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꽃샘바람 불던 20년 전
<화경대>꽃샘바람 불던 2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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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3.16 00:20
  • 호수 1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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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구실 한 쪽 벽면에는 아주 오래된 흑백사진이 달려 있다. 모양을 낼 것도 없어 스폰지보드 위에 아무렇게나 압정으로 꽂아 두었다. 그럴라 치니 평소에는 눈길마저 가 닿지 않아 종내 잊고 지내는 적이 많다. 언제 내 수중으로 들어왔는지도 분명치 않다.
그런 천덕꾸러기가 오늘은 유별나게 내 눈맛을 시원케 하더니만 마음먹고 찬찬히 들여다보도록 은근한 유혹을 한다.
개강 날은 대학에 몸을 의탁해 사는 교수라면 내남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게 마련이다. 더구나 나같이 매사에 굼뜬 사람은 이것을 챙기면 저것이 빠져 있고, 저것을 하다 보면 이것이 더 시간을 다투는 거라서 혼비백산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그럴진대, 턱하니 담배 하나 꼬나 물고서는 시선을 사진에 붙들린 채 앉아 있는 모습이 내가 생각하기에도 요상할 정도이다.
작년 9월 25일에는 현대성의 명석한 해석자로 이름난 장 보드리야르가 한국에 왔었다. 날짜까지 잘도 집어내는 것은 그날이 마침 내 생일 뒷날이라 신문 한 켠에 난 기사를 그래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이론은 썩 잘 이해하는 형편이 아니지만, 사물들이 더 이상 상징가치나 사용가치로 존재하지 않고, 오직 복제된 이미지들의 상호작용이 현실의 의미망을 형성한다고 말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이미지조차 그 스스로를 파괴하는 형국에 이르러 ‘이미지 파괴’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환기시키면서,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반미디어적 매체로 ‘사진’을 강력하게 거론한 것을 아는 정도로 내 이해의 수준은 보잘 것이 없다.
다시 내 연구실 벽에 달린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무엇을 찍었나?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두텁게 층을 이룬 하얀 구름이다. 아참! 흑백사진이지. 그리고 하단에는 어떤 물체의 상단부가 삐죽 나와 있다. 대나무를 원뿔 모양으로 세우고는 굵은 철사로 얼기설기 엮었다. 그 위로 덮인 비닐인지 천인지 분명치 않은 까만 것이 가득 바람을 안고 오른쪽으로 부풀어올랐다. 까만 것? 이것 역시 흑백사진을 놓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떻게 찍었나? 정지한 하늘, 그 허공을 바람 한 자락이 가로지른다. 천인지 비닐인지 아래에서 쪼끔 솟은 물체가 바람을 맞는다. 바람을 머금고 풍성해진 그것을 통해서만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늘을 가득 채운 저 구름은 바야흐로 짙은 회색빛을 더해 가게 될 것이다.
무엇 하나를 오래 쳐다보기는 참 오랜만의 일인 것 같다. 사진은 침묵으로 소음에 저항하고, 부동자세로 가속에 저항하고, 비밀을 통해 정보의 분출에 저항하며, 무엇보다 이미지의 끊임없는 연속에 저항하기 때문에 인간의 시선을 기술적인 금욕상태와 만나게 할 수 있다. 앞서 반미디어적 매체로 사진을 거론했던 보드리야르의 말이다.
흑백사진 아래에는 내 아내의 사진이 놓여 있다. 손을 살짝 머리께로 올려 강한 햇빛을 막으며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순간, 번잡했던 그 날 덕수궁 안이 돌연 침묵이다. 화면엔 그 많던 사람들이 모두 비껴 났다.
오늘처럼 꽃샘바람이 불던 1983년 초봄에 말이다.
김일수 동우<공주영상정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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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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