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때문에 농사를 지은 인류?
술 때문에 농사를 지은 인류?
  • 명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06 14:35
  • 호수 149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술과 농업의 탄생에 대해

술의 주원료는 뭘까? 막걸리는 쌀을 중심으로 만들고, 맥주는 보리, 와인은 포도로 만든다. 전통적인 소주 역시, 쌀, 밀, 찹쌀 등으로 발효주를 만들고, 그것을 증류해 만들었다. 농업 없이는 술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뒤집을 만한 발견이 하나 일어난다. 바로 농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술을 빚었다는 것이다. 농업의 시작은 인류의 역사를 구석기와 신석기로 나누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구석기와 달리 신석기에는 저장했던 곡물이 사유재산으로 변모, 계층 간의 갈등, 나아가 신분제의 확립으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당연히 농업을 시작한 후에 그곳에서 생산되는 밀, 쌀, 보리, 포도 등으로 술을 빚었고, 그것을 통해 인간은 영위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하이퍼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의 고고학자들이 약 1만3천7백 년 전에 있었던 맥주 양조장 유적을 이스라엘에서 발굴했다. 발굴은 기존에 기정사실로 여겨지던 가정이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했다. 바로 농업 이전에 술 빚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북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카멜산 라케페트 동굴에서 3개의 돌절구를 발견했는데, 탐사팀은 이것들이 바로 맥주를 양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임을 확인했다. 절구에 밀, 보리, 귀리, 콩 등의 흔적이 있었다. 탐사팀은 “이 절구들이 구석기 말기, 또는 신석기 초반의 중석기 시대 이스라엘, 시리아 등 지중해 연안과 요르단 계곡 등에서 반유목민으로 수렵, 어로 생활을 하며 신석기 나투피언(Natufian)들에 의해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다.
▲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다.

 

문제는 이 기간이 아직 본격적인 신석기시대로 넘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석기시대는 대략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9천 년 정도로 본다. 이 시기에 경작했던 농업의 유적 등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 발견된 가장 오래된 양조장 유적은 지금으로부터 약 5천~8천 년 전의 이집트 또는 수메르의 유적. 기원전 8천 년 전은 신석기시대가 시작한 무렵이지만, 1만3천 년 전은 아직은 구석기가 이어지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농업이 있기도 전에 곡물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 바로 자연 상태의 곡물과 수확물을 저장하면서 술을 빚었던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 농업 시작 전 인간이 가졌던 두 가지 영역이 있다. 바로 종교와 예술이다. 이미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었으며, 이미 인간은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적 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술까지 빚을 능력이 있었고, 이러한 술은 장례 의식이나 축제 등 중요한 의례를 진행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였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에 게재된 연구논문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곡물의 재배가 촉발된 이유에 술이 있을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즉, 인간은 먹고살기 위해 농업을 시작한 것이 아닌, 술을 마시기 위해 농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1만 년 전부터 술을 위해 낭만 있는 농업을 영위했던 것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사피엔스』에서 인류 역사에 있어서 농업혁명은 인간 불행의 씨앗이며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평한다. 농업을 통해 농산물을 지배하게 된 것이 아닌, 오히려 그 농산물에 지배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수렵과 채집 시절부터 인간에게는 술이 있었다는 것. 어쩌면 농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술이었다는 상상도 못 했던 스토리를 꿈꿔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