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는 주모를 뭐라고 불렀을까
서양에서는 주모를 뭐라고 불렀을까
  • 명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19 14:04
  • 호수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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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한국의 주모와 영국의 주모

사극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술 장인이 있다. 바로 주모다. 주모의 역할은 술을 빚는 것과 음식 제공, 그리고 여행객에게 숙박을 해결하는 공간을 제공했다. 흥미로운 것은 유럽에서도 유사한 직업이 있었다. 8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영국을 중심으로 가장 많이 활동한 유럽의 주모, 에일 와이프(Alewife)다. 에일(Ale)은 본래 상면발효를 한다는 영국식 맥주, 그리고 와이프(Wife)는 여성에 대한 일반명사다.

 

그리고 이 에일 와이프가 근무하던 에일 하우스는 맥주를 만들고, 숙박을 제공했던 주막 같은 곳이다. 9세기부터는 영국 전역에 에일 하우스가 생기는데, 그 이유는 교회와 수도원이 세워지고 성지순례가 이뤄지면서 순례자의 이동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 통과 지점에는 늘 에일 하우스가 있었다. 

 

주막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에는 언제나 주막거리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의 주모와 마찬가지로 에일 하우스의 매출 역시 에일 와이프가 좌우했다. 정선 아리랑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술이야 안 먹자고 맹세했는데, 안주 보고 주모 보니 또 생각나네”. 

 

영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좋은 술을 잘빚는 에일 와이프는 그 맛과 향으로 남성들에게 아이돌 같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에일 와이프에게 빗자루가 걸려있으면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의미다.
에일 와이프에게 빗자루가 걸려있으면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의미다.

14세기 후반, 국왕 리처드 2세는 숙박업에 간판을 달라고 했는데, 이때 에일 하우스의 간판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빗자루였다. 당시 청소는 여성의 업무라는 인식이 있었고, 술을 빚는데 청결을 유지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산업이 커지고 호황기를 맞자, 술을 잘 빚는다는 존경과 인기는 질투로 바꼈다. 
 

거기에 맥주를 빚는 수도원과 경쟁을 하는 구도가 되다 보니 에일 와이프는 조금씩 마녀의 모습으로 그려져 버리고, 빗자루가 그들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이렇게 수 세기를 향유한 에일 와이프는 주류산업이 노동집약적이며 산업화 시대로 이어지면서 천천히 그 명맥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일부 지명이나 역, 그리고 바 등에서 그 명맥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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