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8세의 ‘사랑밖에 난 몰라’
헨리8세의 ‘사랑밖에 난 몰라’
  • 김유진 수습기자
  • 승인 2008.04.14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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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일의 스캔들을 보고

파블로 피카소는 이런 말을 했다.
‘파란색이 없으면 빨간색을 칠 한다’.
그림을 그릴 때 원하는 색이 없으면 다른 색으로 대체해 그림을 완성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스틴 체드윅 감독의 ‘천일의 스캔들’을 보며 내내 이 말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헨리8세는 자신의 부인이자 왕비인 캐서린에게 염증을 느끼자 볼린가(家)에서 만난 메리 볼린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메리 볼린이 임신을 하고 몸 상태가 나빠져 만날 수 없게 되자 왕은 다시 도도한 매력을 가진 메리의 언니, 앤 볼린에게 눈독을 들인다. 결국 그는 앤 볼린을 부인으로 취하지만 그녀의 바르지 못한 행실들에 실망하여 처형시키고, 제인 세이모어를 부인으로 취한다.

헨리 8세의 끝없는 애정행각, ‘천일의 스캔들’이라기보다는 ‘천일야화’에 가깝다. 파란색이 없으면 빨간색, 빨간색이 떨어지면 보라색, 보라색도 바닥을 드러내면 고동색….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헨리 8세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오히려 끝없는 애정편력에 치를 떨기보다는 그런 왕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여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머리털 곤두서는 질투, 소름 돋는 음모 등으로 미움의 대상을 옮겨 놓는다.

왜일까, 아마도 우리가 은연중 헨리 8세에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사랑은 그야말로 원초적(본능에 따른) 사랑이었고, 감정적이었지만 순간순간 그의 진심이 관객을 압도한다.
그는 사랑에 빠졌을 때만큼은 계산하지 않았다. 메리를 사랑하게 되었을 땐 기혼녀인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가족에게 작위를 주고, 궁에서 머물 수 있는 거처까지 마련해 준다. 그런 헌신적 행위에 정략적 사랑을 거부하던 메리도 왕을 사랑하게 되었다.

또 앤을 만날 땐 여왕인 캐서린과의 이혼으로 교황청과의 극한 대립까지 감내하며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적어도 사랑에 빠졌을 때만큼은 절대권력자가 아닌 범인으로 돌아와 사랑에 아파하고, 번민하며 상대의 행복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메리와의 첫날밤에 자신은 하루에도 수백 번의 거짓말을 듣고 산다고 고백하는 헨리 8세에게 답답한 궁궐생활을 평생 동안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건 오직 두근거리는 사랑밖에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행동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두근거리는 사랑을 지속시키는 뇌의 작용은 짧으면 6개월 길면 2년이라고 한다. 이런 연구결과가 헨리 8세의 애정행각의 답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가 끝난 후 명쾌하게 얻은 답 하나, 오늘을 사는 여성들이 조심할 것은 ‘사랑밖에 난 몰라’형인 헨리 8세 같은 남자는 절대 조심하자. 아니면 그런 남자를 길들이는 법을 배우든지. 그렇지 않으면 앤 볼린처럼 되어버릴지도 모르니….

김유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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