다. 진정한 21세기는 그러한 상상과 함께 뒤늦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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